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라는 사명을 타고 나셨는지, 어릴 때부터 옆에서 본 아버지는 늘 열정적이고 멋지셨다. 아버지는 우리 동네 선생님이셨기에 난 어릴 때 아버지 제자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많다. 우리 형제와 제자들이 모두 아버지의 자식처럼 보였다. 아주 가끔, 그게 몹시 질투가 나기도 했다. 아버지의 제자 사랑은 너무나도 지극하셔서, 아버지를 평생 잊지 못해 집으로 찾아오는 제자들이 무척 많았다. 아버지 장례식장까지도 왔고, 아직까지도 우리 친정엄마께 안부 인사를 드리고 있는 제자들이 있다.
나는 사 남매 중에서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외모도 성격도 취향까지도.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당신 뒤를 이어 교사로 만들 계획을 세우셨다. 교사가 되라고 직접 말씀하시기도 했고, 책을 가까이하도록 늘 관심을 갖고 나를 이끄셨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의 많은 부분이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다. 마룻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던 모습, 아버지와 함께 같은 학교로 등교하던 모습, 내 앞에서 하모니카를 불어주시던 모습, '주말의 명화'를 함께 보던 모습...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시면서도 자상하셨고,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분이셨다.
내가 교대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을 때에는 "아이들을 미워할 자격이 교사에게는 부여되지 않았으니, 아이들을 절대 차별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아버지 말씀을 잊지 않고 아이들을 대하려고 애썼고, 그걸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매일매일 깨달았다. 결혼을 해서 시어머님을 모시겠다는 나에게는, 좋은 선택을 했으니, 고생 많으셨던 어머님을 잘 모시라고 응원해 주셨다. 결혼식 아침에 미용실로 떠나기 전에 아버지께 큰 절을 올리고 가라는 걸 선배에게 듣고, 아버지를 방으로 모시고 들어가서 큰 절을 올린 후 눈물을 보이던 내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네가 아버지는 좀 염려가 되지만, 우리 딸은 잘해 나갈 거라 믿는다"고 말씀하셨다. 말씀하시는 아버지도 나도 울었다. 나중에 결혼식 비디오를 보니 눈물이 많은 아버지와 두 오빠는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친정엄마께 안부 인사를 드리고 있는 제자들이 있다.
결혼 이후 시어머님께 많이 시달리고 살았지만, 나는 친정에 가서 일러바치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이 점점 나빠져 친정에 가는 날이면 무척이나 피곤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던 적이 많았다. 컨디션이 매우 안 좋을 때는 친정 행사에 참석도 못 했고, 남편이 나 대신 참석할 때도 많았다. 결혼 이후, 부모님도 형제들도, 올케언니들까지도 나를 만나면 '어디 아프지 않냐'는 게 안부 인사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다. 내 몸 하나가 힘들어 부모님이 가슴 아파하실 거라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내 입원 사실을 다 말씀드리지 않아, 부모님은 몇 번 정도만 알고 계셨는데, 아이들이 어릴 때라 병실의 내 보호자는 늘 친정엄마셨다. 아픈 딸의 모습에 그 두 분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당신들이 보시기에 예쁘고 똑똑하고 건강했던 딸이, 마치 시든 꽃잎처럼 침대에 자주 누워 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를 납골묘에 모시고 나서야 아버지의 고통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나름 효녀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가장 부모님 가슴을 아프게 한 불효를 저지르고 산 것이다.
"아버지,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저 잘 살았나요? 바보처럼 왜 그리 힘들게 살았냐고 꾸짖고 싶으신가요? 비겁하지 마라, 이기적으로 살지 마라, 조금은 손해 보고 살아라, 불쌍한 사람을 돌보고 살아라,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그러셨잖아요? 그래도 건강까지 잃으며 희생하며 살았던 제 모습은 지혜롭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픈 엄마 모습을 보고 자란 제 아이들에게 정말 못할 짓이었어요. 그래도 기적이 일어나 시어머님이 천사로 바뀌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존경받는 어르신으로 살다 고운 모습으로 떠나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가 힘들어 일어설 힘이 없을 때 아버지가 꿈길에 다녀가셨죠? 그래서 저를 일으켜주셨듯이 어머님 돌아가신 후엔 어머님도 그러세요. 아버지가 저의 아버지여서 저는 참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선하고 따스했고, 열정적인 분이셨어요. 아버지 생각을 하면 불끈 힘이 나요. 잘 살고 싶어져요. 착하게 살고 싶어져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고백했던 말, 사랑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