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열애를 했다 매일 만났고, 헤어지고 나면 두 시간이 넘게 전화 통화를 했다. 그 당시 내 하루는 온통 남편 생각뿐이었다. 남편에 대한 사랑에 푹 빠져있던 어느 날, 남편의 얼굴이 매우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 순간 걱정이 되었다. 남편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음... 난 지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 평생 고생 많으셨던 어머니를 혼자 사시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형수님이 한 분 계시지만, 그동안 어머니를 모신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모실 의향이 없으시다고 내게 말씀하셨어. 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은데... 괜찮은지... 묻고 싶어서..."
무거운 얼굴과 무거운 목소리, 하지만 내 대답은 빨랐다
"당연히 모시고 살아야지. 우리가 어머니 모시고 살자."
내 말에 남편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이 사람에게 이 말이 그리도 힘들었구나, 안쓰럽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살고 있던 전셋집은 크기가 작았다. 엄마가 사 주신 침대가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세 사람의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내게 잘해 주셨다. 나도 어머니의 상냥하고 예쁜 며느리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머니는 내 앞에서 자꾸 형님 험담을 하셨다. 듣기가 거북했다. '큰며느리라는 애가 나를 안 모시고 살려고 작정을 했으니 니가 나를 평생 잘 모셔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하셨다. 나는 형님이 했다는 그 말이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머님을 평생 모시고 살 거라고 말씀드렸다.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형님이 왜 그렇게도 어머님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었다. 앞날이 캄캄했다. 남의 험담이 심했던 어머님이 난 너무나 불편하고 싫었다. 동네 사람들, 친척들, 심지어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까지 모두 어머님의 밥이었다. 나 또한 그 안에 포함되었다. 아니, 어머님의 가장 큰 험담 거리가 되었다. 어머니 행동을 보면서 친정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평생 제자 사랑으로 사셨던 아버지, 참 따스하고 정의로우셨던 멋진 의식의 소유자, 선생님의 아내로 사시면서 가난하고 불쌍한 제자들에게 밥을 해 주고, 양말을 꿰매주셨다는 엄마, 엄마는 남 험담을 아주 싫어하셨다. 두 며느리의 험담을 두 딸에게 거의 하지 않던 분이셨다. 늘 불만이 많으시고, 그걸 궁시렁궁시렁 중얼거리시는 어머니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이 찡그려졌다. 친정에 하루만 다녀와도 우리 손녀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고 하시는 어머니, 설거지를 해도, 밥상을 차려도 어머니는 늘 궁시렁궁시렁... 난 그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심장이 자주 벌렁거렸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어머님의 거짓말이었다.
어머님 회갑잔치 장소를 정하는데, 어머님과 형님이 결정을 하셨다. 내가 직장을 나간 평일에 두 분이 다녀오신다고 하기에 그러시라고 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께서는 또 화가 많이 난 상태셨다. 그 이유를 여쭤보니, 한정식당에서 해야 시골에서 올라온 손님들 입맛에 맞을 텐데, 이상한 곳으로 정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곧 외출을 하셨고, 나는 형님께 전화를 드려 어머님 의향을 말씀드렸더니 형님이 알았다고 하셨다. 그다음 날 퇴근을 하니 형님이 전화를 하셨다.
"동서, 어머님과 통화를 했는데, 동서가 돈 아끼려고 한정식당에서 하자고 했다던데?"
그 순간, 쿵! 내 안에서 그런 소리가 난 것 같다 나의 울화는 그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며 내 가슴에 자꾸만 쌓여갔다. 그 17년은 나를 병들게 했고, 나는 병 휴직 후 퇴직을 했다. 의사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분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