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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기 전 불안에 대하여

두 손은 방광을, 두 발은 갈비뼈를 때리는 너를 느끼며

by 아코더

밤에는 잠이 안 오고 낮에는 멍 때리는 나날들이 벌써 4주가 되었다. 6월 17일, '공백 인사' 라는 이메일로 산전 휴가를 알리고 사무실을 나온지 벌써 한 달 즈음.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 가서 육아관련 책을 빌리는데, 그 옆에 '장난감 도서관' 이라는 곳이 있었다. 임신 전에는 관심없던 '장난감 도서관' 이 어찌나 반갑게 보이던지, 대뜸 들어가서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 거냐며 적극적으로 묻는 나를 보니 예비 엄마 맞구나 싶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3권의 육아 책을 들고 카페에 가서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주문해 읽기 시작했다. 어떤 책은 아직 읽기에 너무 이른 육아 책 이었고, 또 다른 책은 모유수유에 관한 책, 마지막은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똑게 육아' 였다. 3권의 책 페이지수 도합 총 1000페이지가 넘는 만큼 예비 엄마인 나는 불안했다. 정독은 목표가 아니었다. (유튜브 로부터 오는 무한 알고리즘 인풋을 끊기 위한) 선택적 정보 습득을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육아책 내용도 내겐 생소했지만, 책을 읽다 보니 불안의 씨앗이 머릿속 한 곳에 싹텄다.


'육아책 말고 다른 책은 언제 읽을 수 있겠어?'


라는 불안.


집에 있는 책장에는 아직 읽다만 책, 펼치지 않은 책들이 상당한데 그것 마저 지금 읽지 않으면 영영 읽지 못하는 것 아닐까. 책 뿐 아니라 '성경책'이라도. 활자를 따라가는 눈의 총명함에는 한계가 있다. 눈의 피로로 인해 곧 침대 위로 미끄러질 나를 위해 한 시라도 총명함이 있을 때 읽고 싶은 책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냐는 불안, 그 불안이 기어코 3권의 육아책을 도서 반납함에 넣게 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우선 이 글을 쓰며 워밍업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집에 읽다만 나태주님의 산문집 '사랑에 답함' 이라는 책을 먼저 읽으려 한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읽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좋은 에세이집을 가볍게 읽으며 새로운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오면 새로운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게 된다는 것을 여러번 체감했다. 충전된 눈의 에너지만큼 후회 없는 시간들로 채워지길 바라며, 예비 엄마는 육아책 아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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