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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for Sep 10. 2024

육아일기_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말썽을 부려본 적이 거의 없다.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평범한 학생으로, 부모님 말씀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고, 크게 아파본 적도 없다. 그게 좋은 자녀가 되는 유일한 조건이었다면 나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는 끝이 없었다. 때가 되면 하나씩 늘기 마련이었는데, 어릴적 건강은 기본옵션이요, 크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졸업 후에는 번듯한 직장을 가져 넉넉한 용돈도 주고, 늦지 않게 결혼을 하되 또 어느정도 번듯한 사람을 만나기를 바랬다. 때때로 동창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한 효도여행도 보내드리고, 집에도 자주 찾아가 안부를 묻는 그런 딸. 그래서 푸념하듯 부모님께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다.


"옛날에는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며!"


그렇다. 우리 부모님도 어린 나에게 바라던 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거 하나였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바라는 일이어서, 감히 다른 것들을 덧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옛날 돈 없던 시절에도 생후 100일이 되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준 것에 감사하며 잔치를 열곤 했던 것 같다. 임신을 하고 나니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그 문장이 나에게도 직접적으로 와 닿았다. 20주차 무렵, 병원의 검진 안내를 받은 순간부터 더욱 현실적으로. 




"다음 검진에는, 기형아 검사를 할거니까..."


기형아 검사라니? 나는 우리 아이가 기형아가  확률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적이 없다. 가끔씩 TV에 나오는 한 두 명의 안타까운 사연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우리 아이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니, 문득 겁이 났다. 이런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여러 보험회사의 태아보험 권유가 이어졌다. 가격도 보장도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살면서 보험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참 아까운 돈이라고 생각했다. 아플지 안아플지도 모르는데, 아니 경험상 안아픈날이 훨씬 많았는데도, 혹시 모를 아픔에 대비해서 매달 꼬박꼬박 돈을 내야 한다니. 낭비 중의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보험에 든다는 건 보험사의 '공포마케팅'에 속았거나, 보험판매원인 지인의 권유를 못이겨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여태 한 번도 그런 마케팅에 속아 넘어간 적이 없는 소위 스마트한 소비자였는데, '기형'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참 속수무책이었다. 지극히 적은 확률이었지만 '설마'하는 그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분명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는 슬픔에, 치료비라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마주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보험이라는 것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일에 대비하는 '합리적인 소비'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가격 상관 없이, 제일 보장 넓은 걸로 해주세요"


그렇게 온갖 희귀 질병을 다 커버해준다는 비싼 보험에 가입했다. 지금에 와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비싼 보험까지는 필요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때의 우리 부부에게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의 건강이라는게 내 뜻대로 내 노력대로 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 보험은 아이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간절한 바램이 담긴 것이었다. 또한 이제 막 부모로써 발걸음을 떼는 관문에서, 아이의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상기하는 계기였다.   




아이가 자라면 나도 우리 엄마처럼 거기에 슬금슬금 나의 바람을 하나씩 얹고 덧붙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부모로써의 바람은 명확하게 한 가지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렇지만 건강하다면 눈은 아빠 눈을, 코는 엄마 코를 닮고, 밤에는 통잠 자고, 늦지 않게 뒤집기도 하고, 돌잡이에는 연필을 잡기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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