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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ul 21. 2024

내 옷차림의 변천사

어릴 때 난 굉장히 촌스러운 아이였다.(그러고 보니 난 아직도 때때로 촌스럽다 ㅋ)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엄마가 내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시고, 엄마가 만들어준 세라 원피스도 입고, 예쁜 구두도 신었던 기억이 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아버지 명으로 머리를 단발로 자르면서 내 스타일은 '촌스러운 아이'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름 나를 '단정한 학생'으로 만드시기 위해 그러셨지만, 나는 그 단발머리가 정말 싫었었다.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오신 싼 옷, 또는 주변에서 얻어온 옷들을 군말 없이 입었던 나는 스스로 참 촌스러운 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일곱 살 때 여동생까지 태어나 사 남매를 키우기에 아버지 월급이 부족하게 되자, 엄마는 항상 부업을 하셨다. 가장 많이 하신 게 뜨개질이었다. 똑같은 모자를 매일 몇십 개를 뜨셨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리고 두께가 0.1 mm 정도인 투명한 실을, 양쪽 기둥에 묶어놓고 그 탱탱한 줄에 머리카락 하나를 묶고, 또 묶기를 반복하여 10cm 정도를 이어서 하면 그 줄을 풀어서 내려놓고, 또 줄을 양 기둥에 묶으면 그것이 공장으로 들어가 여자들 속눈썹으로 포장되어 판매된다고 들었다. 엄마는 그 일을 반복하며 눈이 많이 시리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 몰래 머리카락 묶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해 놓은 흔적이 보였을 텐데, 엄마는 야단을 치지도 않으시고 당신이 다시 꼼꼼하게 고쳐놓으셨다.


엄마가 부업으로 한복을 지으신 게,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늘 재봉틀 소리가 윙윙거렸고, 바쁜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나는 늘 저녁 쌀을 씻었다  반찬은 만들지 못했지만, 그 일은 내가 매일 할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추운 겨울날, 주택 마당 수돗가에서(펌프에서 언젠가 수도로 바뀌었다) 쌀을 씻으면 손이 너무나 시려서, 쌀을 다 씻고 나면 그 작은 손이 빨개졌던 아련한 기억...


​엄마는 한복 짓는 실력이 좋아 나중에는 고운 모시 한복만을 지으셨다. 그건 박음질을 굉장히 곱게 해야 하기에 엄마의 눈은 점점 피로해졌다. 엄마가 안경을 쓰고 재봉질을 한 게 그즈음이었다. 오빠 둘에 여동생이 하나 있는 내 위치, 부업을 하는 엄마를 둔 나는 늘 집안일을 도와야 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무척 고마워하셨다. 엄마는 치매에 걸리신 지금까지도 내게 늘 고맙다고, 예쁘다고 하신다.


고3 때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부모님을 불러 교대 말고 일반대를 보내자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꼭 교대를 가겠다고 말해서 학비 부담을 주지 않았던 거, (내가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는 당신 뒤를 이어 교사가 되라고 키우셨고, 난 그 부담감으로 불문과를 포기하고 교대 진학을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신 듯했다) 교사로 발령을 받은 첫 월급부터 결혼하기 전 달까지의 월급을 모두 갖다 드린 거, 엄마는 지금까지도 똑같은 말씀을 계속 반복하신다


교사 발령을 받은 첫날, 나는 쥐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학교에 갔다. 교사로 살면서 늘 정장을 즐겨 입었고, 청바지는 소풍날에만 입었다. 더운 여름에도 맨발로 교실을 들어가지 않았고, 민소매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복장이 자유로워야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할진대, 꽉 막힌 보수쟁이 채 선생은 '교사 복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18년 전에 퇴직을 한 나는, 그 이후 너무 몸을 많이 쉬어주고 살아서 그런 지 10Kg이 늘었다. 교사로 근무할 때 입었던 예쁜 옷들을 하나도 입을 수가 없다. 몸매는 조금 오동통하지만, 집시치마를 즐겨 입고, 맨발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니고, 귀걸이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눈에는 아이라인과 마스카라까지...  난 점점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다. 교사로 살 때도 참 좋았고, 지금의 내 모습도 참 좋다. 늘 내가 좋으니까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며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사진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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