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엄마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생후 100일까지는 아기가 2~3시간 간격으로 먹고 자고 깨고를 반복하기에 부모 역시 밤낮없이 아이를 돌보아야 하지만, 100일쯤 되면 아기에게도 밤이라는 개념이 생겨 밤에 8시간 이상 자니 이것이 기적같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그렇게 아기의 밤 수면시간은 점점 늘어나, 생후 8개월쯤 되면 11시간 정도 통잠을 잔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그쯤되면 엄마들도 삶에 여유가 생기고 둘째를 고민하는 분들이 생기기도 한다(는 소문이 있다).
정말 100일쯤 되니 아기가 깨지 않고 자기 시작했다. 보통은 새벽에도 일어나 수유하고 기저귀 갈아줘야 다시 잠들었는데, 이제는 새벽내내 무얼 먹지 않아도 깨지 않았다. 나는 원래 잠이 정말 많은 사람이라 육아에 있어서 '잠 못 자는 것'이 너무 고되게 느껴졌기에, 밤에 잘 수 있다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그때의 기쁨이란! 마치 그 동안 수고했다며 주는 작은 선물 같았다. 이제 8개월이 되면 정말로 밤잠이 안정되고, 나도 밤에 제대로 잘 수 있겠지? 그런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허허. 육아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참 많다. 수면교육까지는 들어봤는데 수면퇴행이라니. 놀랍게도 우리 아이는 8개월이 되었을 때 이전보다도 더 자주 깨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근육을 써서 그렇다고도 하고, 첫 이가 나면서 통증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도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결과는 똑같았다. 한 시간에 한 번, 혹은 그보다 더 자주 깨서 울었다. 그것도 조용히 깨 있는 게 아니라, 온 동네가 들썩일 정도로 우는 바람에 밤을 꼴딱 새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었다. "너도 크느라 많이 힘들지? 쑥쑥 크는거니까 조금 더 힘내자"라며 오히려 아이를 격려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2주 이상 지속되면 사람의 예민이 극에 달해진다. 한 번은 한참 안아주다 잠든 것 같아 슬며시 내려놓았는데 곧바로 빽빽 우는 아기를 보고 화가 너무 나서 안아주지도 않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못 해먹겠네 정말..." 이란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엄마가 강해지는 이유? 그건 바로 아기가 엄마의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밤새 힘드셨을텐데, 낮에는 제가 좀 알아서 놀게요! 이렇게 말해주는 아기는 없다. 엄마가 녹초가 되건 말건 아이는 필요하면 운다. 어떤 회사보다도 더 빡세다. 병가가 안되면 연차라도 쓰고 싶은데, 육아에는 연차가 없다. 야근을 시켜도 야근수당도 안준다. 전날 야근했는데 다음날도 정시 출근하라고 알람까지 울려주는 회사다. 이렇게 고강도 트레이닝을 시켜주다 보니 강해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육아를 경험하기 전에는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이 꽤나 감동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겪어보니 이것 만큼 슬픈 말이 없다. 엄마는 사실 약한데, 아기는 엄마가 약한 걸 허락하지 않는다.
이건 육아를 할 때 늘 마음에 새겨야 할 마법의 문장이다. 정말 다행히도 아기는 매일 변하기 때문에 오늘의 힘듦이 영원하지 않다(주의 : 기쁨도 찰나일 수 있다). 이렇게 밤마다 괴롭힐 것 같았던 우리집 아들도 9개월에 접어드니 다시금 깊게 잠드는 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밤에 2~3번 깨기는 하지만 한번에 4시간 정도라도 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이미 고강도 트레이닝에서 배워버렸다. 트레이닝이 끝나니 실제로 성장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일이건 공부건 잠 못자게 많아지면 늘 포기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덕분에 엄마가 조금 강해진 것 같아. 고맙다 증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