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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한량 Nov 03. 2021

01. 불행이 익숙지 않은 나 자신에게

내 마음속 지하실 이야기

Minolta SRT101  |  Portra 160



    삶을 살면서 항상 되새기는 게 있다면, 행복할 때 불행해야 하고, 불행할 때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넘치는 행복과 찾아온 방심과 나태함은 후에 찾아올 작은 불행이란 불씨에 더 쉽게 휘말려들 것이고, 불행이라는 큰 바닷속에서 끝까지 헤엄치다 찾아온, 행복이란 구조선은 그 어느 것보다 따뜻하고 달콤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슬픔(불행)이란 행복을 더욱더 빛나게 하는 존재임에 동시에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욕구의 원천이자 동기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불행할 것이라는 것이고, 또한 불행하다는 것은 곧 행복이 찾아온다는 뜻이기에 둘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관계를 우리는 어쩌면 각자 다른 존재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항상 생각했었다.


    이 두 조건의 상관관계는 나에게 있어 항상 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하는 소중한 기록물이고 내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오는데 필요했던 때 묻은 계단이었다. 나는 늘 인생에서 이런 이행이 벌어질 때마다 내 손가락 한마디에 들어오는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 순간순간마다 내가 찍고 남기고 싶었던 것은 그날의 아름다운 배경뿐만 아니라, 항상 내 편이 돼주고 같이 계단을 올라주던 나 자신의 감정이다.


    각자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사진 속의 미세한 구조 변화, 빛의 굵기, 색의 온도 등은 나의 과거, 그 순간의 감정 변화를 대변하고, 사진 하나하나에서 건네 져 오는 그날 공기의 온도, 나의 심장박동 속도, 귀속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는 매번 한 편의 영화처럼 다가온다.


    각각의 미장센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감정선과 떨림은 치명적으로 내 가슴을 아려오고 조여올 때도 있지만, 쓰디쓴 아메리카노처럼 중독으로 다가온다. 커피의 쓴맛 뒤에 찾아오는 동공의 팽창처럼, 아픔 뒤 찾아올 어떤 미래의 행복은 나의 감정을 더 극한으로 몰아넣고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


    이 행동의 여파가 나를 더욱더 암흑으로 밀어 넣을지, 아니면 감정의 스팩트럼을 넓히는 것일지 알기에는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리고 중요한 건, 나의 의지라는 것이고,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이었다는 것이고, 그래 왔었다는 것이다. 나의 인생은 단순하고 싶었지만 단순하지 않았고, 이런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잡고 있는 밧줄을 놓치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연속이었다. 끊어지지 않을 거란 맹신과 함께.


Minolta SRT 101  |  Portra 160


    다행이라고 할만한 것은 불행한 감정들이 더욱더 가슴을 후벼 파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언젠간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런 감정의 절정들이 마음을 감쌀 때마다 조금 더 소중히 다루고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여유와 너그러움을 갖는 것은 생을 살면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스치고 지나간 많은 기억과 경험들의 복합체이며, 나를 존재케 하는 나만의 증표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곧 기억 너머로 사라져 가슴 한구석에서 숨어서 안 나올 가능성이 큰 이것들을 있을 때 감싸주고 들여다보고 대화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차피 지나갈 불행이라면, 있을 때라도 마음껏 사랑하는 자세. 결국엔 이것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 바보 같은 맹신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계속 기록할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 사과하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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