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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Sep 23. 2023

사람으로 산다는 것

장애인 이동권

“사람을 찾습니다. 1993년에서 1995년 여름, 저와 함께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한 청년을 찾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삼십 년이나 지난 지금 애타게 사람을 찾고 있는지 궁금했다. 청년을 찾고 있는 사람은 뇌병변 장애인 이규식씨로 현재 장애인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분이다. 삼십 년 전 이십 대 청년이었던 그는 장애인 시설에서 평생 갇혀 살아야 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과감히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왼팔로만 수동 휠체어를 겨우 밀 수 있었던 그에게 고난 그 자체였다. 그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 휠체어가 가기 힘든 모든 길에서 사람들에게 밀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드디어 목포항에 도착했고 겨우 제주행 배 티켓을 구매했다. 배를 타러 가는 길에 갑자기 휠체어가 빠르게 달림을 느꼈다. 한 청년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그 청년은 밤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이규식씨를 갑판으로 데려가 별을 보여줬고, 제주도에 머무는 3박 4일간 밥을 먹여주고 옷을 입혀주며 모든 일을 챙겨 주었다. 그 시간은 이규식씨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청년은 내가 세상으로 나와도 괜찮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야. 그 청년 덕에 내가 세상으로 나온 거야. 진짜 고마워. 이름도, 나이도 잊었는데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9월 11일 월요일에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했다. 지난 9월 5일 내년 예산안에 장애인의 이동권 및 일할 권리 보장 예산이 삭감되거나 폐기 되어 그들의 기본권이 보장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22년째 이동권 투쟁 중이다. 비장애인들은 바쁜 출근 시간대 시위를 벌이는 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에게 온갖 욕을 하고 사라지라고 소리친다. 그 모습이 일그러진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끔찍하다. 그렇다면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현실은 어떨까? 전국적으로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 운영률은 27.8%이며 서울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275개역중 21곳에 설치되지 않았다. 장애인 콜택시는 지자체마다 운영기준이 달라 타 도시로 움직이기도 힘들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휠체어 리프트 설치나 저상버스가 의무 조항이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버스가 한 대도 없다. 장애인은 여행이나 타 도시로 이동은 꿈도 꾸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이 되는 순간 죽을 때까지 평생 시설이나 방 한 칸에서 갇혀 지내야 한다. 이규식씨는 운이 좋았다. 모든 장애인이 이규식씨가 받았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시설에서 나오기도 힘들다. 세상은 장애인들을 위한 돈은 쓰지 않으려 한다. 정치인들은 훨씬 많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비장애인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편이 되지 않는다. 세상은 그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말고 안전하게 시설에서 살라고 한다. 나는 비장애인이며 장애인들의 고충은 겨우 토막뉴스나 활동가들이 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사람이 되는 기준이 있다. 사람은 장애가 없어야 하며 대졸 이상에 어느 정도 소득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이규식씨가 그 청년을 찾기를 바란다. 자신의 아름다운 행동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그 청년이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목숨을 건 이규식씨들의 투쟁으로 다리가 불편하신 우리 어머니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되었고, 치매를 앓고 있는 친척이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출근길 지각하게 되었다고 불평하는 대신 지하철을 타려는 그들의 휠체어를 밀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세상에 나오는 게 당연하듯 그들도 당연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곧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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