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과 졸혼

내 어린 시절, 주변에 이혼한 사람은 없었다. 아내가 어린 자식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경우에 재혼을 한 가정은 있었지만. 그런데 남편이 일찍 떠난 집의 아내들은 거의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내가 이혼한 사람을 처음 만난 건, 30여 년 전의 동료 교사였다. 직업이 교사인 만큼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전근을 오자마자 그 소문은 학교에 퍼지고 말았다. 단아한 모습에  성품 또한 좋은 분이셔서 난 그 선생님과 가장 친한 동료가 되었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이 내게 물으셨다. 자기가 왜 이혼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난 그때 아마도 어색하게 웃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지방에서 교대를 졸업하셨다. 그리고 서울 명문대생을 소개받아 사귀다가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사람의 인성이 꽤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기심이 지나쳐서 자주 화가 났는데, 한 예를 들면, 만원 버스에서 아기를 업고 아기 짐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남편이 없어져서 둘러보니 혼자 편안히 좌석에 앉아있더란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 시대에 드문 '이혼녀'가 된 것이다. 그 선생님은 그 이후 재혼을 하지 않았다. 첫 남자에 대한 상처가 너무나 커서 그랬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몇 년 전에, 이혼한 지인이 딸을 결혼시켰다. 결혼 전에 사귀던 남자도, 결혼한 남자도 그 딸의 수준에 좀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난 이혼녀의 딸이잖아? 난 항상 그게 부끄러웠나 봐. 남자를 고를 때도 항상 그렇게 되더라고."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내 앞에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남편이 도박에 미쳐 재산을 탕진하여 이혼 후 아이들을 홀로 키우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던 삶이었다. 그랬는데 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그녀는 이혼한 게 이렇게 큰 죄냐고 내게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요즘은 드라마에서도 '졸혼'이 많이 나온다. 아직 내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도 졸혼 한 숫자가 계속 늘고 있는 추세이다. 황혼 이혼이 세대 중 가장 높은 이혼율이라고 한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다른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모 노릇을 하며 부부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집이나 많은 갈등 상황을 만났을 것이고, 또 그것을 해결하느라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많이 참음으로써 결혼 생활이 이어진 경우도 있을 테고, 서로 싸우며 당당하게 극복한 경우도 있을 테고, 감정의 교류 없이 침묵 상태로 한 집에서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마침내 각자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결혼 유지든, 졸혼이든, 이혼이든 각자의 살아온 삶에 대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던 예전의 내가, 지금은  그들의 삶에 대해 되도록 '판단'을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으나, 모두 나름대로 애쓰며 살았던 삶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