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마다 사상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는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에 니체의 사상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니체의 사상 자체보다는 그 역사적 흐름에 더 초점을 맞추므로, 어떻게 보면 철학서라기보다는 철학사 책에 가깝다. 각 챕터마다 저자들이 니체의 사상을 쉽고 간단하게 언급하는 만큼 니체를 잘 모르는 독자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만하겠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러시아의 니체 수용사를 먼저 이야기한다. 동북아에 니체 사상을 처음 가져온 사람은 일본인인 고니시 마스타로이고 그가 모스크바 대학의 교수 니콜라이 그롯에게 니체를 수학했으니, 러시아가 니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먼저 논하는 게 맞다는 이유에서다. 니체의 사상이 다소 전복적이고 반기독교적이라 그랬을까, 처음 니체를 수용했을 당시 러시아 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부정적으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그롯은 니체를 톨스토이와 비교하면서, 니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프레오브라젠스키의 논문을 비판했다. 그는 '니체가 고대의 이교적 세계관의 대표자이고 톨스토이는 기독교의 도덕적 세계관의 대표자이다'라는 식의 이분법을 이용했고, 극단을 피하고 중용을 견지하자면서도 은연 중에 톨스토이 사상을 높이 사고 니체를 격하했다. 이 비교는 니체를 바라보는 하나의 프레임이 되었고, 그 프레임은 고니시를 통해 일본에 그대로 전해졌다.
하나 니체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는 그 틀 안에 국한되지 않았다. 분명 고니시는 자신의 지도교수 그롯보다도 도식적인 이분법을 이용했다. 니체는 유물론자이고 톨스토이는 유심론자, 니체는 욕망을 긍정했고 톨스토이는 욕망을 부정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다카야마 조규는 니체를 개인주의적 '현대 시인'이자 19세기 문명 전체에 반항한 '위대한 문명 비평가'라고 부르며 니체의 사상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자신의 저작 「미적 생활을 논하다」에서 조규는 니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의 사상이 상당히 겹쳐 보이는 주장을 폈다. 그가 말하는 미적 생활은 본능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에서 다분히 디오니소스적이고, 책 속 기존 도덕과 지식의 가치를 폄하하는 대목 또한 분명 니체의 것이다. 이렇듯 니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끊임없이 오갔고, 이후 일본에서 니체의 사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담론이 되었다.
일본에 있던 조선의 유학생들도 니체 담론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학지광》이라는 재일본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의 잡지에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니체에 열광했고, 자기 자신만의 방식―혹자는 이를 왜곡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으로 자신의 생각과 니체의 사상을 결합했다. 최승구는 니체를 개인주의자로 한하지 않고 그의 사상을 사회로 확장하려고 했다. 주종건은 니체적 의미의 '개체의 자아실현'으로 무지와 무능을 극복하고자 했고, 현상윤은 강한 힘을 이용해 적을 방어하자는 강력주의를 니체의 사상 속에서 찾았다. 『무정』의 저자로 알려진 이광수는 톨스토이를 노쇠의 사상가로 낮추면서까지 니체를 지지했고, 전영택은 니체의 생명주의를 역설했다. 어찌보면 나라 잃은 자들의 열패감은 당연히 니체를 열광하게 했고, 이는 '힘에의 의지'의 불씨가 되었던 모양이다.
이 외에도 일본의 또 다른 사상가의 니체에 대한 반대 의견, 중국에서 루쉰 등이 바라본 니체의 사상 등이 나온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책 속 인물들 모두 각기 다른 의견과 주안점을 갖고 있었고, 이것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시대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롯은 결국 기독교 국가 영향 아래 있었고, 고니시는 원래 톨스토이를 연구했었다. 조규는 원래 일본주의자였지만, 그의 변심은 개인주의가 부각되기 시작한 시대적 흐름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유학생들은 상기했듯 식민지 의식이 니체를 열광케 했다. 니체가 다르게 해석되는 것은 그의 사상이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아서일까? 그가 그 어떤 철학자보다 강하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던 만큼, 이 철학을 받아들이는 자의 주관이 해석에 개입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겠다. 그리고 이 주관은 분명 자신의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테다.
누군가의 주장과 그 주장에 대한 나름의 해석은 진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을까? 어쩌면 전부 사적인 것 혹은 사회의 산물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이런 경험론적 사고가 꼭 맞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경험론에 입각하여 철학사를 읽고 사상을 다시 본다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거나 원래 생각했던 바가 다르게 생각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철학적 사고를 풍부하게 해 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문득 메타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생각한 것이 실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기 자신의 이해를 돕고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