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쓰나미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갔다. 그건 TV에서만 보던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형제들, 주변 지인들이 거의 직장에 다니던 분들이 많아서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는 줄 알았는데, 친정 엄마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하나 들었다.
터울이 큰 막내였던 아버지보다 일곱 살이나 적은 친정 엄마는, 시댁 조카들과 나이 차이가 별로 없었는데, 그중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는 조카가 한 명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사촌 언니가 되는 분이다. 그분의 아들이 나보다 한 살이 많아서 나는 어릴 때 그 조카에게 '오빠'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굉장히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 조카에게 일이 터진 것이다. 그 당시 무스탕 사업으로 돈을 쓸어 모으고 있어, 그 조카는 매장을 계속 늘리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친척들의 돈을 많이 끌어다 쓴 모양이었다.
INF 직격탄을 맞고 사업은 완전히 폭삭 주저앉았지만,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한 많은 친척들은 모두 그를 외면했다. 아이들은 처가에 맡기고, 짐은 창고에 넣어두고, 그 부부는 친구 집이나 여인숙을 떠돌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할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조카며느리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내 수중에 현금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보험 하나를 깨서 도와주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그 마음을 좋지만, 보험을 깨기는 아까우니 자기가 대출을 받겠다고 해서 돈 300만 원을 조카며느리 통장에 입금해 주었다. 그때가 어떤 계절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조카며느리는 내게 12월까지 꼭 돈을 갚겠다고 말했다. 나는 나중에 돈을 벌면 그때 편하게 갚으라고, 힘내서 열심히 잘 살아보라고 했다.
소문으로 조카 부부는 고춧가루 장사를 시작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친정 행사에 잘 참석하지 않아 조카 부부를 그동안 만난 적도 없었고,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지만, 씩씩하게 잘 살고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 :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