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9주 차 포토 회고록
#10.07.2023. 월요일 | Bell & Beans, Lüneburg
여름 방학을 맞아 세미나에서 해방되었고, 본격적인 과제 시즌에 돌입했다. 미리미리 해놨으면 좋았겠지만, 게을렀던 과거는 과거에 남겨두고, 조금이라도 집중을 해보려고 카페에 갔다. 유럽에 살면 매일 같이 카페를 갈 것만 같지만, 시끌시끌하고, 전자기기 충전도 어렵고, 서비스는 불친절하고, 비싼 카페보다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하게 되는 게 아무래도 학생의 현실이다. 그래도 가끔은 분위기 전환 삼아 고소한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에 카페가 적합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다. 우리 동네에 두 개 있는 Study-friendly(공부할 만한) 카페를 찾아갔다. 다운타운에서 조금 꺾어서 들어가야 있는 외진 골목에 덩그러니 있는 곳이었다. 커피를 들고 밖에 나가서 앉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바깥쪽에도 의자들을 배치해 두었다. 하지만 햇살이 센 날이라 아늑하고 적당하게 밝은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Spanische Lazos라는 디저트와 플랫화이트를 시켰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카페나 식당에서 이것저것 주문하고 관련 대화를 하는 것 정도는 독일어로 편하게 말할 줄 알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여기까지 오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지만 말이다. 카페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코끝에 새겨지는 고소한 향이 좋다. 내가 마시고 있는 커피의 향인지, 바리스타가 내리는 커피의 향인지 공간 가득 채운 편안한 냄새. 내가 살면서 마신 커피가 과연 몇 잔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 인생에서 커피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밤샘 야근이나 아침 기지개의 동반자, 친구와의 가벼운 수다 사이 공백을 호로록 채워주던 시원함, 달콤한 디저트의 작은 휴식을 더욱 고급지게 느껴지게 해주는 세련됨, 다양한 문화와 기후와의 연결고리. 난 막입을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커피 자격증을 따고 싶다.
#12.07.2023. 수요일 | Neuköln, Berlin
남자친구와 기념일을 맞아 하루종일 재밌게 놀았다. 먼저 점심으로 한국식 치킨을 먹으러 갔다. 김치와 밥도 파는, 누가 봐도 코리안 치킨집이었지만, “Korean fried chicken”이 아닌 ”Berlin fried chicken” 으로 마케팅되고 있어서 신기했다. 한국 치킨이 외국에서 이제 완벽하게 현지화되었구나 싶어 자랑스러웠다.
그다음 한국을 떠난 후 처음으로 방탈출을 했는데, 이집트 투탕카멘 무덤 탈출을 테마로 하였고, 독일어가 살짝 필요했지만 게임 진행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조끼 슈트를 입고 서로 레이저 총으로 맞추는 레이저 태그도 했다. 우르르 몰려온 귀여운 잼민이 5명 중에 2명이 우리 팀이 되어 게임을 했는데 우리가 처참히 졌다. 기념일을 맞아 깜짝 재밌는 액티비티를 준비한 남자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이어서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보러 갔다. 도너케밥과 바클라바를 먹으면서 8명의 다양한 코미디언의 공연을 감상했다. 야외 공간에서는 소리가 반사되는 천장이 없기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가 하늘을 넘어서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시간이 한참 남아서, Neuköln에서 Kreuzberg까지 걸었다. 독일에는 걷다 보면 중간중간 공원이 참 많다. 뒹굴뒹굴 거리거나 뛰어놀기 참 좋은 초록색 잔디들이 많은 게, 그게 난 행복이다. 코를 간지럽히는 풀내와 시원한 바람이 여름의 열을 식혀준다.
#13.07.2023. 목요일 | Berlin
남자친구 플랫 친구들과 Potluck을 했다. 독일인 1, 프랑스인 1, 인도인 2, 미국인 1, 한국인 1(나)이 모였다. 독일 친구는 독일남부의 별미 Spaetzle를 만들었는데 쫄깃쫄깃 식감이 최고였다. 인도 친구들이 직접 만든 차파티와 Chicken Masala와 콜리플라워 볶음, 그리고 남친이 페타 치즈, 치킨, 코리안더 등을 넣고 만든 써머가든샐러드와 애플파이도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인 친구는 디저트로 누텔라와 킨더 초콜릿을 잔뜩 바른 크레페를 만들었다. 너무 달달하고 중독적이어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또 먹었다. 나도 한국음식으로 떡볶이나 닭갈비를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너무 많아서 그냥 애플파이 만드는 걸 거들었다. 사실 나도 남자친구도 애플파이를 처음 만드는 거여서 플랫메이트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실험체가 됐다. 가장자리는 울룩불룩하고, 필링은 찐득찐득하고, 표면에 구멍도 안 뚫어서 뭔가 희한한 프랭킨-애플파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디저트는 달달하면 장땡이라는 마음으로 맛있게 노나 먹었다. 너무 배 불렀다.
#14.07.2023. 금요일 | Teufelsee, Berlin
점점 더워지는 날씨, 이럴 때는 물에 뛰어드는 게 최고다. Grünewald라는 숲 속 Teufelsee라는 호수로 향했다. Grünewald는 꽤 직접적으로 "초록색 숲"이라는 이름인데, 그만큼 가는 내내 초록색이 끊이질 않아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그만큼 모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전 세계 모기를 다 여기에 모아둔 느낌이랄까?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된다. 2시간가량 머무르면서 백 방은 물린 듯... 농담도 과장도 아니다.
별생각 없이 호수로 향할 때만 해도 이곳이 Freikörperkultur(독일의 나체 문화) 전용 호수라는 걸, 그것도 (나중에 독일 친구한테 전해 들은 건데) 많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걸 모른 채로 갔다. 발가벗은 사람들이 호수 한가운데 떠있는 인공 섬 위에 옹기종기 모여서 태닝을 하고, 수영을 하고, 걸어 다녔다. 누드 비치랑 사우나도 이미 가본 적 있고, 물론 모두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예의 바르지만, 이런 대규모의 누드 비치는 처음이어서 살짝 어색했다. 시원한 물에 뛰어들어 호수 한가운데 둥둥 떠있을 때면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당연히 사진은 없지만, 너무너무 아름다운 호수였다.
Foto Journal. #16.07.2023.
Foto by. 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