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버지를 떠올린다. "신발을 반듯하게 놓으면 도둑놈도 돌아간다."라는 말씀을 수시로 하셔서 우리 집의 신발들은 늘 가지런했다. 신발을 가지런하게 놓으며 나는 자주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시어머님과 작은 전셋집에서 6년을 살다가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입주 한 달 전에 우리는 연이어 세 번이나 도둑을 맞았다. 첫 번째는 남편이 다니던 회사의 상사와 동료들과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다녀온 바로 그날 밤이었다. 결혼예물과 아기 반지들을 부드러운 손수건에 야무지게 잘 싸서 여행 가방에 넣고 여행을 떠났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여동생이 전화를 해서 엄마가 울릉도에 다녀오셔서 오징어를 사 오셨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난 피곤하다고 다음에 가겠다고 했지만, 바로 오라는 여동생 말에 자가용으로 40분 정도 걸리는 친정에 다녀왔다. 옆방에서 시어머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우리 방은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아무런 의심 없이 떠났다. 다녀오니, 여행 가방은 활짝 열려있었고, 보석이 든 뭉치만 사라졌다. 누구를 탓하랴! 한 번도 도둑을 맞아본 적이 없고, 우리 동네에 도둑이 있을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내 불찰이었다. 그래서 난 결혼예물이 한 개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ㅠ ㅠ 며칠 후 또 도둑이 들어와서 이불을 방 안 가득 흐트러 놓고 떠났고, 세 번째는 얌전히 살짝 다녀갔지만 성당 가방 성가집에 꽂아놓았던 빳빳한 교무금(한 달에 한 번 내는 십일조)만 빼갔다. 우리 집을 오래 지켜본 사람인 것 같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시어머님이 아기를 업고 동네 마실을 나가셨을 때 일어났다. 두 번째는 기억이 안 나고, 세 번째는 두꺼운 현관 유리문을 깨고 들어왔다. 그 이후로는 도둑을 맞은 적이 없었고, 가족 모두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선물해 준 보석이 하나 둘 늘어서 지금은 보석 상자가 많이 채워졌지만, 시어머님과 함께 가서 골랐던 그 보석들이 가끔 생각나고, 아직도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