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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Sep 15. 2022

『시민 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진부함에 결연함을 곁들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 시민 불복종』,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2021


 * 이 글은 『시민 불복종』만 다루고 『월든』은 다루지 않습니다.


 인간은 아직 이상향을 만들지 못했다. 꿈꾸던 사회를 이루려면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이는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를 위해서는 뚜렷한 명분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필요해서 그렇다. 평화적인 방식으로든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든 결국 변화를 이끌어 내도, 그것이 역기능을 초래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주의가 그랬다. 마르크스의 세계관은 자본주의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인간이 욕망을 억누르면서까지 그런 곳에 살고 싶지 않아 했던 게 문제가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계속 추구했다.     


 『시민 불복종』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낙원을 만들려고 작은 혁명을 시도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노예제 폐지, 상비군 제도 비판, 부당한 법에 대한 저항 등을 이야기하면서 정부가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 우리는 개인으로부터 힘이 나오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회의 여러 부조리한 면을 꼬집은 후 이상향을 제시하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사실 책의 내용은 참신할 게 없다. 노예제 폐지는 미국 내에서 활발히 토론되고 있던 주제다. 상비군 제도는 몇십 년 전 칸트가 『영구 평화론』에서 이미 비판했다. 정의롭지 못한 법률을 따라야 하는가는 플라톤의 『크리톤』에서부터 다뤄진 문제다. 정부를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시선은―결이 다르긴 하지만―토마스 홉스의 것과 겹쳐 보인다.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는 매우 진부한 아이디어다.     


 책의 결함도 종종 보인다. 우선 지나치게 강압적이다. 저자는 자신과 반대되는 뜻을 가졌거나 자기 성에 안 차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말하며 생각을 바꿀 것을 강요했다고 직접 말한다. 이를 정의롭다고 생각했는지 독자에게도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또한 저자의 사상은 실현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부분은 저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노예제 폐지를 원해도 이를 위해 몸소 행동하지 않음을, 어쨌건 정부가 매우 센 물리적 힘을 갖고 있으므로 전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 외에도 원주민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 일반화의 오류 등이 나타난다.     


 다만 저자의 엄숙주의가 흥미롭다. 사상은 정연한 논리와 올바른 윤리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상가의 결연함과 추진력이 있어야만 진정 의의가 생긴다. 소로는 자신의 도덕률을 공허하게 말로만 때우지 않고, 확신을 갖고서 자기 자신부터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직접 저항하기 위해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투옥되었다고 책에서 밝혔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 세금 고지서 중 어떤 특별한 항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납부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거기서 떨어져 초연하게 있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돈을 대신 지불하고 그를 보석하게 해 준 사람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남들이 내게 청구된 세금을, 국가에 동조하는 뜻으로 대신 내준다면, 그들이 납세 의무를 이행하여 초래된 해악을 반복하는 것이다. (...) 만약 세금이 부과된 개인에 대한 잘못된 관심 때문에, 즉 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감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신 내준 것이라면, 그들이 현명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모질게 굴고 주변인을 등지면서까지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옳다고 여기는 것을 밀고 나가기 위해 자기 자신부터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감명 깊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별거 없는 사람들을 현실이나 미디어에서 많이 접해서 그럴까, 그가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이상으로 보인다. 이 태도만큼은 나라의 주인 되는 민주시민으로서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다.     


 그리고 “그러나 부유한 사람―차별적 비교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은 언제나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제도에 매수되어 있다.”라는 주장도 유독 눈길을 끌었다. 대선 때쯤에 친구들끼리 누구를 뽑을 것인지 얘기하다 보면 항상 이런 “우리 아빠가 사업하니깐 나는 친기업적인 A를 뽑을 수밖에 없어.”라고 얘기하는 부잣집 애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모두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종종 봐서 그런지 나름 깊은 통찰로 느껴졌다.     


 요약하자면 진부하고 강압적이지만, 저자의 실천력과 통찰력으로 단점을 상쇄하고 메시지에 무게감을 더한 책이다. 어쩌면 평생 독신이었던 그가 잃을  없으니 무턱대고 덤벼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로가 엄숙하게 지켜  양심은 앞의 문장만으로는 설명할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양심이야말로  책이 지금까지 고전으로 남을  있었던 이유이자 독자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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