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대비(contrast)
Canon P | Tri-X 400
건축학을 전공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모델링을 하기 마련인데, 학기가 끝나면 불태우거나 망치로 깨부수는 문화는 건축학도로써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기에 사진을 찍어 작품사진을 남겨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중요한 절차였다. 나의 성적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이 사진들은 보정과정을 거치면서 탈 바꿈 하게 되는데, 보정기능 중 가장 중요하게 썼던 것은 대비(contrast) 기능이었다. 기존에 존재하는 사진 속 밝은 부분은 더 밝고, 어두운 부분을 더 어둡게 만드는 작업을 대비(contrast)라고 정의하는데, 이 수치를 높이게 되면 사진 속 오브젝트의 윤곽을 진하게 해 형체를 더 뚜렷하게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어떠한 '형체'를 바라볼 때 나의 눈의 먼저 들어오는 것은 빛의 반사가 이루어지는 밝은 부분이지만, 그 형체의 '뚜렷함'과 '윤곽'을 만드는 것은 그 형체가 가지고 있는 명암일 것이다. 만약 인생에 있어서 빛이 행복이고 어둠이 불행이라면, 나의 생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다. 즉 '나' 자신을 더욱더 밝게 빛나게 하기 위한 방법은 내 인생의 대비(contrast)를 올려 윤곽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있어 어둠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숨기고 싶은 치부였다. 내 마음속 명암을 숨기고 숨기다 보면 내 인생엔 빛만 존재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인생의 '형체'는 점점 초점 안 맞는 사진처럼, 윤곽 없는 그냥 어떤 것에 다르지 않았다. 나의 인생은 남에게 보이는 인생만 있을 뿐, 내가 정의할 수 있는 나의 인생은 그 어디에도 형체가 남아있지 않았다.
나 자신을 그리는 테두리는 점점 뭉개져 갔고, 내 인생의 방향성도 길을 잃고 사방에서 밝게 빛나기만 하는, 윤곽 없는 전등 같은 존재로 변하고 말았다. 건축이란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물을 바라보는 법, 나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나 마음속의 어둠은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고 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결정하고 남들과는 다른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로 변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배웠다. 내 마음속의 어둠을 정의하고 이해할수록 내 인생의 윤곽은 뚜렷해졌고, 그 뒤에 따라오는 행복은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각자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각각 다른 성격의 땔래야 땔 수 없는 행복과 불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의 마주한 불행을 부정한다는 것은 나의 행복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불행을 마주한다는 것은 나의 불행의 이유를 인지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의 가치관은 뚜렷해지고 내 인생에 있어서 행복과 불행은 무엇인지 파악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상처를 없앨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옷을 입어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알고 치료하는 것이다. 상처를 배우고 관찰한다면, 상처를 안 만드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속 어둠과 소통을 하며 기억해 낸다.
각자의 명암은 모여 윤곽을 만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