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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ul 01. 2024

나의 해방일지

염미정이 구 씨에게 말한다.


"해방일지에 그런 글이 있어. 염미정 인생은 구 씨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는."





나야말로 내 인생은 남편을 만나기 전과 후로 확연히 나뉜다. 결혼 전에는 내 부모님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내 마음에 미움이 자리할 틈이 없었다. 늘 밝게 웃었다. 그것도 소리 내어 까르르 잘 웃었다. 몸이 건강했다. 학생이었을 때도 교사이었을 때도 나는 학교를 빠져본 적이 없었다.


남편을 만나 뜨겁게 사랑도 했고, 아픈 눈물도 흘려봤다. 연인이었다가 남편이었다가 이제는 내 남은 생의 동반자로 손 꼭 잡고 살아가는 이 남자! 2년 동안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다가 우리는 다시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직장 일을 잘 마무리하고, 직장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젝트(같은 일을 하는 전국의 10대 국가기관 출장 후 비교 분석한 자료)를 건네고 온 남편은 주말에 많이 피곤해했다. 피곤한 상태로 출근한 남편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이 남자를 많이 사랑해 주며 남은 생을 살아야지, 모닝커피를 마시며 난 다짐했다.​​


​편을 만난 후 미움을 배웠다. 처음부터 모시고 살던 시어머님의 무차별적인 언어습관에 자주 가슴이 아팠다. 잦은 잔소리와 거짓말에 화가 쌓여갔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어느새 시댁 식구들을 챙기고 사랑해 주는 게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드라마보다도 소설보다도 더 힘겹게 살아온 가족을 내 인생의 사명으로 받아들이다니, 난 도대체 얼마나 교만했던 걸까.


결혼 전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새벽 미사와 봉사에 푹 빠진 나는,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를 '수녀'라 생각했다. 가장 사랑이 충만했던 시기였다. 원장 수녀님의 권유까지 받으니 내 가슴은 활활 불타올랐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가 아니신 부모님께 차마 말도 꺼내지 못하고, 난 맞선을 통해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어차피 봉사 상활을 꿈꿨던 사람인데, 이 시댁을 그런 마음으로 대하자, 상처 깊은 이 사람들에게 온기가 되어주자, 따스한 분위기로 만들어 보자,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랬다. 난 진심 그랬다. 잘할 수 있으리라 나를 믿었다. 하지만 난 고꾸라지고 말았다. 작은 내가 큰 욕심을 부리다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고통스러운 시집살이로 난 빼빼 말라갔고, 자주 아팠고, 자주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느새 우울증 약이 내 서랍 속에 들어있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내 역할을 계속 충실히 하기를 바랐던 남편과 나의 '좋은 사람'으로 살겠다는 오만이 나를 계속 그 속에 있게 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나를 제외한 시댁 모든 사람은 건강했고, 행복해 보였다. ​


사람이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나온다. '망가지면서까지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는 책 제목처럼 살지 못해, 난 처절하게 망가지고 말았다. 직으로 여겼던 학교를 떠나야 할 만큼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1년 병 휴직을 끝내기 한 달 전에 이미 사직서를 냈건만, 그걸 모르는 학부형 하나가 내게 전화를 해서 언제 오시냐고 물었다.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하자 그 엄마는 엉엉 울었다. 나도 따라서 울었다.


교사이셨던 아버지가 당신 뒤를 이어 교사로 찜했던 나는, 아버지 친구들에게 어릴 때부터 '채 선생'이었으나, 난 40대 초반 너무도 이른 나이에 퇴직 교사가 되고 말았다. 만일 의사 선생님 권유로 했던 분가 이후, 시어머님이 예전과 같으셨다면 나는 오랫동안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죄책감으로 불편했던 내게, 어머님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시며, 당신이 해주실 수 있는 사랑을 내게 오롯이 주시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리고 늘 내 몸만 생각하라고 하셨다. 힘들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몸 약한 며느리와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정성스러운 반찬을 자주 만들어다 주셨다. 퇴직한 며느리가 처음으로 맞은 스승의 날에는 꽃바구니를 사다 주신 분도 어머님이셨다.


남편을 만난 후 미움과 절망과 분노가 무엇인지 알았다. 건강함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았다. 오만함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도 알았다. 누가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아닌 분도 분명 계시겠지만). 그리고 진실하게 미안하다는 말이 얼마나 큰 치유의 힘이 있는지 알았고, 자기의 인격을 높이는 그 어려운 것을 거뜬히 하신 어머님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알았다.


남편을 만나 뜨겁게 사랑도 했고, 아픈 눈물도 흘려봤다. 연인이었다가 남편이었다가 이제는 내 남은 생의 동반자로 손 꼭 잡고 살아가는 이 남자! 2년 동안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다가 우리는 다시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직장 일을 잘 마무리하고, 직장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젝트(같은 일을 하는 전국의 10대 국가기관 출장 후 비교 분석한 자료)를 건네고 온 남편은 주말에 많이 피곤해 했다. 피곤한 상태로 출근한 남편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이 남자를 많이 사랑해 주며 남은 생을 살아야지, 모닝커피를 마시며 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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