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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스포인트 Nov 08. 2022

새 신발을 신고 외출을 했다

부디 다음번엔 적극적으로 내 편이 되길.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의 경조사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기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새벽부터 일어나 꾸며댔다.

어쩌면 새신랑 새신부보다 그날은 내가 먼저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만에 치마를 입고 화장하니 기분이 설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집 현관을 나서기 전, 신발장을 열어 내가 가진 구두를 쭉 살피다가 새 구두가 눈에 띄었다.

사놓고 신을 일이 없어 깜박 잊고 방치한 빛이 나는 새 구두.

각이 잡힌 그 새 신발이 그때 내 눈엔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새 신발을 신고 열차를 타러 온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오늘 큰일 났네.’


등 뒤로 식은땀이 비죽 흐르며 발에서부터 느껴지는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새 신은 지나치게 불편했고, 오른쪽 발가락 한 부분에 피가 통하지 않는 듯 감각이 점차 없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 살이 쪄서 발이 커진 걸까?

아니면 길이 들지 않아 이렇게 불편한 건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으나 열차 시간이 간당간당하여 그대로 서울행을 택했다.


어찌어찌 호텔에 도착했고, 그나마 지정석이 있었기에 앉아서 신발을 몰래 벗으며 2시간이 넘는 결혼식을 버텨냈다.

결혼식 후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하러 카페를 찾아 잠시 방황했는데. 그 순간까지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남몰래 표정을 구겼다.


나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찌릿한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해야만 했다.

이미 그때는 발뒤꿈치도 까져 피가 흐른 뒤였다.


그래도 오른발만 불편하니까. 왼발은 괜찮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저녁에 뮤지컬을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나는 기어이 무식하게 참고 걸으며 신발이 늘어나 편해지길 속으로 기도했다.

걷다 보면 내 발이 익숙해져 괜찮아질 거라고.

저녁 무렵에는 5499번째 열리는 뮤지컬 빨래를 다시 관람하면서 웃고 남몰래 눈물짓다 나왔다.

그리고 극장을 나와 서너 걸음쯤 걸었을까.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한숨이 나왔다.


나는 이렇게 어리석다.

뮤지컬 속 주인공 나영이 “나는 지치지 않을 거야!”를 다짐하며 외치던 순간.

나 역시 그럴 거라며 고개를 까닥이다가도.

한 시간도 안 되어 지쳐버린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여 눈물을 흘리다가도, 정작 내 아픔만큼은 외면했다.


길고 긴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즈음.

택시에서 내려 고작 몇 걸음 걷는 것뿐이었는데.

뒤늦게 이런 후회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차라리 결혼식 끝나고 싸구려 운동화라도 살걸.’


그랬다면 친구와의 만나는 시간이 조금 더 즐거웠을 테고,

뮤지컬을 즐긴 후에도 다리가 아파 절뚝이지 않았을 거다.


내 후회는 이렇듯 항상 늦다.

나는 대체 언제쯤 진정으로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젠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거라고 퇴사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런 사소한 일에도 나 자신을 우선으로 배려하지 않고 행동하곤 한다.

아무래도 나를 배려하는 것도 습관이 들어야 할 수 있는 일인가 보다.


어릴 땐 남을 더 배려하고 나만 참으면 되겠지. 그게 미덕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었는데.

자기비하와 자책이 내게 상처로만 남을 줄도 모르고.

바보 같이 견디며 살았고 그게 관성이 되어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다.


지금은 그리 가르쳐 준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착한 아이 증후군에 갇혀 나만 손해 보고 괴로워하는 인생이라면.

정작 내 인생에서 내가 없는데 그게 무슨 미덕이겠나. 불행한 삶이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새 신발을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졌다.

이게 얼마짜리 가치가 있건 그건 중요치 않았다.

내 외출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새 신발은, 지금의 내겐 2천 원짜리 슬리퍼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이제는 조금 이기적으로 살아보자.

모든 일에 내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해보려고 노력하자.


착한 아이 증후군으로 인생의 삼 분의 일 이상을 살았던 나는.

이제는 날 상처 내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며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누군가 날 상처 주는 말을 하면 되받아치자.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더라도 ‘자기소개를 하시는군.’이라 생각하며 흘려 넘기자.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아무리 이기적으로 굴어도 남들보다 못되게 되기엔 여전히 무른 사람으로 남을 것임을 안다.


그러니 이 험난한 세상 나라도 든든한 내 지원군이 되어보자.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부디 다음번엔 적극적으로 내 편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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