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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하 Jan 21. 2023

차이

지속가능한 사랑으로의 이행

사랑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된다.1) 즉 타자,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지는 사랑은 원초적으로 그 형태가 극히 낯선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사랑은 다름, 차이를 기반으로 한 감정의 동요다. 따라서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나의 세계와 타자의 세계를 공유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두 세계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나와 다른 대상의 세계에 개입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사랑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세계에 여행을 하듯 설렘의 감정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인만큼 그곳은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기에 무수한 불확실성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일이다. 또한 사랑은 타자의 세계에 접근하며 동시에 나의 세계에 접근하기를 허용하기 때문에 자기 동일적 존재로서의 심리적/정신적 안락함을 방해하고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사랑은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대상과 자신의 세계를 뒤흔들어 섞어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사랑의 생성 과정이며 동시에 관계 맺음 자체의 형성 과정으로 풀이되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인간의 정신은 앞서 서술했던 일련의 과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데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예컨대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극심하다면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고 숨어 버릴 것이며, 자신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나 집착이 심하다면 자신의 세계를 허용하지 않으며 제대로 된 관계 형성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랑은 이러한 관계 맺음의 모든 가능 조건들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의욕하고 추진함을 통해 자신의 세계2)를 확장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감정적 충동이다. 따라서 타자에 대해 느끼는 감정적 충동으로써의 사랑이 차이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일이라면 그러한 차이가 완전히 굴복(혹은 전복)되거나 화해됨으로 사랑은 종료된다. 즉 감정의 발생, 사랑의 원인으로서의 사랑은 목적이 달성됨과 동시에 해체되며 그렇게 소멸하여 전쟁이 멈춘 공허한 전장에서 새로운 원인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다.3)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감정적 형태로서의 사랑이 끝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랑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온전한 개인4)들이 사랑을 통해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며 건강한 세계를 구축할 때 가능해진다. 사랑을 감정과 욕망의 충족으로, 즉 수단으로 행위하지 않으며 대립하는 동시에 반성과 용서를 거듭할 때 그러한 관계는 정신적 유일자로서의 사랑으로 개선된다. 사랑은 타자와 관계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유일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서로의 세계를 수용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때 사랑은 관계 속에서 더욱 심층적이고 체계적으로 세계를 구축하며, 그것을 통해 서로는 오직 서로를 통해 존재하는 존재로서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갈망하고 증진하고자 하는 관계, 즉 발전적이며 건강한 사랑은 유일자(혹은 동일자)5)에 매몰되거나 머물지 않기 위해 각자가 스스로 정진하기를 바랄 것이다. 인간의 삶이 계속해서 운동하며 변화하듯 사랑 역시 변화해야만 하는 것이고 따라서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 그리고 관계를 정립하며 쌓아나가는 세계 역시 확장되어야만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사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자신과 대상의 세계를 위해 개인은 보편자6)로서 정진하여 사랑에 기여해야 한다. 이렇게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휘발되어 버리는 감정적, 욕망으로서의 사랑을 넘어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세계를 공유하며, 발전하고 개선되고 정진하는 형태의 사랑으로서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1) 심지어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 역시 나를 대상으로 삼는 나의 인식이다. 따라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형성되고 변화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 무기력증에 빠진 인간은 결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2) 근복적으로 사랑은 타자의 세계를 수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려는 시도다. 따라서 사랑에는 언제나 사랑하는 대상을 포함한 그의 세계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작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언제나 양방향에서 동일하게 발생하기에 사랑은 일반적인 관계를 넘어선 감정적 소모를 동반한다.  


3) 대체로 많은 경우에 사랑은 건강하게 서로를 변화시키고 개혁시킴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전의를 상실한 무기력한 상태로 인해 종료된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적 대립이 사라진 상태, 즉 사랑이 종료된 상태의 관계는 오직 사랑이라는 명목을 통해 지배하거나 지배당한다.  


4) 온전함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나 명확한 정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에 의도적으로 온전한 개인으로 표현한다. 대체로 건강한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충족하며 반성하고 성찰하는 인간을 뜻할 것이다.  


5) 사랑조차도 정지되어 있다면 무의미한 동일자적 관계일 뿐이다. 따라서 정지되어 있는 관계, 발전성과 운동성이 없는 세계는 메말라있다.  


6) 사랑하는 대상과의 세계(유일자로서의 세계) 반대편에 존재하는 보편적 존재로서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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