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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칼럼니스트 Oct 21. 2020

승진에서 탈락한 뒤

넘어진 자리에 머무르지 말자


‘침대에 누웠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곧 잠들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새벽을 맞이했다. 내내 심장은 거칠게 뛰었고 밤새 그 심장박동 소리에 짓눌려 있었다.’


필자가 임원 인사에서 탈락한 날,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날 기억이다. 회사에선 괜찮은 척, 의연한 척했어도 집에서까진 쿵쾅거리는 심장을 제어하긴 어려웠다.


회사 게시판엔 3급(대리) 승진자 명단이 게시됐다. 같은 해에 입사한 13명의 동기 중 7명이 승진하였고 6명은 승진 명단에 없었다. 필자의 이름도 없었다. 입사일 순으로 정한 승진이었다. 오래전이었지만 직장생활 첫 번째 승진 탈락은 그렇게 허무했다. 과장과 선임사원의 위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필자가 직장생활하면서 맞이한 승진에서 탈락한 날의 스케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밀려오는 좌절감과 우울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 어떤 위로도 와닿지 않았다. 다 이유가 있는 탈락이었지만 그 이유를 그날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마도 승진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우울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자연스러움을 회복하였고 다름없이 똑같이 일했으며 그다음 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승진하게 되었다. 만약 잠시 들었던 우울과 분노를 너무 오래 지녔다거나 그것이 다른 행동을 촉발했다면 직장생활 그다음 스텝은 꼬였으리란 생각이다.


살다가 만나게 되는 행복과 불행, 그 사건은 늘 교차하며 일어난다. 어느 한 방면으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또 희열의 순간을 만나듯, 직장에서 삶도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늘 교차하는 것 같다. ‘승진과 탈락’은 그 중심에 있다. 이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경험이고 과정이다.

    

인사철, 승진자가 있으면 반드시 탈락자도 있기 마련이다. 단적인 예가 임원들이다. 연말 그룹별 임원 인사 시즌에 승진자가 50명이면 퇴임자도 50명 정도 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승진율이 60%라면 12명의 승진자와 함께 리스트에 없는 승진 탈락자는 8명이다.


여러 번 승진 단계에서 누락 없이 매번 단번에 승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에게나 한두 번쯤 승진이 지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승진 탈락도 직장에서 앞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승진 탈락은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는 잠깐의 멈춤이지 인생에 커다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몸에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아픔과 좌절도 있지만 스스로 되돌아보며 전의를 불태우는 계기가 된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여 재수하는 사람을 보자. 입시에 떨어져 재수를 결심할 당시에는 착잡하고 마음이 아프겠지만 세월이 흐른 뒤 재수했다는 사실은 아무 일도 아니다. 일 년 늦는다고 인생에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쓴맛과 시련을 겪은 경험이 플러스로 작용한다. 우리 주변에 1/3쯤은 재수의 경험이 있는 보통의 일반인이다.


어떤 회사도 모두를 승진시킬 수 없고 승진시켜서도 안 된다. 승진 관련 인사제도는 직장에서 중요한 동기부여의 수단임과 동시에 저성과자를 거르는 강력하고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러 해 임원으로 재직하며 승진심사에 참여한 바 있는데 다음은 그 경험의 일부다.


 

승진심사에 앞서 우선 정하는 것이 승진율이다. 회사는 그해 실적에 따라 적정 승진율을 제시하는데 직급별로 승진율을 달리하기도 한다. 승진심사에선 개인별 인사평가 자료가 승진 여부를 판단하는 기초자료가 된다. 인사평가는 보통 역량평가와 실적평가로 구분된다. 역량평가는 개인의 태도와 능력에 대한 정성평가이며 실적평가는 개인이 소속된 부서를 중심으로 한 계량 평가이다.


이러한 평가를 기초로 직급별 승진서열을 만든다. 이것이 승진 결정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데 승진 여부는 반드시 인사평가 순으로 획일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별 정성적 이슈가 있다면 이를 별도로 논의한다. 대개는 인사평가표가 기준이지만 간혹 그와 관계없는 특별한 이슈가 있으면 그것이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그해 커다란 공적을 세운 사람은 특별 승진이 되기도 하며 반대로 승진예정자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거나 승진에 불리한 이슈가 있다면 탈락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운 좋게 승진의 기회를 잘 잡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꽤 괜찮은 직원 중에 부서의 실적 영향으로 탈락의 아픔을 겪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직장에선 반드시 승진 순으로 앞날의 운명이 정해지지 않는다. 직장생활의 많은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 주변엔 승진 누락 없이 빨리 간 사람 중 목표 단계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일찌감치 내려온 사람들이 있고 그 반대 사례도 많다. 승진이 한 템포 늦어진다고 하여 절망할 것이 아니다. 탈락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 때론 더 멀리 더 높이 간다.    


승진 탈락이 가슴 아픈 이유는 승진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과 좌절은 비례해서 커진다. 반대로 정황상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충격은 크지 않다. 또 첫 승진이나 임원승진 같은 경우도 탈락이 주는 아픔과 충격은 다른 직급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승진 탈락은 그 자체로 아픔이지만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누군가 승진한 사람이 있기에 스스로 더욱 초라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이란 공동체에서 이러한 마음을 드러내거나 오래 간직할수록 마이너스일 뿐이다. 좌절감과 초라함을 빨리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은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위해서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의 지인 중에 대기업에 다니는 B 부장이 있었는데 현장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3년 연속 전국 지점에서 최고의 성과를 냈다. 그런데 B 부장은 4년 연속 임원승진에서 탈락하였다. 더이상 임원승진 후보가 될 수 없었던 B 부장은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떠났다.


B 부장은 마지막 차수의 승진에서 탈락이 확정된 후 필자와 술을 한잔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정말 물불 안 가리고 뛰었는데 이놈의 회사는 나의 그런 노력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직장생활 이제 끝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며 좌절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B 부장은 실적을 내기 위해 직원들을 재촉했는데 다면 평가결과 이러한 점이 부정적인 인사 이슈로 작용했다고 한다.


B 부장은 명예퇴직 후 직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그만 회사를 창업했다. 영업을 통한 실적 창출에 자신이 있었던 B 부장은 절치부심 노력하여 창업한 회사를 조기에 안착시켰다. 지금은 꽤 괜찮은 중소기업의 CEO로 커나가고 있다. 직원들 사기와 동기부여에 특별히 유념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음은 차장승진에 4번이나 탈락한 어느 워킹맘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차장승진에서 4번이나 탈락했다. 승진 탈락이야 있을 수 있지만 4번이나 탈락한 것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휴직 때문이었다. 한두 번은 그렇다 쳐도 4번 연속 탈락한 것은 억울한 일이었다. 마지막 4번째 탈락한 뒤에는 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야근에 주말 근무 등 육아에 소홀하면서까지 일했는데 탈락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미안함과 함께 분노가 일었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여전히 워킹맘이다. 그때 사표를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차장승진을 했는데 승진해보니 별 것 없었다. 일이 바뀐 것도 아니고 월급이 많이 오른 것도 아니며 호칭만 바뀌었을 뿐인데 아등바등했다. 돌이켜보니 직장생활 초에는 높이 올라가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멀리 가는 것이 성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장승진에서 탈락했을 때 상사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지금 승진 탈락했다고 억울해하거나 자책하지마. 속도만 다를 뿐 어차피 부장되면 다 부장으로 만나게 되어 있어. 산 정상에서 모두 만나듯이 부장에서 만나는 거지.”


농담으로 들렸던 그 말이 지금 보니 그렇다. 나이가 들어보니 대부분 같은 직급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에게 어떤 성공의 기준이 있느냐에 따라 직장생활은 달라지는 것 같다. 승진, 살아보니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


둘 다 승진에서 4번씩이나 좌절을 맛본 경우다. B 부장은 네트워킹과 영업력이라는 본인의 장점을 내세워 창업했고 성공한 중소기업 CEO로 가고 있다. 임원승진에 목을 매 직원을 쪼았던 과거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워킹맘은 승진 실패의 경험을 통해 좌절을 맛봤지만 인생의 경험이 더 쌓이면서 직장생활에 대한 목표를 바꾸어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성공에 대한 기준을 달리 설정하고 세상에 보여주고픈 자신의 그럴싸한 이미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니 자유로워진 것이다.


직장에서 승진에서 밀렸다는 것, 그것만큼 우울하고 슬픈 일이 없겠지만, 빨리 툴툴 털고 일어나 이러한 경험이 다른 동기부여를 갖는 동력이 되게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실패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 머무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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