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종종 소식을 주고받던 중 작년 12월 수능 체력장을 하던 친구 딸이 낙상하는 사고가 일어났다는 긴급한 소식이 전해졌다. 딸은 목에 큰 부상을 입어 헬기로 치료가 가능한 다른 지역 병원으로 급히 이동해야 했다. 그 후 바누아투에서 5년을 채워가던 친구도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이제는 바누아투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딸이 크게 다치었던 순간의 스트레스가 아마도 친구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던 듯했다.
한국에 귀국했으나 삶의 터전을 미련 없이 정리하고 떠났던 친구는 당장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을 맞이했다. 한국에 귀국해 건강을 회복하는 친구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짧지 않은 5년 동안 문화도, 음식도, 언어도 다른 타국살이를 했다. 학교를 세우고, 교육사업을 위해 친구는 다양한 선교 활동을 했다. 그러나 5년을 채우는 타이밍에 딸의 낙상사고와 자신의 건강이 무너지는 아픔을 맞이해야 했다.
딸아이의 가슴 아픈 부상과 자신의 건강마저 추스르기 어려운 것은 분명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었다. 한국에서 다시 거주할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친구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안 좋은 일들이 계속되었다.
귀국 후 친구는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 갔다. 목에 상처를 입었던 친구 딸도 빠르게 치료가 되어 대학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한 친구 아들은 올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진로를 준비하고 있다. 바누아투에서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마음 아픈 사연이 많았던 친구를 보며 내 마음에도 안타까운 슬픔이 차올랐다.
올해 여름 8월 어느 날,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로 안부를 나누다 깜짝 놀랐다.
딸의 안부를 묻는 나에게 딸이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의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8월 중순에 딸은 스위스로 출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들은 8월 응시한 검정고시에서 한 문제를 틀려 아쉽게 만점을 놓쳤다는 소식도 보너스로 안겨 주었다. 작년부터 안 좋은 일이 친구를 계속 찾아온 것이 사실이지만, 안 좋은 일에도 분명 좋은 일은 함께 머물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마음에게 말걸기》의 저자 대니얼 고틀립에게도 30대 교통사고와 전신마비라는 폭탄을 맞았다. 고틀립은 자신이 당한 사고처럼 결정적인 트라우마에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다고 평가한다. 1년 반 재활 후에도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여전히 아프고 울화가 솟구치며 우울할 때가 있지만 전신마비인 것에도 좋은 일이 있다고 유머러스하게 소개해 준다.
온몸이 마비되어 꼼짝을 못하는 그에게 좋은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첫째,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최상의 주차공간을 언제든 누릴 수 있다는 것
둘째, 신발을 사는 일 따위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
셋째,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한밤중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뜻밖에 대니얼 고틀립은 전신마비라는 자신의 장애가 지금의 삶을 선물해 주었다고 고백한다. 장애로 인해 불편하고 힘들고 슬픈 것도 사실이나 전신마비가 없이는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없었노라 토로한다. 교통사고와 전신마비는 대니얼 고틀립에게 분명 최고로 안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안 좋은 일속에 좋은 일은 여전히 함께 있었고, 가장 안 좋은 일을 통해 대니얼 고틀립의 인생이 고틀립답게 완성되었다. 대니얼 고틀립은 안 좋은 일을 통해 지금의 자신이 된 것을 무엇보다 감사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늘 햇살이 가득한 맑은 하늘이기를 우리는 기대하며 살아간다. 맑은 날씨가 좋은 일이고, 형통이라 정의한다. 각자의 삶에도, 자녀들의 삶에도 궂은 날씨는 절대 펼쳐지지 않기를 소원하며 살아간다. 인생에는 안 좋은 일이 좋은 일보다 더 많은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나에게 가장 안 좋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11년 만에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 갑상샘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체력이 반 토막 났던 일이었다. 주사를 무서워해서, 잔병치레 없이 건강해서 누구보다 밤샘도 잘 해내던 나였다. 대학원 졸업 후 힘찬 달음질을 준비하던 타이밍이었기에 실망이 더욱 컸다. 수술 후 오후 4시가 되면 방전이 되어버리는 나의 저질 체력에 적응하기가 너무 낯설고 힘겨웠다.
수술과 방사선 격리 치료를 하는 동안 초등생이었던 아들과 유치원생이었던 딸과도 한동안 이별을 해야 했다. 수술 후 체력은 반 토막이 되었다. 아이들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요양하느라 백수가 되었다. 내가 고장이 난 시계처럼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져 우울함이 나를 온종일 덮었다. 수술 후에도 중증 환자로 취급되는 것 역시 최악의 안 좋은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최악의 안 좋은 일 속에 가장 좋은 일들이 함께 있었다. 체력은 반 토막이 되었으나 나의 존재만으로 충분한 나의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했다. 나를 눈물겹게 사랑하는 가족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결핍이라는 내면의 암반이 그동안 너무 과한 성실과 최선으로 발휘되어 쉴 새 없이 채찍질하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공적이 아닌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이미 충분한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있음에 눈뜨게 되었다. 내 인생 최악의 안 좋은 일 속에 가장 좋은 순간이 함께 있었다.
인생은 새옹지마처럼 지금의 안 좋은 일이 나중의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지금 좋은 일이 나중에 안 좋은 일이 되기도 한다. 결론은 항상 안 좋은 일에도 좋은 일은 함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