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내가, 문을 똑똑 두드린 곳은 명상 센터였다. 그곳에서 배운 명상이 내 상처가 아무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좁았던 내 의식이 조금 더 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다니지 않고 있지만, 생활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나는 명상 상태에 잘 빠지곤 한다. 명상은 꼭 눈을 감고 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괴로워 명상에 입문했듯이 명상 센터 지도자들도 마음의 괴로움을 극복하고자 입문하신 분들이 꽤 많다. 또는 몸의 괴로움을 극복하신 분들도 많았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있다는 말은 나를 보아도 정확히 맞는 말이다. 스트레스 과다가 결국은 몸을 망치고, 천직이었던 교사 역할도 놓아버리지 않았던가!
내겐 명상 센터에서 만난 매우 귀한 인연이 있다. 그녀는 전직 교사 출신의 명상 지도자였다. 그녀의 남편은 입양아였다. 중학생이었을 때 그 사실을 알고 방황이 시작되었으며, 어른이 되었어도 그 방황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정상적인 남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돌던 남편과 이혼을 한 후에도, 그녀는 심성 착한 시부모님과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고, 다시 한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지만, 그녀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고 있다. 남편 월급을 받아본 적도 없고, 보통의 가장처럼 살지 않고 있지만, 그냥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무척 깊어 그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아들은, 엄마의 눈물 어린 기도에 보상을 해주듯이 대학도 잘 들어갔고(고3 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으나 결과는 꽤 좋았다) 군대도 잘 다녀와 열심히 사는 사회인이 되었다
그녀와 나는 가끔 카톡을 하고, 가끔 전화를 한다.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부끄럼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마음이 많이 아팠던 두 사람이었고, 잘 극복해 내고 있는 두 사람이고,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우리의 대화는 늘 무궁무진하다.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가끔 병원에 가시는 그녀의 시부모님도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아직도 방황이 끝나지 않은 그녀의 남편도 평안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