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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y 07. 2022

『바냐 아저씨』 - 안톤 체호프

고되고 나약한 우리를 토닥여주는 두 희곡

안톤 체호프, 『바냐 아저씨』, 장한 옮김, 더클래식, 2020


 이 책에는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두 개인 『바냐 아저씨』와 『세 자매』가 실려 있다. 『바냐 아저씨』는 이반 페트로비치 보이니츠키(바냐) 앞에 일어나는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등장인물이 가진 고충을 그린 희곡이다. 대중들에게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나오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세 자매』는 프로조로프가의 세 자매와 그 주변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특히 치정을 중심으로 한 얽히고설킨 일들―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두 작품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다루지만, 작가의 공통된 생각이 담겨져 있어서 이를 읽어내는 재미가 있다.


 쉽고 재밌다. 딱히 어려운 내용을 다루지 않아서 줄거리 파악이 쉽게 되고, 난해한 구석이 전혀 없다. 막장드라마스러운 극단적인 상황은 읽는 내내 몰입게 하고, 유머러스한 대사들은 읽는 도중 실소를 머금게 한다. 각 인물의 캐릭터성이 뚜렷하고 일관되어서 이를 캐치하는 것도 재밌고, 대사가 굉장히 잘 쓰여서 그 자체로 읽는 맛이 있다. 특히 두 작품의 마지막 대사는 가히 클라이맥스로, 교훈과 감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악(惡)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지지한다. 『바냐 아저씨』의 바냐를 보자. 바냐가 총으로 사람을 쏘려고 했던 것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바냐는 아버지가 산 땅에서 죽은 누나의 남편이었던 세레브랴코프와 그의 두 번째 아내가 살게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토지를 구매할 때 졌던 빚을 전부 바냐가 갚았고, 땅에서 생긴 이익금은 세레브랴코프에게 전부 송금했다. 그런데 세레브랴코프는 그런 은혜를 뒤로한 채 그저 시골살이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집을 팔아버리겠다고 선언한다. 격분한 바냐는 그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그는 답답한 말만 해댈 뿐이다. 그러한 맥락이 그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해준다. 세레브랴코프 또한 순수악으로 단정지어지지 않는데, 자기편 하나 없어 느끼는 고독함과 늙어감에 따라 커지는 비참함은 그의 행동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렇듯 두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각자만의 사정이 있고 정념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이해는 될지언정 정당화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작가는 꿰뚫었고, 그 미묘함을 잘 묘사해냈다. 말하자면 토드 필립스의 '조커'가 극단적인 사례를 제시한 것에 반해, 체호프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 속 저지르는 잘못들, 즉 우리네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은 셈이다.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함을 역설하면서도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점이 인상 깊다.  작품에는 인생이 아무리 괴로워도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다만 시지프 철학의 카뮈처럼  철학을 논증하지는 않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책이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느끼게 했다. 인생을 사는 이유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도 없거니와, 설령 있다고 한들 그것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성질은 아닐 테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각자마다 다른 것인데,  사람이 자신만의 이유를 남들에게 소개하고 구워삶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궁지에 몰려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카뮈가 말한 것처럼 끝까지 저항하는 삶을 살아라'라고 하는  오히려 코미디 아닐까? 체호프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대개념으로 삼고서 근거 없이 우리를 설득한다. 되려 시궁창 같은 상황들을 나열하고서 갑자기 그런 주장을 하는  극적이기는커녕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굳이 살아야 하지?'라는 의문만 증폭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바냐 같은 이들에게  외에는 딱히 해줄 말이 없는 것도 사실 아닌가? 대부분의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는 와중인데, 지치고 쓰러진 자에게 무슨 말을  해줄  있겠는가? 아무리 철학이나 종교나 심리학에 기대어 이야기를 해봐도,  알맹이는 결국 '그래도 살아야지' 지나지 아니하지는 않던가? 이는 진리를 꿰뚫을  없는 인간의 생각과 언어의 한계이고, 체호프가 이를 간파한 것이리라.


 고전 문학을 접하고 싶은데 어떤 작품을 먼저 읽어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기를 권한다. 비단 이 작품들뿐만 아니라 체호프의 희곡 및 단편집은 문학 입문용으로 탁월하다. 어쩌면 고리타분할 거란 고전문학에 대한 대다수의 편견을 이 책이 깨부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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