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적이 있었다.
일상처럼 찾아온 어둑한 안개가 내 정신을 흩트려놓고, 무얼 하든 집중은 되지 않고, 수만 가지 생각이 내 잠을 방해하던 그 시절, 내 머리 위에 항상 모습을 바꾸는 하늘(그)이란 캔버스는 흠잡을 곳 없이 아름답던 적이 있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파란색과, 갓 구운 크루아상 모양의 구름들. 그 사이를 지나가는 서로 장난치기 바쁜 새의 무리. 나 혼자 감상하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못해 몽환적인 하늘은 가끔 우리 눈앞에 찾아온다.
"위로해주는 건지, 약 올리는 건지..."
이따금 예고 없이 내 눈을 뒤덮는 저 하늘은 나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은 건지 고민했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는 항상 반복되는 '일상'일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고 갈취하던, 그런 하늘이란 존재는 항상 나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고 믿었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던 감정의 기복 속에서 갖게 된 그 의문점과 생각들은, 결론적으론 나의 무 성숙함에서 비롯된 건방진 생각이자, 너무나도 감정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생기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도 않는 이 넓은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넓은 저 존재가 과연 나를 위해 '소통' 이란 것을 할 거란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그'는 나와 동등한 위치에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존재가 아닌, 단지 존재할 뿐이고, 바뀔 뿐이고, 흘러가는 존재였다. 신화 속에 신들이 하늘과 밀접해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인간들의 겸손함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그의 모습은 마치 우리들의 인생처럼 끊임없이 색감과 온도와, 모습을 바꾸어 간다. 어느 날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함과 동시에, 또 어느 날은 며칠 연속으로 회색빛 구름으로 뒤덮여 피부와, 보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따듯한 햇살을 분리해 놓는다. 아무리 많은 비가 장마철처럼 며칠 연속으로 온 세상을 축축하게 늘어지게 할지라도, 어느 순간 물방울들의 시간은 멈춰 버린 뒤, 각자의 자리를 찾아 반짝이는 보석처럼 맑은 날을 맞이하고, 그 맑디맑던 그의 모습은 경고라도 하듯, 아무런 귀 뜸 없이 가끔씩 두꺼운 먹구름과 함께 또다시 소나기를 내리게 한다. 이렇게 팔방미인 마냥 매일 모습을 바꾸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하늘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가장 직관적으로 느끼게 하는 존재이자 그 자체이다. 낮과 밤부터,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하는 달의 모습, 바람을 타고 지나가다 햇빛을 가리는 저 구름마저 우리에게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우리의 인생인 것처럼, 항상 뒤바뀌는 저 풍경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곧 괜찮아지는 존재이다.
만약 과거의 나 자신과 소통할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을 얽매고 있는 그 고통은
영원하지 않더라.
언젠간 지나가더라.
지나가는 내 머리 위 구름처럼 언젠가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더라.
그리고,
비가 끝나고 난 직후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더라.
거창하게 늘어놨지만,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실수를 반복하기에,
오늘 같은 맑은 날 떠있는 저 구름은 영원할 거라 희망하면서.
"오늘의 당신은 정말 아름답고 설레는군요. 떠나지 말아 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