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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Oct 31. 2023

작가라는 브랜드

나는 아동문학의 한 분야인 동시로 등단한 사람이다. 당연히 아동문학가들을 많이 알고 있다. 성품 좋으시고 글도 잘 쓰시는,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 꽤 많다. 새 책이 출간되면 책 앞에 손수 고운 글씨로 내 이름을 적어서 보내주신다. 나는 너무 귀한 그 책들을 책꽂이에서 가장 잘 보일만한 곳에 꽂아두고, 책 봉투는 내가 마련한 박스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봉투가 엄청 많지만, 나는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나는 전직 초등 교사였다. 문예 담당이었기 때문에 글쓰기 지도뿐만 아니라,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동시 낭송 대회'에 학교 행사에서 뽑힌 학생을 데리고 나간 적이 많다. 그래서 등단하기 전부터 교과서에 실린 시인들 이외에도 동시를 쓰시는 분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어휘로 짐작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어휘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글자로서의 어휘도 있지만, 가족들이 자주 쓰는 말과 자주 접하는 영상,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성까지도 어휘에 포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강력 범죄자를 조사할 때, 그가 보던 책들과 소통하는 사람들과의 문자, 자주 보는 영상들까지도 모두 조사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나 어린이를 지도하는 교사들은 특히 어휘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 좋은 방법이 동시를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교사로서 동시를 많이 알고 있던 나는, 그림에 색을 칠하면서 동시를 외는 자료를 많이 만들었다. 동 학년 아이들(보통 저학년) 전체가 매일 아침에 동시를 하나씩 읽고 외는 활동을 주관하던 사람으로서, 늘 준비 과정이 좋았다. 아마도 좋은 씨앗을 심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책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은 지금도 진행 중이어서 큰 서점이건, 작은 책방이건, 인터넷 서점이건, 책을 보고 고르는 그 시간이 마냥 행복하다. 그런 사람이라 다른 건 아껴도 책값은 아끼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그건 힘들여 정성껏 글을 써 내려갔을 그 작가님에 대한 나의 선물이다. 나는 더 큰 선물을 이미 받았으니까


요즘 대대적인 책 정리를 하고 있다. 책을 반복해서 읽는 습관이 있는데, 책꽂이를 보면서 다시 안 읽어도 되겠다 싶은 것들을 과감히 뺐다.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기분 좋게 책을 뺀 것이다. 빼놓은 책들의 분량이 꽤 많았다. 일단 내 아이들이 졸업한 고등학교에 기증할 만한 것들을 골라 기증했다. 앞집 가족을 불러서 가져가고 싶은 것들을 다 가져가라고 했다. 엄마와 중 3인 아들과 초등생 두 딸과 유치원생 막내딸이 왔다. 아동문학 관련 책들도 많아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선물 받았던 아동문학 작가님들의 책과 시인님들의 책은 아직 책꽂이에 꽂혀있다.


한 시간가량 고르고 고른 책들이 양쪽 현관문을 통해 그 집으로 이동했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앞집 가족이 돌아간 후에 저 한켠에 모아놓은 책들을 보았다. 씁쓸했다. 한 작가에 꽂히면 책을 이어서 구매하고 열심히 읽곤 했는데,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쏟아냈던 몇몇 작가들이 있었다. 나는 책 선정에 자유로운 사람이라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스님, 명상가, 교육자, 소설가, 시인, 방송인 등 다양한 분들의 책들을 넓게 읽으며 살았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가슴 아픈 그 말들에 정말 속이 많이 상했다.


나는 배우 전무송 님을 좋아한다. 원래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그분이 했던 인터뷰의 한 말씀이 내 가슴을 울렸다


"저는 무명배우일 때부터 저의 행동거지를 조심했습니다. 말과 행동, 가는 곳... 나는 대배우를 꿈꾸었기에 연기 연습도 열심히 했지만, 나의 관객을 위해 나 자신을 갈고 닦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분이 출연한 작품을 볼 때마다 감동의 물결이 내 가슴에 잔잔히 흐른다.


독자들의 마음을 아예 생각지도 않고 함부로 막말 자판기처럼 쏟아내는 몇 분의 책들을 바라보며, 나는 저 책들을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그 책들과 많이 낡은 책들은 가야 할 곳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


작가도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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