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온유 Apr 20. 2023

멜론

두 번째 계류유산은 여전히 진행 중

오랜만에 마트에서 멜론을 집어 들었다.

우리 딸을 임신했을 때, 거의 매일 멜론을 먹었을 정도로

멜론은 나의 임신성 소울푸드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두 번의 유산을 겪을 때는 멜론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새콤한 과일을 입에 달고 살다가, 인생의 진짜 신맛을 유산을 통해 경험했다고나 할까.


오늘 또 오랜만에 해 본 일이 또 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해 버렸다.

아직도 뱃속의 아기집은 그대로 있지만,

임신 호르몬에 지기 싫어서 녹아내리는 마시멜로우같은 몸에 운동을 강제해 버렸다.


자도 자도 피곤한 임신 호르몬이 아직도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 탓에,

아무 일에도 집중이 되지 않고 기운이 솟지 않는 요즘.


유투버 강사님이 알려주시는 동작들을 무념무상으로 따라 하고 나니,

체내에 면역력 같은 운동에너지가 조금은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논문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니,

갑자기 멜론이 먹고 싶어졌다.


이 밤에 야식이 웬 말이냐 싶어 애써 모른 체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입덧이 올라왔다. 


그 순간, 내 안의 생명이 느껴졌다.


빈 아기집이 분명한데도

달큼한 과즙을 원하는 생명.


미리 잘라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던 멜론을 꺼내 몇 알을

우물우물 거리고 나니


내 안의 생명은 다름 아닌

"나"구나! 

하는 깨달음이 슬슬 거리는 미소와 함께 올라왔다.

두 번째 계류유산 소식을 듣고, 아기집과 함께 죽었던 내가

두 세트의 플랭크 운동을 통해 조금은 태동을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


또, 저녁식사를 마치고 참 달게도 멜론을 먹는 딸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우리 딸은 멜론을 정말 좋아하네~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멜론 잘 먹었는데. 엄마가 널 임신했을 때, 멜론 정말 많이 먹었었어."


그 얘기를 듣자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딸.

"엄마, 그래서 내 머리 위로 멜론이 떨어졌었어?"


역시 넌 내 비타민.

순간 우울과 피곤의 임신 호르몬이 환기가 된다.


"큭큭... 아니야, 네가 내 뱃속에 있었을 때는

네가 아기집 안에 안전하게 들어있었어서 멜론이 네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았지"


나는 웃으며, 

뱃속에 딸을 품고 있을 시절을 떠올린다.

멜론을 입에 배어물 때마다

덩달아 뱃속에서 입을 맛있게도 오물오물거렸을 그녀.


그래, 생명이 내 안에 있는 한, 나는 멜론을 먹어야지.


빈 아기집 위로 멜론이 톡톡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멜론이 자고 있는 아기집 생명도 깨워주면 참 좋을 텐데.


멜론 한 입, 아기집이랑 나랑 나눠 먹는 달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빈 아기집을 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