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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pr 26. 2024

말의 씨앗

저는 교대에 가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속 뜨거운 열정(불문과)을 숨기고 효녀의 길을 택해 입학한 대학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시철이 되면 항상 가슴에서 바람이 불었습니다. 교대 졸업 후 교사가 되면서 그 가슴앓이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지내며, 저는 또 사랑에 빠졌습니다. 집에 와서도 아이들 생각만 했습니다. 그 첫 제자들이 지금 마흔여덟, 저와 띠동갑입니다. 그 이후 몸이 아파서 퇴직하기 전까지 전 아이들과 함께하며 많이 행복했습니다. 제가 발령을 받고 세 번째 만난 아이들 중에 겸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효자 노릇을 하는 고마운 제자입니다. 겸이는 마음이 참 착한 까불이였습니다. 제자들도 자식과 같아서 특별히 효자 노릇을 하는 아이들이 있더군요. 자주 연락해 주고 자주 찾아오는 아이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누가 효자가 될지 모릅니다. 자식도 마찬가지라죠?

 

겸이는 결혼을 좀 늦게 했습니다. 맘씨 고운 예쁜 아가씨와 사귀다가 결혼을 했는데, 결혼 이후 5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했습니다. 겸이 부부에게 아기 선물을 달라고요. 3년 전에 겸이 아기의 돌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곳에서 보고 싶은 제자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행사가 끝날 때쯤 제자들과 함께 입구 쪽으로 나오려는데, 처음 본 겸이 어머니께서 제게 다가와 제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엄마 속을 그렇게 썩이던 말썽꾸러기가 선생님 만나고 갑자기 변했어요. 아직까지도 착한 아들이에요. 제가 선생님 은혜 잊으면 안 된다고 늘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은 방송에 나오셔야 하는데... 제가 언젠가는 방송국에 전화를 할 겁니다."

 

어머님 말씀을 들은 후, 제자들과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주차장에서 제자들을 따라온 제자의 아이 두 명에게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주었습니다. 마치 제가 할머니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mbc 라디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자들에 관한 에세이를 sns에 쓴 것을 보고 연락했다고 하더군요. '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수원까지 리포터 아가씨가 내려와서 방음벽이 있는 카페에서 녹음을 해 갔습니다. 인터뷰 도중, "선생님, 엄마라고 불러도 되나요?"라고 귓속말을 했던, 엄마 얼굴도 모르는 한 남자아이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저는 제가 방송에 나간 것이 그냥 제 인생의 신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겸이 어머니께서 마음과 말로 뿌린 씨로 그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요.

 

생각과 말이 살아 움직이는 세상! 살면서 많이 경험하고 사는 말의 씨, 그 강력한 힘!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힘들어하는 이웃에게도 우리는 따스하고 긍정적인 말을 선물로 주며 살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향한 축복의 '마음 씨앗'과 용기 주는 '글 씨앗'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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