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스러움 이면의 섬뜩함
『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는 용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아이디어를 너드 두 명이 집요하게 발전시키는 책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여 여러 동물의 특정 부위(날개 등)나 특징(불 뿜기 등)을 추출한 후 편집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용의 모습을 구현시키겠다는 엉뚱한 책이지만 어쨌든 과학 이론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생명 공학 저서로 분류된다.
전체적으로 익살스럽다. 책이 던지는 질문 자체가 웃기기도 하고 저자의 문체도 어딘가 장난스럽다. 얼핏 봤을 때 쓸모없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 전개하는 내용이 논리적이고 그럴듯해서 오히려 더 웃기다. 덕분에 과학적 내용을 상당히 많이 다루고 있음에도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챕터 내 소제목도 '용이 왜 필요한가용'과 같이 쓰여 있어서 읽다가 뜬금없이 웃게 되는 포인트가 있다. 역자와 편집자의 노고에 박수를.
과학 입문서로 매우 적합하다. 책의 톤이 장난스러워서 그렇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해 보려는 자세는 전형적인 과학자의 그것이다. 또한 하나를 탐구하는 데에 수많은 가능성을 고려하고, 팩트에 기반해서 이야기하는 점에서 정말 치밀한 책이다. 거기다가 재밌기까지 하니,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을 잘 맞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연역적 사고를 기르고 과학적 지식을 쌓을 수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딘가 섬뜩해지는 구석이 있다. 이 책은 용이 '멋있고' 용을 만드는 게 '재밌다'라는 말을 강조하듯 반복한다. 어찌보면 단순하고 순수한 의도지만, 이를 바탕으로 용을 실제로 만든다면 당연히 윤리적 문제가 수반될 테다. 이 책의 무서움은 바로 그 무구함과 기술의 구현 가능성에 있다. 책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크리스포 키트를 주문해서 유전자를 편집한 유기체를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미생물에게만 사용 가능하지만, 나중에는 정말 우리가 직접 용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키트가 나올 수 있다. 즉 몇 년 후면 인간이 개조되는 동물의 입장을 생각도 않은 채 자기 입맛대로 몸과 기능을 구성할 수 있다는 건데,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멋있고 재밌다'라는 이유만으로 몇몇 사람들이 DIY 용이나 유니콘 등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만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세계로 변모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계속 재밌게 얘기하다가 마지막 장에서 엄숙해지는데, 이 태도를 적극 지지한다.
소재적으로나 재미 면에서나 청소년들이 과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책이다. 성인 중에서도 과학적 지식을 쌓고는 싶은데 과학 서적이 어려울 거 같아서 읽기를 포기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과학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고 싶고 생명 과학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 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절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예언서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