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첫 프리랜서로서의 역경과 일에 대한 상념 (1)
오늘 마침내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받았다.
올해 초까지 나는 전 직장동료들과 함께 창업한 회사의 공동대표였다. 법적으로 해당 주식회사의 주주이자 무보수 등기이사였고, 대내외로 어떤 고용관계도 형성하지 않았다.
난 법인이 수주하는 연구사업에 연구진으로 참여해 사업소득을 받았다. 그러니까.. 나는 대외적으로 공동대표, 서류상 주주이자 이사, 실질적으로는 프리랜서였다.
하지만 첫 창업의 무모함 때문인지, 준비 부족인지,
나의 역량 때문인지 회사는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다행히 프리랜서로서 다른 이들과 연구사업을 수행할 계획이었지만, 여기서도 이견이 발생하며 프로젝트에서 아웃, 당분간 (어쩌면 기약 없는) 실질적 백수가 되어버렸다.
그때가 4월 중순이었다.
코로나로 기존 일자리도 어려워져 재취업이 가능할까 싶은 시장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난 나의 일과 꿈, 능력치에 대한 회의와 인간관계에 대한 환멸이 겹쳐 번아웃 비슷한 상태로 딱히 일을 하고 싶지도 않은 상태였다.
기껏 벌어놓은 돈을 까먹고 살아야겠구나 싶을 때,
기본소득, 재난지원금에 대한 얘기들이 불타 올랐고 지급 신청을 받았고, 프리랜서와 자영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무급휴직자들에 대한 지원 정책이 착착 마련되기 시작했다.
2016년 처음 알게 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재난지원금과 비슷한 관련 정책들이 이렇게 속속 도입되고 내가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이 되리라곤
4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프리랜서에게 노무미제공확인서 발급이란,
그렇게 6월 4일에 온라인으로 지원금을 신청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고, 문의했고, 보완했다.
며칠에 한 번씩 포털에서 지원금을 검색하면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글들이 가득했다. 그 글들을 보고 내 진행 상태를 추측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예상 수요 이상이 몰리면서 일은 더뎌지고, 행정은 가능한 모든 인력을 동원했다. 나도 신청한 지 한 달이 되는 지난 토요일(!)에서야 보완 서류를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다.
그 서류는 4월의 소득이 '0원'이라는 것을 증빙하기 위한 것으로, 사실 신청을 준비할 때부터 우려했던 지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서류들이 헷갈리긴 했다.
그래서 잠깐 아래에서 관련 서류에 대한 나의 고민과 대응을 정리해본다.
1. 증빙서류로 증빙 월의 원천징수 영수증을 요구했는데, 홈택스에는 2019년 전체로 묶여있다.
다행히 창업했던 전 회사에서 12월 지급한 인건비 원천징수 영수증을 갖고 있었기에 이는 제출이 가능했다.
(요청한 증빙서류는 12월 원징과 1월 입금내역이었는데, 우리는 12월에 지급하고 그달에 원징을 해서, 난 혹시 몰라 12월 통장 내역과 1월 통장 내역을 같이 제출했다. 1월 수입에 대한 원징 영수증은 따로 없었다. 타사에서 지급받은 거라..)
2. 3월에는 수입이 있었고, 4월에는 수입이 없었다. 3월 또는 4월 수입이 없는 경우 노무미제공확인서를 사업주의 이름으로 제출하길 요구했다. 난 3월 통장 내역과 4월 수입이 없는 통장 내역을 첨부했다.
(혹시나 계약서를 요구하거나, 확인서를 요구하면 절절하게 '제가 무지하게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고, 안 좋게 헤어져서 지금 요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요'라고 읍소라도 해보려고 했다. 아니면 눈 딱 감고 전 사업주(?)에게 연락을 하거나... 하지만 둘 다 너무 어려운 선택지였다.)
그래서 한 달 내내 난 2번을 걱정하고, 고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답은 두 가지뿐이었다.
150만 원을 위해 눈 딱 감는 것 아니면 포기.
난 절대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태였다.
눈 딱 감기에 난 정말 눈 감고도 그들을 보기 싫었고,
포기하기엔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까먹으며 살 거라고 생각했던 돈도 까 보니 바닥이었다.)
아니 대체 프리랜서의 일이란 게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일이 있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일이 없을 거란 것이
확실하지 않은 불확실성의 아름다움 아닌가
그리고 때때로 일이 끝난 후
돌아보지 않는 것도 미덕 아닌가
물론 좋은 관계로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이어간다면
그것보다 좋은 건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