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에 뒤 시네마의 영화를 향한 독창적이고 확고한 시선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영화 시나리오에 관한 책으로, 시나리오에 대한 설명과 지은이의(혹은 잡지사의) 생각이 담겼다. 저자만의 견해가 꽤 독특하고 완고해서, 책의 내용이 독자에게는 생경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특히 누벨바그를 비롯한 프랑스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면 더더욱 그러하겠다.
독특함과 완고함 그 자체가 이 책의 강점이다. 시나리오에 대한 정의부터가 우리의 기존 상식과는 차별화되는데, 가령 시나리오는 문학 작품이 아니고 그저 기획서 내지 견적서에 불과하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시나리오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대목도 흥미롭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정연하므로 설득력이 강하다. 이처럼 참신한 관점은 독자의 이목을 끄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겠다.
책의 구성이 잘 짜였다. 시나리오란 무엇인지 설명한 다음 몇몇 작품의 각본을 함께 읽으면서 분석하는 것, 이후 시나리오에 관한 감독들이나 여러 사람의 언급이 실린 방식인데, 이렇듯 차례 속 내용들은 군더더기 없이 모두 시나리오를 설명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장제목과 소제목 등이 본문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고, 순서가 잘 배치되었다.
네 개의 작품 위주로 본문을 전개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 '400번의 구타', '밀레니엄 맘보' 그리고 '아이즈 와이드 셧' 이렇게 네 작품은 본문을 이끌어 나가는 메인이다. 저자는 중간중간 이 작품들을 주장과 근거의 예시로써 활용하는데,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풀어냈다.
다만 대사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등장인물의 말은 시나리오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고, 대부분의 경우 배우가 촬영 전에 미리 숙지하고 외워 와야 한다는 점에서 시나리오의 존재 의의일 수 있다. 아무리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시리즈의 8권에 『대사』에서 더 자세한 설명이 있다 하더라도, '등장인물의 생각과 말'이라는 소제목 밑의 몇 문단으로 대사에 대한 설명을 퉁치는 것은 치사한 태도다.
영화를 더 진득하게 감상하고 싶거나 영화 이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영화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거나, 적어도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함으로써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하게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