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기뻤던 순간, 잊지 못할 기억
예전부터 혼자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다가 무료해지면 무작정 집을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강가를 거닐면 시원해서 좋았고, 도로를 따라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면 길을 외우는 재미가 솔솔했고,둘레길에서 혼자 헤매면 그거대로 즐거웠다. 걷다 보면 머릿속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고, 활력이 솟기도 했다. 다만 남들과 걸어 다니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동행하는 사람과 아무 말 없이 걸으면 어색한데, 그렇다고 걷는 중에 굳이 대화하고 싶지 않은 이 딜레마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엄마가 이따금 같이 걷자고 해도 매번 혼자 걸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최근 가장 좋았던 기억은 다름 아닌 엄마와 함께 걸어다녔던 순간들이다. 삼사 년 전부터 엄마와 종종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이 동행이 끔찍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소한 행복으로 느껴지더니 직장을 다니는 지금은 어쩌다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이벤트가 되었다.
발단은 코로나였다. 밖에 나가고는 싶은데 코로나 걸리는 것은 또 무서워서 안 그래도 친구들하고 약속을 안 잡는데 대학교 수업도 줌으로 하다 보니 문자 그대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이는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나와 엄마는 온종일 집 안에 박혀 있었다. 그래도 나는 가끔씩 걸으러 밖에 나가는데 엄마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엄마는 자기도 나가서 바람 쐬고 싶지만 혼자 밖에 있는 게 너무 심심하다며 혼자 나가 버리는 내가 치사하다고 했다.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이대로 집에만 계속 있으면 건강이 안 좋아질 것 같아 앞으로는 함께 걷자고 말했다. 이에 엄마는 그러자며 미소를 머금은 티를 감추지 못했다.
상기했다시피 처음에는 엄마와 걷는 게 끔찍이도 싫었다. 나는 아무 데나 향하면서 방황하기를 좋아하는데, 엄마는 경로를 정해 두고 걸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엄마랑 걸으면 아무래도 말을 하게 되었는데, 대화하는 것도 귀찮은데 가끔씩 마찰이 생길 때마다 그렇게 짜증이 났다. 평소였으면 그냥 넘길 말도 괜히 더 크게 반응했다. “이래서 혼자 걷겠다고 한 건데”라며 한마디 툭 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걷다 보니 엄마랑 더 친해졌다. 쓸데없는 가십거리부터 속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것까지 여러 주제를 갖고 대화하면서 엄마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와 닮았고, 동시에 생각 이상으로 나와 달랐다. 한편으로는 몰랐던 게 이만큼이나 많았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내가 그동안 엄마에게 무심했다 싶어 미안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엄마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함께 걷는 것만큼 사람들을 친밀해지게 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는 걸으면서 내가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 같다는 주제로 대화하다가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어렸을 때는 너처럼 너무 민감하고 예민해서 살아 있어도 죽을 거 같았는데, 점점 무덤덤해져. 지금은 죽어 가는데도 살 거 같아. 그러니 너도 나이 들면 사는 게 편해질 거야.”
엄마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던 말이겠지만, 왠지 나는 ‘죽어 가는데’라는 표현에서 깊은 무기력함과 단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답했다.
“고마워요 엄마. 그런데 죽어 간다는 표현 쓰지 마세요. 잘 살고 계시면서.”
“나는 곧 육십이야, 다인아. 무릎도 아프고 피부도 말썽이고 기운도 없어지고……, 네가 내 나이가 돼 보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죽어 간다는 표현에 초점을 맞추지 마. 살 거 같다고 했잖아. 그게 핵심이야.” 엄마가 말하자 나는 울컥했다.
“알아요.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나이 들면서 아프면 아플수록 더 건강해지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나 엄마 건강한 모습 오래 보고 싶어. 그 CCA주스인지 뭔지 아빠랑 나만 챙기지 말고 엄마도 같이 먹어요. 장 건강에 좋다고 한 건 엄마니깐 얼마나 좋은지 엄마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그리고 나 없어도 좀 걸어요. 무릎에 근육이 생기면 걸을 때 안 쑤신대. 나 직장 다니기 시작하면 혼자 걸으세요. 딜런 토머스라는 시인이 그랬어요.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고. 엄마, 나는 엄마의 어두움을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하나님이 엄마를 부르시기 전까지, 어두워지는 것 같아도 아직 빛이 꺼지지 않은 만큼 열심히 살아가요. 죽어 간다고 말하지 마요. 제발.”
엄마는 알겠다며 묵묵히 걸음을 계속했다. 나도 말하다 보니 눈물이 흐를 것 같아 덩달아 말없이 걸었다.
회사에 들어가고는 한동안 엄마와 걷지 못했는데, 저번 토요일에 오랜만에 엄마와 서울성곽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처음에 엄마와 어색하게 걸었던 시간이 기억났다. 점점 자신의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던 시점도, 엄마가 죽어 간다고 말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문득 지금 엄마와 걸을 수 있다는 게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괜히 한마디 건넸다.
“그래도 오랜만에 엄마랑 걸으니깐 좋네요.”
“다음에는 여친 사귀어서 걔랑 걸어. 나이 삼십에 엄마랑 걷지 말고.”
“같이 걷자고 한 게 누군데요. 그리고 좋으면서 괜히 그러시네.”
“그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