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이상 열심히 일한 나에게.
퇴직 선물로 뮤지컬 주간을 선물했다.
뮤지컬 주간 첫날.
내가 예매한 것은 뮤지컬 데스노트였다.
사실 나는 원작의 굉장한 팬이다.
일반판부터 애장판까지 모조리 사 모아 책장에 전시되어 있다.
애니메이션부터 일본 특유의 오글거리는 느낌의 영화까지 죄다 섭렵했을 정도로.
아직도 내 플레이 리스트에는
2015년 첫 공연이었던 데스노트 노래가 포함되어 거의 매일 듣는다.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질투한다.
‘어떻게 사람 머릿속에서 저런 스토리가 나올 수 있는 거지?’
그리고 그 사람이 왜 내가 아닌 걸까.
살아생전 홍광호 배우님의 연기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인 강홍석 님도 뵙고 싶었고.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보고 싶었던 데스노트는 첫 공연부터 마지막 티켓팅까지 죄다 실패했다.
나의 똥손은 생각보다 클릭을 빠르게 하지 못했다.
나 때는 말이야, 어?
보고 싶은 뮤지컬이 있으면 돈만 있으면 표를 구했다고.
근데 지금은 이게 뭐야?
돈과 시간이 있어도 VIP 표 구하는 게 어렵네?
이상했다.
분명 표가 풀리는 한 시간 전부터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땡하는 정각에 클릭했는데.
왜 내 앞에 대기자가 이렇게 많은 거죠?
대체 표를 얻는 데 성공하는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야?
그냥 많이도 안 바란다.
1층 좌석. 그거 하나만 있으면 만족하는 내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
이러다 이번에도 관람하지 못하고 데스노트를 놓칠 거 같았다.
결국 4층 가장 앞줄 표라도 잡아야만 했다.
이 사진을 찍을 땐 몰랐다.
내가 무대를 보게 될 시야가 이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거란 것을.
누군가 말했다.
에이, 설마. 그때는 그리 가볍게 생각했지.
10배율 망원경을 챙기고,
저번보다 화려해진 무대 영상을 즐길 생각에 마냥 기뻤다.
유튜브로만 보고 듣던 홍광호 님의 전설적인 목소리를 실제로 들을 수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이번 생은 참 좋은 삶이라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그 더운 날 힘겹게 찾아갔더니.
예술의 전당이 날 비웃었다.
4층은 높은 경사 탓에 목숨을 건 스릴을 느끼며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이렇게 위험한데 무슨 안전 바는 이리 낮아?
내 무릎보다 낮은 나무 지지대는
조금만 삐끗했다간 그대로 추락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다른 뮤지컬들과는 다르게 여기선 커튼콜 촬영도 금지였다.
뮤지컬은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관극 문화가 이렇게 바뀐 거야?
결국 이 날은 배우님들 정수리만 보고, 노래를 듣다 나왔다.
이럴 거면 유튜브로 음악만 듣겠….
(아, 아닙니다. 할 말은 많지만, 안 해야지.)
다음번엔 날 위한 표가 있기를.
한 번쯤 상상해본다.
내가 만약 라이토라면.
데스노트가 내 눈앞에 떨어져 있다면 어떨까?
직장에서 날 괴롭혔던 놈들 이름을 확 써버려?
(그런데 퇴사하니 미운 감정도 조금 흐려졌다. 이제 다시 볼일도 없는 사람들인데 신경 써서 뭐 하나 싶기도 하고.)
나라면 데스노트를 주웠을 때, 분명 이럴 것 같다.
“아싸, 득템!”
이런 말을 외치며 내 장식장에 고이 보관해두겠지.
이게 바로 그 전설의 데스노트란다.
남들에게 자랑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덕후는 계를 못 타.
이번에 데스노트 피켓팅에 실패 아닌 실패를 한 것처럼.
죽었다 깨어나도 내 상상이 이뤄지는 일은 없겠지.
언젠가 나도 이런 기발한 스토리를 써 보고 싶다.
나도 노력형 천재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