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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Jul 17. 2020

연필 있어요?

이런 각박해진 세상

카페에서 프리퀀시를 채우기 위해 커피를 두 잔째 마시며 이북을 읽는 중이었다. 에어팟을 끼고 있어 정확한 소리는 안 들렸지만 내 옆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예?

- 연필 있어요? 급하게 쓸데가 있어서


난 가방에서 샤프와 4색 펜으로 이루어진 멀티펜을 꺼내 샤프를 눌러서 건넸다. 어르신은 펜을 받고는 곧장 카페 옆문으로 나가 문을 채닫지도 않으시고 은행 ATM기가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셨다. 옆에서 잠깐 사용하고 줄거라 생각했는데, 뛰쳐나가시는 분을 바라보며 잠깐 당황했다. 이북을 보는 틈틈이 고개를 돌려 ATM기 앞에 있는 그를 확인했다.


난 별것 아닌 거라도 내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하지만 책이나 물건을 빌려달라는 사람에겐 대체로 그렇지 않은 척, 쿨한 척 빌려주곤 한다. 그리고 돌아온 아이가 때로 상처 받아있으면 거절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거나, 너무 아끼던 아이면 새 걸로 다시 구매할까 고민하기도 한다. 난 그가 내 펜을 안전히 돌려주길 바라는 마음을 쿨한 척하는 마음으로 감싸며 뒤돌아보기를 멈추고 이북을 읽었다.


좀 오래 읽었다(뒤돌아보지 않았다) 싶어 돌아봤을 때 더 이상 그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이미 그가 있던 ATM기 앞에 서 있었다.


‘나간 건가? 아니면 은행에 올라간 건가?’

‘두고 간 건가? 아니면 가져간 건가?’


난 이북을 보던 아이패드를 챙겨 들고 카페를 나와 ATM기를 향했다. 기기 위에도 옆에도 펜은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한번 더 기기를 둘러보고 없는 걸 재차 확인하고 카페로 돌아왔다. 몇 번을 뒤돌아봤지만 어르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별것 아닌 볼펜이지만 재작년에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맡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파이팅을 외치며 팀원과 함께 구매한 것이었다. 나에겐 나름 의미와 추억과 손떼가 묻은 물건인셈이다. 솔직히 짜증이 났다. 어디 얘기할 곳도 없이 황당해하고 있을 때 마침 엄마에게 영화 시간을 바꿔달라고 전화가 왔다.


- 엄마 황당한 일이 있었어

- 뭐?

- 한 할머니가 펜을 빌려달래서 줬는데 없어졌어

- 폰? 폰을 빌려주면 어떡해?

- 아니 펜, 폰이면 내가 이렇게 전화를 못하지

- 아아 펜 (폰이 아니라 안도하는 음성)

- 아, 비싼 거란 말이야 (별 것 아닌 취급에 내 목소리엔 짜증이 섞인다)

- 그냥 액땜했다고 쳐

- 하.... 이렇게 세상이 각박해진다?! 아 짜증 나

- 요샌 어르신들도 조심해야 돼

- 알았어 끊어


“휴, 아 짜증 나”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전화기로 펜을 검색한다. 다시 구매를 해? 하지만 일본 펜은 더 이상 안 사기로 했다. 펜 자체로는 의미도 없다. 내가 의미를 담았던 펜을 찾고 싶었다. 책 읽기도 그만두고, 패드도 덮어두고 프라푸치노만 쪽쪽 빨았다. 사라진 펜과 함께 에너지도 소진된 느낌이라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 고개는 자꾸 뒤로 향했다.


‘은행을 갔다가 다시 오시지 않을까?’

‘짐을 챙겨서 은행을 가볼까?’


하지만 이건 너무 쿨하지 못했다. 다소 과도한 집착 같았다. 인스타에서 강아지와 고양이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난 똑같은 자리에 있는데. 마침내 그가 나를 발견했다.


- 잘 썼어요

- 아, 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펜을 받아 테이블 위에 놓았고, 계속 고양이 사진을 봤다. 그러다 엄마와 통화하며 짜증 낸 내 모습이 떠올라 펜을 얼른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거 하나 못 기다리고, 사람을 욕하냐?’

‘뭐 별로 비싼 것도 아니구만’

이라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정확히 잰 건 아니지만 펜을 빌려간 시간은 엄마와 통화한 시간 그 앞뒤로 대략 삼십여분이었다. 그동안 그는 타인의 물건을 가지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고, 결국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난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펜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가 펜을 가져갔다며, 이래서 세상이 각박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펜을 돌려받으며 ‘내가 각박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가져가 버렸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지’라는 마음이 항변을 한다. ‘나라면 그런 형태로 남의 물건을 빌리고 사용하지는 않을 거야’라고 덧붙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돌려받은 이상 너무 빨리 의심을 해버렸나 싶긴 하다. 만약 내가 펜을 돌려받지 못했다면 앞으로 누군가의 그런 요청에 ‘없어요’라고 했겠지. 사실 고양이와 강아지 사진을 보면서 그런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한번 더 빌려줄 수 있을 거 같다. 어르신이 펜을 돌려줬기 때문에. 빌려준 물건을 돌려받았기 때문에. 너무 빨리 의심했나 싶은 부끄러운 마음이 나한텐 아직 더 크기 때문에.


- 안녕, 볼펜... 안녕, 볼펜!


어디로도 가지마, 나의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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