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친구에게 큰 고민거리여서 긴 시간을 그냥 듣고 있었다.
시어머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홀로 남아계신 시아버님은 자꾸 몸이 아프시니, 옆 동네에서 챙겨주던 시누님이 아버님의 거취에 대해서 의논을 하자고 전화가 온 모양이다. 결혼 시작부터 시어머님을 오랫동안 모시고 살면서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던 나는, 이런 상담이 오면 늘 지혜롭게 잘 판단하라고 말해준다. 나와 비슷한 '과'의 친구일수록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조언해 준다.
아들은 둘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큰며느리네 집에 가기 싫어하신다는 시누님의 말씀은 이미 답을 정해 놓은 것이지만, 전문직 직장여성으로 살면서 몸이 약한 아내를 지켜보았던 친구의 남편은 자기 집에서 아버님을 모시는 것을 극구 반대한다고 한다. 나는 그 순간 내 남편이 떠올랐다. 못 모시겠다는 형수 말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생 자식만을 보고 사셨고, 자식과 함께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사셨던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으리라. 시아버님과 가장 소통을 잘하는, 밝고도 심성이 착한 내 친구가 얼마나 고민이 클지 짐작이 가서, 들으면서 계속 마음이 짠했다.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안다. 몸이 약한 친구를 생각하면 말리고 싶었다. 한 집안의 며느리인데, 시어른을 모시고 사는 형님네 눈치가 보인다는 시누님의 설명도 난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 후면 형제가 다 모일 것이다. 효자인 시아주버님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형님, 친구 부부, 그리고 효녀 시누님과 성격도 좋다는 그녀의 남편! 그들은 어떤 말을 주고받으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잘 생각하고 지혜롭게 판단하라고. 전화를 끊고 친구의 시아버님을 떠올려보았다. 그분이 가장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사실 것 같은 집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