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처음들은 때로 대단하게 작용해서 거의 살아갈 의미를 만들어줄 정도였다. 매일 똑같은 하루 같다가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사건들이 늘 새롭게 펼쳐졌다. 처음 먹어본 음식, 처음 가본 산, 처음 만난 유형의 사람과 나누는 대화. 모든 처음에 자주 감동받았다. 하지만 그만큼 처음이라 쉽지 않은 것도 많았다. 익숙해질 정도의 경험이 없으니 능숙하게는 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일들이 그랬다.
쓰리디 툴로 사면을 생각해 형상을 만들다 보면 먼 곳으로 도망가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디자인이 풀리지 않아 끙끙거리던 어느 하루, 대장님이 왜 자동차 디자인이 하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이런 질문을 갑자기 던지시며 일의 목적을 상기시켜 주실 때마다 감사하고 좋지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만나 스스로에게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가 좋아서라기에 내 취향은 좁고 고약했다. 남들이 람보르기니가 멋있다고 할 때 아반떼 투어링이 좋다고, 마이크로 led 램프 말고 누런 할로겐램프가 좋다고, 빵빵하고 커다란 휠보다 작고 단순한 옛날 휠이 좋다고, 터치버튼보다 토글스위치 버튼이 있는 자동차를 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게, 나는 차도 잘 모르면서 왜 이 분야에서 일해보겠다고 마음먹었을까.
대학생 때 학점이 좋거나 디자인을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동경하던 선배들을 떠올리면 절대 후배들에게는 본보기가 될 수 없는 선배였다. 멕시코를 갔다 온, 빡빡이 머리에 랩을 하는 ‘좀 특이한 선배’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졸업 전시로는 자동차 디자인을 했다. ‘자동차’를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기보다, 내가 만든 무언가를 가장 재밌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자동차’였다. 그때 조교였던 친구가 전시를 감상한 후배들의 레포트를 슬쩍 보여줬었다. 당시에 전시를 준비하며 자신감이 없던 나를 북돋아주기 위해서였다. 글을 읽는 동안 정말인지 깜짝 놀라서 눈물이 쏙 빠졌던 기억이 난다. 많은 후배가 내 졸업작품을 분석한 글을 썼고, 그중 한 문장이 어떻게 보면 지금의 일을 하게 했다.
‘작품을 보고 처음으로 모빌리티에 관심이 생겼다‘라고 적혀있었다. 처음이었다. 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진심 비슷한 마음이 생긴 게. 날카롭고 섬세한 필력으로 작품을 분석해 준 후배들에게도 ‘땡큐 땡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짧고 투박한 감상문에 적혀있던 그 글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대장님께 대답했다. ‘제가 만든 무언가가 누군가의 처음이었다는 게 감동이었어요. 그래서 해보고 싶었던 건데요, 하다 보니 항상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일이 정말 좋습니다. 그 어려움 덕분에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요’
후배님! 덕분에 시작했고 지금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이 별거인가? 결국 변한다. 익숙해지고, 아는 게 많아지고, 감동에 무뎌진다. 하지만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망치고 싶은 처음을 지나면, 다음이 있다. 성장하고 성취하는 다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