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하나의 가능한 해법
1930년대, 세계가 실존적 위기에 빠져 있던 시기에 당시의 주요 자본주의 지성들은 일련의 긴장된 회의에 모였다. 전체주의의 확산에 경악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카를 폴라니, 루트비히 폰 미제스 같은 경제학자들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두고 격렬히 충돌했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의 자본주의를 모색했다. 이들의 논쟁은 이후 수십 년간 세계를 이끌 사상들을 낳았다. 케인스의 『일반이론』에서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1938년에는 ‘신자유주의’라는 개념까지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거의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했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전체주의가 패배한 것은, 인류가 겪은 가장 거대한 전쟁 이후의 일이었다. 오늘날 자본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적 혼란은 불편할 정도로 당시와 닮아 있다. 자유시장에 대한 비판은 더 이상 사회주의자나 진보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본가들 스스로가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시대 못지않게 지적 논쟁은 치열하지만, 역시 그때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하버드대 역사학자 스벤 베케르트는 최근 단순히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제목의 1,300쪽에 달하는 야심찬 대작을 출간했다. 이 책은 자본주의가 ‘고쳐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일련의 문제 제기 흐름 속 최신작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의 『민주적 자본주의의 위기』, 록펠러 인터내셔널 회장이자 투자은행가인 루치르 샤르마의 『자본주의는 무엇이 잘못됐는가』가 그 예다.
이들 모두 현재의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사회주의자들처럼 체제 자체가 본질적으로 결함이라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의 병을 진단한 수십 권의 책을 훑어보면, 몇 가지 공통된 교훈과 함께 자본주의를 구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들을 위한 대담하면서도 어려운 행동 계획이 떠오른다.
자유시장은 국가가 규칙을 만들고 집행해줄 때만 작동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 없는 복싱 경기처럼 잔혹함과 혼돈으로 빠져든다. 국가는 시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시장 역시 국가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민주주의 역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두 체제 모두 불완전하지만, 대체하기는 극히 어렵다.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를 두고 “지금까지 시도된 모든 다른 제도를 제외하면 최악의 제도”라고 말했다. 같은 논리로, 자유시장은 자본을 배분하는 형편없는 방식이지만, 지금까지 시도된 어떤 방식보다 낫다.
울프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옹호하는 도덕적 논리를 제시한다. 두 체제는 서로를 지탱한다는 것이다.
두 체제 모두 인간의 행위 주체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다. 개인은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권리가 있고, 공적 결정에 목소리를 낼 권리도 있다. 최선의 경우, 이 둘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구성하는 상호 보완적 요소다.
또한 두 체제는 내부적 견제 장치를 갖고 있으며, 서로를 견제한다. 시장에서는 탐욕과 공포가, 국가는 유권자에 의해 축출될 위험이 작동한다. 시장은 정치인이 단기적 필요에 매몰돼 장기적 문제를 쌓아두는 것을 막고, 선출된 지도자는 유권자가 용납하지 못하는 자본의 과잉을 제어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곧 사회 전체의 진실의 순간이다. 오늘날 서구 전반에서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이민 반대로 전환되는 포퓰리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사회적·민주적 붕괴는 상당 부분 국가와 시장이라는 근본적 관계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자본주의는 적응 능력이 강하다.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지만, 새로운 형태로 변모해왔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에도 자본주의는 모습을 바꿨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처와 레이건이 주도한 신자유주의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 붕괴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1930년대의 반복 가능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당시 자본주의는 사회 붕괴, 전체주의적 참상, 세계대전을 거친 뒤에야 재탄생했다. 빅토르 슈베츠의 『폭풍 전의 황혼』은 그 파국의 시기를 분석하며, 반복을 피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위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세계는 자본주의가 아닌 무언가로 이탈할 위험에 처해 있다.
아나톨 칼레츠키는 『자본주의 4.0』에서 자본주의를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 따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자본주의 1.0은 19세기 영국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한 자유방임 모델이다.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고, 은행 위기와 극심한 불평등을 감내했다. 1929년 대공황으로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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