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없는 것 같은 즈음
개띠개와 산책하는 김에 종종 동네 마트에 들러 간단한 부식거리를 사 오곤 했더니 어느 날부터 마트가 가까이 다가올라치면 개띠개는 고개를 돌리고 씨익 웃으며 나를 본다.
“마트에 들를 거야?” 하고 묻는 듯하다.
영특하고 침착하고 인내심이 있는 개띠개는 마트에서 장을 볼 동안 입구에 앉아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동네에 작은 규모의 식자재 마트가 있었다.(곧 다시 열 거예요,라는 말을 남기고 아직까지 폐업 상태다.)
언젠가 지인이 “너희 동네는 뭐가 좋아?”라고 물었을 때 나는 “장 보기가 좋아.”라고 대답했었다. 그러자 지인이 “그게 좋은 거야?”라고 물었다. 어이가 없어 나도 그녀도 깔깔대며 웃었다.
숲속에 사는 것 같은 풍부한 녹지, 쾌적하고 조용한 주거환경, 역세권, 도보권의 백화점, 도보권의 관공서들, 도보권의 은행들, 도보권의 학교들, 도보권의 상권들... 우리 동네 장점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장점을 두고 하필 마트만 잔뜩 떠올랐다. 장보고 음식 해 먹는 걸 즐기는 입장으로서 대형마트, 중소형 마트, 식자재마트, 소규모 부식가게, 재래시장을 쉽고 다양하게 둘러볼 수 있어 아직도 우리 동네 장점으로 ‘장 보기 좋은 환경’을 생각하고 있다.
개띠개와 산책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식자재마트를 들르곤 했다.
이 식자재 마트는 지인이 추천해 준 곳이었다. 간단하게 장을 볼 때는 작은 식자재 마트에서 장을 보았더니 빠르게 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대형마트보다 야채나 고기 등의 식자재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도 장점이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지 않는 중소기업 생필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이 식자재마트는 장을 보겠다고 작정하고 들르기보단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듯 개띠개와 산책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러 구경하다 그날그날 할인하는 과일이나 식재료를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이를테면 느타리버섯 한 팩에 구백 원, 득템하는 맛으로 들르곤 했다.
눈치가 빤한, 타고난 천재 우리 개띠개는 마트 앞을 지날 때면 힐끔 나를 보며 해맑게 묻는다.
“들를 거야?”
강아지의 관찰력은 대단하다. 개띠개는 하루 종일 나를 관찰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내 루틴을 파악한다.
아침 산책할 때 들르는 벤치가 있다. 산책하다 종종 벤치에 앉아 시원한 아침 공기를 느끼곤 한다. 벤치에 앉아있으면 자동차 도로에 자동차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빠르게 지나가는데 배속 촬영을 구경하는 것처럼 재밌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내가 멍하니 자동차들이 슉,슉, 지나가는 것을 요리조리 보고 있으면 어느새 개띠개도 바닥에 앉는다. 물론 개띠개는 자동차의 움직임 같은 건 관심 없다. 개띠개가 관심 있는 것은 간식과 산책, 그리고 아마도 우리뿐이다. 어느 날부터 벤치가 가까이 오면 강아지가 나를 힐끔 보며 묻는다.
“앉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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