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두 개의 중력
1958년의 겨울은 두 개의 다른 소리를 가지고 한림에 도착했다. 하나는 이시돌의 황무지에서 들려오는, 불규칙하지만 끈질긴 쇠와 돌이 맞부딪히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는 흙냄새와, 사람들의 땀 냄새와, 그리고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은 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다른 하나는 마을의 너른 공터, 최 사장이 세운 ‘한림 농산 개발 주식회사’의 가건물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곳에서는 육지에서 온 기술자들이 내지르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 소리와, 목재를 자르는 날카로운 기계 소리, 그리고 간헐적으로 도착하는 트럭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는 기름 냄새와, 돈 냄새와, 그리고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하는 세계의 차가운 논리가 담겨 있었다.
두 개의 소리는 서로 섞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마치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전파처럼, 마을의 공기 속을 떠다니다가 각자의 영역으로 스며들었다. 마을은 이제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뉘어 있었다. 임피제 신부의 중력이 미치는 세계와, 최 사장의 중력이 미치는 세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둘 중 하나의 중력에 이끌려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시돌의 개간 작업은 눈에 띄게 더뎌졌다. 함께 돌을 깨던 남자들 중 절반 이상이 언덕을 내려갔다. 그들은 최 사장의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일을 마치면, 땀이 식기도 전에 빳빳한 지폐 몇 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즉각적이고, 명쾌하며,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언젠가’ 오게 될 젖소를 위해 ‘오늘’의 허기를 견디지 않아도 되었다.
최 사장은 종종 자신의 검은 승용차를 몰고, 이시돌 언덕 아래의 흙길을 천천히 지나가곤 했다. 그는 차창을 내리고, 언덕 위에서 여전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향해, 동정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에게 막걸리를 사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저 언덕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지? 딱한 사람들이야. 저 코쟁이 신부가 월급 한 푼이라도 주나? 쯧쯧. 신념만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어. 이제는 돈이 곧 믿음인 세상이란 말이야.”
그의 말은 바람을 타고 언덕 위까지 올라왔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심했다. 그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신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오래된 습관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 혹은, 강매실이나 김만수처럼, 임피제 신부에게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진 사람들이거나. 그들은 마치 침몰하는 배에 끝까지 남아, 선장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한 소수의 선원들과도 같았다.
임피제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언덕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가 매일 줄어드는 것을, 그들의 망치 소리에서 희망 대신 고단함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거대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도박에서 서서히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시스템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시간’이었다. 그의 시스템은 신뢰와 순환을 기반으로 하기에,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최 사장의 시스템은 자본을 기반으로 하기에,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었다.
그는 밤마다 자신의 작은 방에서, 낡은 단파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그는 세상의 저편에서 오는 신호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지난 몇 달간, 아일랜드와 미국,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유럽의 구호 단체에 보냈던 수십 통의 편지들에 대한 응답을 기다리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는 편지에 구걸이나 감상적인 호소를 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문제(영양 부족, 가난의 순환)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법(돼지은행, 퇴비 공장), 그리고 마침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젖소 목장을 통한 자립)를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그것은 하나의 사업 계획서와도 같았다. 그는 자신의 진심과 논리가, 바다를 건너, 그들의 마음에 닿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것은 언제나 지지직거리는 잡음뿐이었다. 답장을 실은 우편배달부의 자전거는 좀처럼 그의 집 앞에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거대한 우주를 향해 보낸 신호가, 아무런 응답 없이 어딘가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 같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고, 결국 더 큰 좌절을 안겨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날 밤, 그는 낡은 단파 라디오의 전원조차 켜지 않았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오직 섬의 바람 소리와, 그 자신의 깊은 한숨 소리뿐이었다.
변화는 가장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그날도 우편배달부는 자전거를 타고 마을 길을 달리고 있었다. 임피제는 아무런 기대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시간이 아주 잠시 멈춘 것처럼, 그 자전거가 그의 집 사립문 앞에서 멈춰 섰다. 배달부는 낡은 가방에서 얇은 항공우편 한 통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봉투에는 낯선 아일랜드의 우표가 붙어 있었다.
임피제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그의 심장이, 마치 고장 난 엔진처럼,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편지는 그가 보냈던 수많은 편지들 중 하나에 대한 답장이었다. 그의 고향 마을에 있는, 이제는 은퇴한 늙은 신부가 보낸 것이었다.
“친애하는 패트릭. 자네가 보내온 편지는 우리 마을 전체를 울렸네. 우리는 자네가 그 멀고 낯선 땅에서 벌이고 있는 위대한 일에 깊은 감동과 함께, 아무것도 돕지 못하는 미안함을 느끼고 있네. 우리는 자네처럼 위대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네의 고귀한 뜻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우리끼리 돈을 모았네. 그리고 가장 좋은 젖소 두 마리를 구해두었네. 한 놈은 임신까지 한, 아주 튼튼한 녀석이야. 부디 우리의 이 작은 선물을 받아주게.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네. 이 소들을 어떻게 그곳, 제주라는 섬까지 보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려주게나.”
임피제는 편지를 다 읽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라고 느꼈던 한 인간이, 마침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순간의 안도와 감격의 눈물이었다. 그의 기이한 꿈은 마침내 바다를 건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닿아 있었다. 그가 우주를 향해 보낸 신호에, 마침내 응답이 온 것이다.
그는 편지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강매실, 김만수, 그리고 영호. 그는 그들을 이시돌의 황무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불렀다. 그곳에는 이제 열 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남아, 무너진 자존심처럼 위태로운 곡괭이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편지의 내용을 천천히, 그리고 힘주어 읽어 내려갔다.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네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강매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고, 다시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져 있던 김만수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영호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가… 온답니다.” 임피제가 다시 한번 말했다.
그때, 김만수가 입을 열었다. “소가… 어떻게 옵니까? 저 멀리서 여기까지, 헤엄쳐서라도 온답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희망이 아닌, 냉소와 자조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모두가 품고 있던 질문이었다. 소 두 마리를 아일랜드에서 제주까지 데려오는 일. 그것은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임피제는 다시 미군 부대의 앤더슨 대령을 찾아갔다. 앤더슨은 편지를 읽고 난 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위스키를 한 잔 따르며,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신부님, 이건 정말…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군용 수송선으로 소를 실어 나를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전쟁 물자가 아니니까요. 민간 화물선을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살아 있는 동물을 그 먼 거리까지 운송하는 것은… 글쎄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방법이… 정말 없겠습니까?”
앤더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이나 미국의 가축 운송 전문 회사와 연락을 해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 비용은… 아마 신부님이나 저 마을 사람들이 평생 구경도 못해볼 만큼의 거금이 들 겁니다.”
절망이 다시 그의 목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앤더슨의 도움을 받아, 수소문 끝에 영국에 있는 한 해운 회사와 연락이 닿았다. 그들은 소를 운송해 줄 수는 있지만, 부산항까지의 운송비와 검역 비용, 그리고 선박에 특수 우리를 제작하는 비용으로 엄청난 액수를 요구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도, 아니, 한림의 모든 주민들의 재산을 다 모아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임피제는 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소를 데려올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큰 돈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바로 그때였다.
“제가… 제 돼지를 팔겠습니다.”
말을 한 것은 강매실이었다. 그녀의 우리에는 이제 어미 돼지와, 장에 내다 팔아도 될 만큼 튼튼하게 자란 여덟 마리의 새끼 돼지들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전 재산이자, 아이들의 미래였다.
“저도… 퇴비를 팔아 돈을 보태겠습니다.” 김만수가 뒤를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시돌에 남아있던 소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가장 값진 것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밭 한 뙈기를, 누군가는 아껴두었던 비단 옷감을, 누군가는 자식의 혼수 비용으로 모아두었던 쌈짓돈을. 그들이 내놓은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희망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들이 모은 돈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임피제는 다시 한번 절망의 벽 앞에 섰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그는 콜롬반회 본부에 편지를 썼다. 자신에게 지급되는 모든 사제 연금을 포기하고, 그것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것은 사제로서의 안정된 미래를 모두 포기하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몇 주 후, 답장이 왔다. 본부는 그의 요청을 이례적으로 승인했다. 그리고 부족한 금액은, 그의 뜻에 감동한 다른 나라의 신부들과 신자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채워졌다. 마침내, 기적처럼, 돈이 마련된 것이다.
그 소문은 최 사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미친놈들. 그 돈으로 차라리 육지에서 좋은 땅을 사는 게 백번은 나을 텐데. 고작 소 두 마리를 데려오자고 전 재산을 건단 말이야? 좋아, 어디 한번 해보시지. 그놈의 소가 바다를 건너오다 상어 밥이 될지, 아니면 이 섬에 도착해서 풍토병으로 죽어 나갈지. 내 아주 흥미롭게 지켜봐 주겠어.”
그는 이 싸움에서 자신이 결코 질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믿음 따위를 믿지 않았다. 그는 오직, 눈에 보이는 돈과 결과만을 믿는 사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뿐이었다. 소들은 영국의 항구에서 배에 실렸다. 그 배가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인도양을 건너, 마침내 부산항에 도착하기까지는 꼬박 세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세 달 동안, 이시돌의 소수의 사람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황무지를 개간했다. 그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희망을, 스스로의 손으로 가꾸고 있었다. 그들의 망치 소리와 곡괭이 소리는, 최 사장의 공사 현장에서 들려오는 기계 소음보다 작았지만, 훨씬 더 단단하고 끈질기게, 한림의 겨울 공기 속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