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보잘것없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내 안경 끝에 자리 잡은 나의 앞머리가 빳빳하게 얼어 버릴 정도로 추운 2학년의 어느 늦가을날, 건축 스튜디오를 새벽 5시 반쯤 나와, 평소였음 바로 국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시간에 마법처럼 학교 앞 공원을 가로지르면서 눈부시게 빛나던 핑크빛의 주황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 하나 없던 그 고요함을 뚫고 추위에 허덕이는 내차의 엔진과 멀찍이 들려오는 새들의 아침인사만이 미세하게 들리던 순간이었다. 항상 남 보여주기도 민망할 정도의 모델만 찍어오던 나의 DSLR이 당황한 듯 어색하게 내손과 조우했고 나는 그 순간을 담아냈다.
Canon 70D | 실제론 이것보다 훨~씬 예뻤다
본격적으로 이 플랫폼에 글을 끄적이기 전, 언제부터 나의 내면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때였을 것이다. 명확한 매력의 정의 없이 이쪽 건축업계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했을 때, 어찌 보면 후를 도모하듯이 이유를 찾아내려던 나의 노력의 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시절 건축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남들이 일몰을 보며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일출을 보며 하교하던 시절부터 나의 '내면 찾기'는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만한 고통을 선택한 나는 누구였으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좀 더 깊고, 진중하게 생각하던 것의 시작이었다.
추운 늦가을의 바람에 이끌려 공원 언덕 위에서 마주친 이 풍경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의 대화를 이끌어준 고마운 존재였고 그때 가슴을 두르고 있던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기억하기에 충분했던 강렬한 색감을 선사해 주었다. 이 맘때쯤부터였을까. 나의 헤진 스케치북 페이지에는 그림 스케치보다는 여러 가지, 어쩌면 굉장히 개인적인, '감정의 정의'들이 적혀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그러한 '감정의 정의'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 새벽에 일출이 이어줬던 이음새처럼, 그 순간들을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기 시작했다.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 플랫폼 앞에 쓰인 시들이 이따금 마음이 울리듯,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식혀줄 그런 존재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