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수옥은 4인실의 병실 안쪽 끝에 자리 잡았다. 맞은편 여자는 이 방에서 검은머리를 한 유일한 사람이다. 수옥보다 열 살쯤 어려 보였는데 허리에 플라스틱 보호대를 두르고 침대 위에 앉아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허연 머리를 돌리고 모로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둘 다 허리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 다시 눈은 맞은편 여자가 매니큐어를 바르는 손을 분주히 따라다닌다.
콩밭에 쳐둔 그물 울타리가 화근이었다. 김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려 울타리를 넘었다. 그물은 뱀처럼 수옥을 발을 두 번 감았고 그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가슴에 뭔 사단이 난 것 같이 찔러대서 일어나지 못했다. 119를 부를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말 많은 동네에 구급차가 삐뽀거리며 나타날 광경을 생각하니 안그래도 심심한 마을에 큰 이바구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아 넘 부끄러웠다. 수옥은 팔십 인생을 넘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 이까짓 것 못한다고 여지껏 잘 지켜낸 자신의 위신을 잃어버릴 순 없었다. 제 작년 남편이 치매에 걸려 하루하루 나를 도둑년 다루듯 할 때도 넘 부끄러워 동네에 알리지 않았다. 5년전 막내딸이 백혈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을 얻었을 때도 넘 부끄러워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혔길래 딸래미가 그런 몹쓸병에 걸렸을까라는 말이 넘 부끄러워서.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간신히 다리를 접고 끙끙거리며 수옥은 일어섰다. ‘내일 아침이면 괜찮을 거야.’ 다리를 질질 끌고 가슴을 움켜쥐며 수옥은 집으로 향했다.
며느리가 손녀를 데리고 온다고 한다. 수옥은 반갑다.
“힘들게 오지 말라고 헜는디 매느리가 손녀 데리고 온다네.”
“난 애들 힘들까봐 오지 말라구 혔는디. 온다구 허는걸 뭣하러 오냐구. 괜찮타고.”
애들 걱정 왜 시키냐며 한 마디씩 한다. 수옥은 먼 길 오는 애들 힘들까봐 맘이 쓰이지만 몇 달 만에 보는 손녀가 기다려진다.
며느리와 손녀는 1시간 정도 있다가 갔다. 4월 초의 평년기온보다 7도나 높은 온도 때문인지, 아쉬움 때문인지 수옥은 덥다. 침대 위에 올려진 호두과자와 천혜향을 한쪽에 잘 치운다. 다시 눕는다. 이 병원은 노인네들만 있어서 그런가 방바닥이 따숩고 한기가 들지 않게 잘 관리해 주는 것 같다. 처음으로 남편 밥 걱정 않고 병원에 누웠다.
작년 봄 그녀의 남편은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기운을 못 차렸다. 추워서 벌벌 떠는 것 같아 아궁이 불을 계속 넣었다. 방바닥은 뜨겁게 달아오르는데도 남편은 계속 부들부들 떨었다. 급기야 남편의 등엔 진물이 흐르고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잠만 자기 시작 했다. 자식들이 도시에서 내려왔다.
“엄마, 아빠 등이 왜 이래? 방이 너무 뜨거워서 화상 입었잖아. 아니 왜 알지도 못하면서 불을 그렇게 땠어요?”
“당장 119 불러서 병원에 모셔야겠어요.”수옥의 큰아들은 성화를 부린다.
“아니다. 다 죽어가는 늙은이 어디서 받아주겠어. 내가 데리고 있다가 보낼란다.” 수옥은 고집을 부린다.
‘넘 부끄럽게 무신 병원은.“
“다 죽어가니까 병원에 모셔야죠. 치료해 보다가 깨끗하게 보내 드려야지, 집에서 어떻게 할건데요?”
큰아들과 큰딸은 수옥을 몰아세웠다. 119가 왔다. 남편은 눈을 뜨지 못했다. 이불을 덮은 채로 남편은 들것에 실려 119에 실렸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저세상으로 갔다. 남편과 선을 본 날 시어머니는 자랑스럽게 얘기했었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여자를 모른다. 그거 하나만도 대단한 일이니께 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수옥은 수옥의 어머니가 그랬듯 남편에게 매끼 따순밥 지어 올리고 가장 먼저 밥을 푸고 국을 퍼서 올렸다. 그리고 여섯 자식이 생겼다.
수옥의 막내딸은 유난히 몸이 약했다. 막내딸이 똥통에 빠진 날부터 몸이 약해졌던 것 같다고 그녀는 추측했다. 막내딸의 한쪽 신장이 대부분 망가졌다는 말을 들은 2년 후, 그러니까 5년 전이었다. 다리가 아파서 정형외과에 한참을 다니더니 어느 아침에는 급기야 걷지 못했다. 급성골수성 백혈병이란다. 수옥은 왜 내 밤톨같이 예쁜 딸이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건지 하느님에게 물었다. 교회에서도 밤에 자기 전에도 눈물을 흘리며 물었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수옥의 막내딸은 남편이 치매 판정받은 즈음 하늘로 갔다. 밤처럼 뽀얗던 살이 모두 사라지고 뼈만 남은 채 갔다. 금계국이 길가에 쫙 퍼져 해처럼 빛나던 때였다. 수옥은 그때 갈비뼈가 다 으스러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하나가 부러져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이다.
매니큐어를 다 바른 검은 머리 여자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모두 틀어 올려 머리핀을 꽂고 있다. 건너편 여자의 손주 부부가 왔다. 손주는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를 수옥에게 건넨다. 요구르트를 빨아들이자 갈비뼈가 욱신 거린다. 수옥은 그녀의 세상이 얼마나 남았을까 궁금하다. 숯으로 변해버린 마음은 잔불로 근근히 열을 내는 것 같다. 양파밭에 풀이 얼마나 자랐을까, 고추 모종을 덮은 비닐도 벗겨줘야 하는데. 넘 부끄럽게 고추 모종이 다 타버릴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