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코드(5) - 계층(Level)을 설계하라
당근마켓에
‘끌어올리기’라는 기능이 있다
일명 ‘끌올 기능’은 말 그대로 오래된 게시글을 최신글로 끌어올리는 기능이다. 왜 끌어올릴까? 눈에 띄기 위해서다. 눈에 띄어야 관심을 받는다. 관심을 받아야 팔릴 확률이 높아진다. 글이든, 물건이든, 나의 의도를 전달하는 모든 콘텐츠는 정보의 산더미에서 무조건 최상단에 올라와 있어야 한다. 하단부에 머물러 있으면 그걸로 끝이다. 보이지 않으면 묻히고, 묻히면 끝이다. 존재조차 몰라준다. 요즘 마케팅에서 ‘키워드 상위 노출’에 그토록 목메는 이유다. 이른바 ‘황금 키워드’ 상위 노출을 위해서는 목돈이 든다. 하지만 당근마켓의 끌올 기능은 돈이 들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만 경과하면 하위층에 묻혀버린 내 글을 버튼 한번으로 즉시 상위층으로 수직 상승시켜준다. 고마운 치트키다.
글쓰기에도 ‘끌올 기능‘이 있다
다음의 기획서를 보라. 찬찬히 읽어보라.
( 「10초만에 이기는 보고서, 2016」 예시 재구성)
기획서가 생각을 파는 설득 행위라면 이 문서는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은 이 기획서를 보고 설득당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신은 약간의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한참을 초집중해서 정독하는 수고와 에너지를 소모해야 무슨 말인지 겨우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를 수도 있다. 내용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한눈에 핵심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음 문서를 보자.
같은 내용을 다르게 쓴 기획서다.
이 기획서는 당신을 설득하는데 성공했을 수도 있다. 물론 실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전자의 기획서보다는 설득의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번 문서를 읽는 당신의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내용이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핵심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문서의 보고 대상자이자 의사결정자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당연히 [A]보다는 [B]에 마음이 더 움직일 것이다.
왜 그럴까? [A], [B] 두 문서의 차이가 뭘까?
• [B]문서의 논리가 더 탄탄해서(논리코드)?
• [B]문서에 그림과 데이터가 보기 편해서(감정코드)?
물론 그런 부수적인 이유들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
• 핵심 메시지의 배치다.(결론코드)
문서[A]는 결론을 하단부에 배치하여 희미하다.
문서[B]는 결론을 최상단에 배치하여 선명하다.
설득 비즈니스 글은 수직 계층 구조다
"제가 LA에 있었을 때는 말이죠...블라블라"
이른바 박찬호식 말하기 방식이 죽도록 지루하고 피곤한 이유는, 상대에게 중요하지 않은 배경과 발단부터 장황하게 늘어놓기 때문이다.
말할 땐,
상대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을 먼저 말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내용을 말한다.
그다음 중요한 내용을 말한다. 끝.
말하기와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글을 쓸 땐,
• 중요한 내용(결론/핵심)은 상위 레벨로 끌어올린다.
• 덜 중요한 부연 설명은 하위 레벨로 끌어내린다. 끝.
이것이 비즈니스 글쓰기의 기본, 수직 작법이다.
Level 0 : 대결론 - 제목(타이틀), 전체의 결론
Level 1 : 소결론 - 단락/문단/절 단위의 결론
Level 2 : 소결론의 뒷받침 부연설명
Level 3 : 부연설명의 뒷받침 부연설명
가장 좋은 문서는,
제목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는 문서다.
문서에서 당신의 결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최상단의 높이는 ’제목(題目, title)’이다. ‘제목/타이틀’은 문서 구조의 최상위계층, ‘Level 0’이다. 가장 중요한 문서 전체의 결론인 ‘대결론’을 배치할 수 있다.
[A], [B] 문서의 Level 0(제목/타이틀)을 살펴보자.
문서[A] - 제목(Level 0) : ‘신규 사업 기획서’
문서[A]의 제목만 봐서는 ’무엇에 관한‘ 신규 사업 기획서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결론도 없고, 그 어떤 의도도, 메시지도 없다. 그저 글자 그대로 ‘신사업에 관한 문서인 듯?’ 정도로 느껴질 뿐, 무색무취다. 다음 내용이 전혀 궁금해지지 않는다.
반면,
문서[B]- 제목(Level 0) : ‘신상품 당질 0미 기획서‘
문서[B]의 제목에서는 ‘무당질 쌀을 신상품으로 개발하자!’라는 기획자의 결론과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무당질 쌀? 신박한데? 가능은 할까? 돈은 될까?’ 등등 여러 반응이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문서의 다음 내용에 호기심이 생긴다. Level 0(제목)은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소결론이란 대결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결론인 동시에 각 문단이나 절(paragragh) 단위의 작은 결론을 말한다. 소결론은 각 절 단위의 Level 1 또는 Level 2에 배치하는데 일반적으로는 Level 2에 배치되는 편이다. 왜냐하면 Level 1에는 주로 ‘질문(항목)’이 배치되기 때문이다. 즉 <Level 1 : 질문/항목, Level 2 : 답변/결론>의 대화 형식으로 나타난다.
문서[B]를 계층화해서 다시 보자.
1.
문서[B] Level 1 : “왜 당질 0미인가?“ (질문/항목)
문서[B] Level 2 : “비만 해결은 국민적 과제이자 커다란 비즈니스 찬스이니까!“ (답변/결론)
왜 ‘당질 0미’인지에 대한 상대방의 궁금증(Level 1)에 Level 2에서 말 돌리지 않고 명확하게 즉답을 한다.
2.
문서[B] Level 1 : “왜 지금인가?“ (질문/항목)
문서[B] Level 2 : “당사 주력 상품의 수익성 하락 개선이 시급하니까!“ (답변/결론)
Level 1에서 꼭 지금 해야하는지 시기 문제를 제기했고, Level 2에서 그 이유를 역시 명쾌하게 답변한다.
3.
문서[B] Level 1 : “경쟁력이 있는가?“ (질문/항목)
문서[B] Level 2 : “관련 기술과 가격 경쟁력 면에서 당사는 최고 수준이다!“ (답변/결론)
Level 1에서 신사업의 당사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고, Level 2에서 그 의구심을 종결짓는다.
반면,
문서[A]를 보면 짜증이 나는 본질적인 이유도
수직 계층 구조의 문제다.
문서[A]의 최상단 Level 0(제목/타이틀) 부터 그 아래 Level 1, 그다음 Level 2에도 결론과 핵심이 없다. 비로소 Level 3에 내용이 등장하지만 그 마저도 모호한 메시지다. 즉 수고스럽게 Level 3까지 내려가서 꼼꼼이 읽어봐야 짐작할 수 있거나, 심지어 다 읽어도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없어 Level 0~3 까지의 내용과 정보를 전부 취합해 나름의 결론을 유추해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비효율적 민폐행위다.
문서[A]의 한 단락을 예로 들어보자.
1.
문서[A] Level 0 : ‘신규 사업 기획서‘
문서[A] Level 1 : 시장 상황 분석
문서[A] Level 2 : 시장 규모와 성장성
문서[A] Level 3 : 2024년 국내 다이어트 시장 규모 5조 300억원 / 2030년 시장 규모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됨
언급한대로 Level 0에서는 ‘어떤 신규 사업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아 모호하고, Level 1과 Level 2에서도 시장 상황이 어떻다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어 답답하며, Level 3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내용이란 게 등장하지만, 내용을 읽어봐도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결론을 알기 힘들어 짜증이 난다.
하나 더 살펴보자.
2.
문서[A] Level 1 : 당사 상황 분석
문서[A] Level 2 : 매출 상황
문서[A] Level 3 : 식생활의 변화 속 콩가루 등 당사 제품 수요는 지속적인 감소 추세 / 당사 도매 소매라는 판매채널 유지해 이익률이 낮음
Level 1과 2에서 ‘~상황 분석‘, ’~상황‘이라는 현상 기술만 있을 뿐, 역시 유의미한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 이번에도 Level 3까지 ‘힘들게’ 내려 가면 그나마 내용이란 것을 만날 수 있지만 그마저도 공허한 메시지일 뿐이다. 내용이 결론(판단이나 의도)이 아닌, 현상의 서술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기획서가
주로 [A]유형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비즈니스 현장에 [A]와 같은 지루하고 모호하고 임팩트없는 불량 문서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사실, 대다수다. 몇몇 일잘러들의 문서를 제외하면 [B]유형의 기획서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A]유형의 문서 작성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문서가 뭐가 잘못 되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네? 제 문서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구요? 결론이 모호하다구요? 에이, 자세히, 잘 읽어보세요!“
“문서에 결론을 명시하지 않았다구요? 에이~결론이 너무 드러나면 촌스럽죠. 다른 내용들을 자세히 보시면 결론은 굳이 말 안해도 짐작할 수 있죠.“
문서를 보는 상대방은 짐작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매우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고, 매우 잘 알아 들을 수 있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다.
우리의 기획서 작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문서 작법은 전자(before)에서 후자(after)로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 핵심은 계층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획서는 두괄식으로 쓰세요~!”가 아니다.
당신의 결론을 상위 레벨로 끌어올리는 작법이다.
사실, 비즈니스 문서 작법에서는 ‘두괄식’보다는 ‘두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수 있다. 당신에게 ‘두괄적’이란 표현을 제안하고 싶다.
‘두괄식’은 전체 글의 ‘대결론’을 앞(Head-line)에 배치하는 라인(Line) 작법인 반면,
‘두괄적’은 각 단위의 ‘소결론‘을 Level 3이나 4에서 Level 2의 레벨로 끌어올리는 계층(Level) 작법을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결론도 최상단인 Level 1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아래의 문서 [C]와 같이, Level 1의 ‘질문/항목’을 생략하고, ‘Level 2’의 대답/결론을 Level 1으로 과감히 끌어올리는 작법이다.
(아래 문서[C]의 푸른색 부분을 참조하시라)
어떤가? 보다 선명하고 깔끔한 기획서가 되었다.
언급한대로, 일반적인 문서 작법은 소결론을 Level 2에 배치하는 방식이지만, 위의 [C]처럼 Level 1까지 끌어올리는 작법도 경우에 따라서는 꽤 효과적이다.
두 가지 작법 모두 좋다. 둘 다 충분히 익혀서 경우에 맞게 적절히 선택하여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을 Level 3 이하로 끌어내리지만 않으면 된다.
결론을 Level 2 이상으로 끌어올리시라.
그것이 결론코딩의 핵심이다.
당신의 기획서에 ‘끌올 기능’을 적용하라.
상대의 스트레스가 줄어들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더 잘 팔릴 것이다.
당신의 문서 퀄리티를 한 차원 끌어올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