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1일, 나는 기술사 면접시험을 (재수해서, 그러니까 작년에 떨어지고 다시) 보았다. 무심하게도 올림픽 일정과 아주 딱 맞아떨어져서 올림픽과 함께 하는 혼란한 수험 기간을 버텨야 했다. 그 시기에 '작가의 서랍' 안에 고이 쏟아두었던 문장들을 내어본다.
D-10 : 불안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을 공개적인 공간에 글로 내어놓는 일이란 늘 어렵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쓰는 이유는 외롭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불안함이 내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건 지금 내가 그만큼 한가하다는 이야기 아닐까. 그렇다면 공부에 더 매진해야 하는데 불안이 관성력을 받아 키보드로 뭔가를 계속 쓰게 만든다.
D-7 : 왜 하필 이때!
작년에 기술사 면접시험에 불합격하고 올해 다시 시험을 본다. 열공해야 할 시기에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나는 올림픽을 중간중간 즐기며 울며 겨자먹기로 공부해야 했다. 퇴근한 몸뚱이는 올림픽과 시험 준비 사이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머리가 시키는 일(공부)이 아닌 마음이 시키는 일(올림픽 보기)을 하고는 후회 하기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올림픽에 완전히 빠져버려서 공부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왜 하필 이때 올림픽을 하는 거야! 라며 떼써보지만 어느 때가 되었어도 내가 하기 나름인 거다. 그래도 아직 올림픽 초반부라(?) 괜찮다. 멘탈관리 차원에서 펜싱 올림픽 레전드 박상영 선수의 금메달 경기 영상을 수십 번이고 돌려봤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금메다아아알~~~~~~~~~~!!! 빡상영!!! 금메달!!! 에쀄에서~~~ 막고 찌르기!!!"
우리나라 첫 금메달 딴 이 날, 양궁 혼성 단체전 안보신분 있나요.
D-5 : 변명, 주저리주저리
올림픽을 봐야만 했다고, 그중에서도 봐도 될 경기만 봤다고 합리화해 본다. 어떤 식이냐면, 여자배구 한일전은 봤는데 야구 한일전은 안 봤고, 양궁도 메달전은 봤지만 남자 경기는 이긴 경기만 봤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여자 경기만 봤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건 결코 아니다. 더 인기 있는 경기만 골라봤다는 이야기다. (언론이 주목한 선수들을 보면 종목의 인기를 알 수 있다. ex. 김연경 선수나 안산 선수) 그중에서도 커다란 바위처럼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활시위를 당기는 오진혁 선수 뒤에서 화이탱!!!! 을 외치는 김제덕 선수의 짤은 수백 번이고돌려 봤다. 아참, 펜싱 동메달전도 봤다. '어펜져스'로 뭉친 펜싱 남자선수들은 어쩜 하나같이 잘생겼는지 정말 얼굴 보고 뽑는 건가 싶었다. 경기가 2배 이상 더 재미있었달까. 아무튼...
D-3 : 목표의식
펜싱 선수 구본길은 한 뉴스 인터뷰에서 목표의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쿄올림픽이 1년이 미뤄지면서 목표의식이 흔들려 멘탈잡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겪었던 일이었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기술사 필기시험을 이틀 남겨두고 돌연 1달이나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목표의식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그건 아주 무서운 일이었다. (근데, 이 뉴스 인터뷰, 시험 준비 중에 했던 건데 꼭 그렇게 덕후처럼 본방사수했더라.)
D-1 : 큰 산
올해부로 건설회사에 입사해 밥 벌어먹고 산 지 10년이 되었다. 어쩌면 더 멋지게 합격하라고 작년에 떨어졌던 것일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해 봅니다만...) 아무튼 큰 산(내일 있을 기술사 면접)을 앞두고 24시간이 남았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도 올림픽에서 고배를 마시면 다음 올림픽까지 4년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파리 올림픽까지는 3년이 남았지만.) 올림픽 선수가 짊어진 간절함의 무게와 같을 지는 모르겠으나, 월급쟁이인 나도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위해 이 시험을 1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돌이켜 보면 1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시험이 코 앞에 다가왔다. 김연경 선수는 한일전을 앞두고 잠을 못 잤다고 했다. 나도 오늘 잠을 못 이룰 것 같아서 커피를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의 나를 위해 우황청심원을 구비했다. 내일의 나 자신 화이팅! 3년 후 대한민국 올림픽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