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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핀 Dec 22. 2021

IDeal. 네 번째 이상

ID: 어스

시야를 넓혀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특별한 것 같습니다. 나를 벗어나서 주변을 돌아보기도 버거운 요즘, 그 이상을 살펴보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스님의 인터뷰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감상해보실까요?



Q1. 당신은 이상적인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본인이 가진 이상적인 관점이나 가치관을 설명해주세요.

- 그런 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가치관을 정의 내린다면, 저는 사람의 선함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결국은 사랑이 모든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 사회의 문제들이 최근 들어 더 부각되고 있는데, 사회의 좋지 않은 맥락을 파헤쳐본다면 개인의 범죄나 구조적 폭력 등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이 사실상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다른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 결핍이나, 사회적/역사적 결핍들이 근원이 되어 뒤틀려진 결과를 일으키는 것이죠. 그래서 해결의 중심에는 사람의 선함, 그리고 뒤틀린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선함과 사랑이 인간 문제뿐만 아니라 더 확장시켜 나가서 환경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2. 이러한 가치관이 당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 우선 저의 정체성을 키워드로 표현하자면, 사랑이나 인류애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이런 가치관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어떤 끔찍한 일들을 저지른 사람들을 생각해도 결국엔 모든 이유가 있어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과거의 일이나 경험으로 인해 현재의 일들이 약간 대물림되는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 범죄가 일어난 경우에는 그 범죄자에게 서사를 입히는 게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유가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우선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고 싶어요. 따라서 저는 누군가는 그 사람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 사람의 결핍을 어루만진다면 문제가 조금씩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제 정체성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평소 제가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뒷받침된 결과라고 생각해요.


Q3. 당신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던 인문학, 혹은 철학이 있을까요?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영화 등등, 나아가서 자신이 가진 삶의 철학을 공유해주셔도 좋습니다.)

- 먼저,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이 영향을 많이 주었어요. 모호하게 가지고 있었던 저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시켜준 책인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즉,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사람이라고 인식할 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말해요. 그리고 환대를 받아서 우리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여기에 제가 수강했던 불교 철학 수업에서 배웠던 인드라망에 연결이 되어 서로의 연결로 존재한다는 맥락의 이야기도 가치관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보면, 사람 간의 커뮤니티, 나아가 다른 생명과의 연결을 이야기하고, 이런 연결망이 우리를 존재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결정적으로 제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채식을 하게 만들었던 책 중에 '그건 혐오예요'라는 작품이 있어요.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서사를 담고 있는 에세이인데, 이 책의 맥락에서 보면 모든 혐오 또한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고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뻗어나가고 연결되어있는 개체가 훨씬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이전에 인간이 마주한 재앙에 더 집중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저와 다른 개체 간의 연결고리를 더 확장하며 환경이나 비인간 생명체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되었어요. 덧붙이자면, 사람들의 서사가 가득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모모'라는 책도 어린 시절 제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 책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정혜윤 피디님의 말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굉장히 많은 연결들을 감각하고 있고, 결국 사랑이 해답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분인데,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Q4. 혹시 자신이 지닌 이상적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을 한 적 있나요? 있었다면 어땠는지, 없었다면 왜 행동을 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세요.

- 사실 이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친구를 만나고 학교 다니는 걸 제외하면 거의 모든 행동들은 제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예시를 들면, 저는 전시회를 선택할 때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전시를 선호하고 찾아봐요. 이렇게 일상생활에서의 대부분의 행동들이 다 제 가치관의 영향을 조금씩은 받아서 표출된다고 느껴요.

최근에는 환경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단체나 동아리를 통해 연대하고 활동하고 있어요. 특히 지금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지구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믿는 저는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려 해요. 채식도 그중 하나인 것 같고, 비영리단체에서 1달 교육도 받고, 캠페인이나 프로젝트형 활동도 진행하고,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학교 동아리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활동 중입니다. 사회 구조적 식문화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 선택으로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움직임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채식이나 대체품 찾기와 같은 일들 말이죠. 그리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로서 만들 수 있는 변화들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끝으로 최근 가장 뿌듯했던 경험은 동아리 사람들과 교류하며, 직접 생각해내서 진행한 프로젝트인 '기숙사 플라스틱 프리 팝업 행사'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작은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낸 뒤 받았던 긍정적 반응들이 제가 계속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5. ‘이상적인 사람’이라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다면요?

- 이상을 꿈꾸면서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동시에 내가 오늘 먹을 음식, 살게 될 집,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 어려움인 것 같아요. 미래와 오늘을 함께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요.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내 이상을 굳건히 지켜내면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사실 이상을 생각하면서도 매번 현실적인 문제들도 고려해야 하잖아요? 오늘을 살기 위한 것들을 배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저와 비슷한 이상을 가진 게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미래를 그리면서도 지금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저의 어려움이나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Q5.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 관점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 저의 기본 가치관이랑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선함에 대한 믿음이 있고, 이 요소가 제 안에도 존재하고 타인에게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그 사랑을 전해주지 않는다면 내 안의 요소를 찾기 어렵다고 봐요. 결국에는 본인의 이상을 지켜나가고 이를 확장시키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사랑의 힘을 믿게 될 테고, 그렇다면 제가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판단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요.


Q6. 그렇다면 본인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비슷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 느낀 것 중 하나로, 이전에는 주변의 사람들에 영향을 많이 받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만들어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 정체성의 틀이 존재하게 되었고,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점차 모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게 분명하니까, 그걸 공유하면서 더 견고해진다는 점에서 나와 서로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Q6.1. 연대를 도모하는 게 실질적 도움이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 네! 연대를 얘기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제로 원주민 이야기가 있어요. 그들의 싸움을 볼 때 연대하기의 문제는 생존과 직관된다고 봐요. 그들의 존재 자체로 만들어내는 변화의 파장이 있었어요. 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의 존재 자체가 메시지를 던지고 변화를 만드는 것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거에 있어서 생존이 시작점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치관을 지켜나가면서 변화에 대해서 생각하고, 어떤 방법을 찾고 그 아이디어를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연대가 실질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요.


Q7. 구체적인 질문을 드려볼게요. 저는 이상적인 사람들이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주변에서 ‘공감하기 어렵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면, 자연스레 나의 가치관이나 행동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만약 당신의 이상적 행동을 어필하고 싶거나, 혹은 당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추가적으로 위에 설명한 내용과 같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으면 설명해주셔도 좋습니다.)

- 저는 부모님과의 충돌이 있었어요. 돈보다는 다른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제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어서 방법을 찾는데, 그게 부모님한테는 만족스럽지 못했나 봐요. 채식을 처음 할 때도 부모님이랑 충돌이 있었고, 현실을 모른다는 이야기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깨달은 건, 내 신념에 확고하게 달라붙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제대로 해내고 그걸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타인을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작년에 제가 SNS에 플라스틱 일기를 매일 올렸는데요. 그때 진짜 많은 친구들이 좋은 자극이었다고 피드백을 많이 줬어요. 그들을 설득한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행동에 대해 존중하는 단계는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현실을 모른다는 반응이 있을 때도 있지만, 제가 확고하게 밀어붙이고 이 길을 통해 좋은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아직까지 누군가를 설득하고 주장하는 건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사람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틀렸다고 지적해주고 그걸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저는 그런 쪽은 아니고 확고한 가치관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타입이에요. 약간 행동 중심의 접근 방식이라고나 할까요? (웃음) 저는 행동이 주는 설득력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Q8.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그리고 반대로 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인터뷰를 끝내며 덧붙이고 싶은 말 등을 자유롭게 표현해주세요.

- 저는 제 주변에서 같은 이상을 꿈꾸는 친구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요. 친구들 덕분에 제가 꾸준히 가치관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 우리도 현실의 벽 앞에 흔들릴 때가 있겠죠. 근데 저 이미 누군가가 흔들리면 서로 때려주기로 한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렇게 서로를 지탱하며 나아가려고요. 아, 그리고 제가 진짜 아끼는 이상적 친구의 부모님이 해주신 말씀인데, 만약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이상적이고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오히려 이 세상은 혼돈일 거라고 하셨어요. 그냥 하루하루를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세상이 지켜지면서 우리 같은 사람 덕에 조금씩 변화해갈 수 있는 거라고요.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라고 봐요.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몫을 차근차근해나가면 되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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