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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l 11. 2024

위대한 개츠비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수저 계급론을 중심으로

영화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 숲>에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를 이해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었기 때문에, 이 구절을 읽었을 때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대학교에 다닐 때 ‘현대 미국 소설’이라는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강의에서 텍스트로 다룬 소설이 <위대한 개츠비>였다. 교수님이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절반 정도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나머지 반은 개츠비가 범죄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조차도 그가 위대한 이유가 평생 한 여자만 사랑했기 때문이라든가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로맨티스트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피상적인 이유만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 책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그렇게만 보는 사람은 드물어졌을지 모르지만(과연?) 당시에는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이유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위대한 개츠비>의 소설 속 화자는 개츠비가 아니라 개츠비의 이웃에 살고 있는 닉이라는 남자다. ‘현대 미국 소설’ 강의에서 닉이라는 화자의 성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화자의 성격이 소설의 인물을 묘사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닉은 거리를 두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소설의 첫 문장 자체가 이런 구절로 시작된다.


내가 어리고 상처받기 쉬웠던 시절, 아버지가 내게 조언을 해주었고 나는 이후 줄곧 그 조언을 마음속에 되새겨 오고 있다. “언제든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면,” 그분은 말했다. “세상 사람들 전부가 네가 누렸던 것을 누리며 살아온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라.”


닉은 아버지의 말이 그 말 자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에 대해서도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최대한 판단을 유보하려는 신중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닉은 자신의 가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의 사무실에 걸려 있던 할아버지의 초상화에 대해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얼굴’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특징을 물려받아서인지 닉 자신도 개츠비의 파티에 드나드는 다른 인간들처럼 생각 없이 개츠비를 숭배하거나 반대로 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하지 않는다. 닉은 개츠비에 대해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고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이다.


개츠비는 젊고 잘생겼고 어마어마하게 부유하다. 또한 그 매너조차 흠잡을 데가 없다. 소설 전반에 걸쳐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고 예의 바른 그의 태도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개츠비는 일주일에 몇 번씩 호화찬란한 파티를 연다. 음식과 술과 과일을 배달하느라 트럭이 개츠비의 집 앞을 끊임없이 드나든다. 잘나가는 사람들, 상류층 사람들,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워너비들이 그의 집과 정원과 요트가 묶여 있는 항만으로 벌떼처럼 모여든다. 


그가 그렇게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은 금주법이 시행되는 동안 마이어 울프샤임이라는 브로커와 결탁하여 주류를 유통하는 불법적인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닉은 그런 개츠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오직 이 책의 이름을 딴 개츠비만이, 내가 변함없이 경멸하는 모든 것들을 대변하는 개츠비만이 나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닉은 개츠비가 ‘내가 변함없이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변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즉, 원래대로라면 닉은 개츠비와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을 경멸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개츠비가 하필 이곳 웨스트에그에 집을 산 이유와 이곳에서 파티를 벌이는 진짜 이유를 조던 베이커를 통해 들은 뒤, 닉은 그 괴짜 같은 사연에 얼마쯤 기가 질려버린 게 분명하다. 그래서 엄청난 부유함이나 인생을 건 맹목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인물인 조던 베이커가 평범하다는 그 이유만으로 불현듯 예뻐 보였고, 그녀와 팔짱을 끼고 걸어 나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우리가 작은 육교 아래로 들어갔을 때 나는 팔로 조던의 금빛 어깨를 감싸 안아 그녀를 내게로 좀 더 당기며 오늘 나와 저녁을 같이 먹자고 말했다. 
돌연 나는 지금 데이지나 개츠비를 더이상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세상을 불신으로 대하면서도 내가 그려놓은 원형의 팔 안에서 명랑하게 등을 기대이고 있는 이 매끈한 몸매의 소유자, 하지만 세상을 보는 시야는 지극히 좁은 이 여인에게 전념하고 있었다.


닉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개츠비의 그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두 사람의 뿌리만 놓고 보자면 닉이 개츠비보다 훨씬 앞서 있다. 닉은 명망 있고 부유한 가문 출신이다. 미 건국 초기부터 대대손손 기득권이었던 동부 출신은 아니지만, 상당히 유서 깊은 중서부 가문 출신이다. 거기에다 예일대를 나왔고 군에서 장교로 복무했으며 화이트칼라 사무직에 취직해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중이다. 단지 개츠비처럼 엄청난 부호가 아닐 뿐이다. 그런데 평상시 때라면 그가 경멸해 마지않았을 특징을 가지고 있는 개츠비를, 닉은 감히 위대하다고 표현한다.


오직 이 책의 이름을 딴 개츠비만이, 내가 변함없이 경멸하는 모든 것들을 대변하는 개츠비만이 나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만약 성격이라는 것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일관성 있는 어떤 태도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눈부신 어떤 것, 살면서 가질 수 있는 희망에 대한 고도의 감수성 같은 것이 있었다. 마치 수만 마일 떨어진 곳의 지진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한 기계와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의 감수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미명하에 고귀함을 부여받은 예술가들의 무기력한 감수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다른 누구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절대 다시 보지 못할, 희망을 대하는 비범한 재능이자 낭만성이었다. 누구에게서도 결코 다시 볼 수 없다. 결국 개츠비가 옳았다. 갈 곳을 잃고 설익은 채 사라져 버린 나의 슬픔, 잠시나마 인간에게 품었던 나의 경외심을 순간이나마 무력하게 만든 것은 개츠비를 제물로 삼은 채 개츠비의 꿈에 들러붙어 떠다녔던 역겨운 먼지 덩어리들이었다.


위의 묘사에 의하면 닉은 개츠비에게서 일종의 위대함을 본 것인데 닉은 왜 범법자에게서 위대함을 느낀 것일까.


개츠비와 닉은 미국 동부의 롱아일랜드에 있는 다소 독특한 이름을 가진 지역에 살고 있다. 두 사람이 사는 곳은 웨스트 에그(West Egg)라는 곳인데 그곳에서 좁은 해협을 건너면 이스트 에그(East Egg)라는, 쌍둥이처럼 비슷한 지형을 가진 동네가 나온다. 그곳은 ‘윤곽이 동일하고 오직 명목상 만으로 분리된 거대한 한 쌍의 알’과 같은 지형이었다. 닉에 의하면 이스트 에그는 웨스트 에그보다 좀 더 세련된 곳이다. 이스트 에그에 사는 사람들이 대대손손 부자였다면 웨스트 에그에 사는 사람들은 이스트 에그 사람들을 닮고 싶어 하는 신흥 부자들이랄까. 웨스트 에그와 이스트 에그의 비유는 정확히 미국 동부와 서부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처음 백인들이 미국에 정착한 이래, 사람들은 동부에 모여 살았고 서부는 한참 뒤에 개척된 곳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진정한 기득권층과 유서 깊은 가문들은 처음부터 동부에 밀집되어 있었다. 서부가 아무리 부유해져도 서부를 이루는 구성원들은 시작부터 동부에서 밀려난 사람들, 후발주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스트 에그에는 닉의 육촌인 데이지와 데이지의 남편 톰이 살고 있다. 이 두 사람 역시 개츠비 못지않게 부유한 사람들이다. 톰 역시 유서 깊은 가문 출신으로 닉과 함께 예일대를 다닌 동문이기도 하다. 예일대에서 톰은 최고의 럭비 선수였으며 엄청난 근육질인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즉, 개츠비가 개천 용이라면 톰, 닉, 데이지, 이 세 사람은 금수저다.


닉은 웨스트 에그로 이사 온 기념으로 이스트 에그에 사는 육촌 데이지를 만나러 간다. 데이지를 만나고 온 날 밤, 닉은 우연히 개츠비가 어두운 바다를 향해 기묘한 방식으로 팔을 뻗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무심결에 나는 바다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아주 멀리 떨어진, 부두의 끝인 듯한 곳에 작은 녹색 불빛 하나를 제외하고는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녹색 불빛은 데이지가 살고 있는 이스트웨그 쪽에서 비치는 불빛이었다. 개츠비는 이스트 웨그를 향해 간절히 손을 뻗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과 결혼하기 전에 잠시 그녀와 사귄 적이 있었다. 당시 무일푼이나 마찬가지였던 개츠비는 자신이 가난뱅이라는 사실을 데이지에게 밝힐 용기가 없었다. 데이지에게 정식으로 청혼하기 위해 개츠비는 전쟁에 참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을 세웠다. 그를 기다리다 지쳐버린 데이지는 그 동안 톰과 결혼해버렸다. 데이지의 결혼생활은 매우 불행했다. 톰이 자주 바람을 피웠고 지금은 머틀이라는, 그가 단골로 들르는 정비소 사장의 아내를 정부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개츠비가 데이지의 해협 바로 건너편으로 이사를 왔다. 혹시나 그녀가 파티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언젠가 그를 찾아와주지는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고.


도대체 데이지가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개츠비는 이미 유부녀가 되어버린 여자를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닉은 데이지의 목소리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이 잊기 어렵게 만드는 자극적인 면이 있었다. 노래하고 싶은 충동, “들어봐요” 하는 속삭임, 방금 즐겁고 신나는 일을 했으니 또 즐겁고 신나는 일이 다음번에도 맴돌 거라고 하는 약속이 있었다.


이따금 그녀와 베이커 양이 동시에 말했는데, 드러나지 않게 결코 수다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정감 어린 농담으로, 그것은 그들의 흰 드레스나 어떤 욕망도 개입되지 않은 눈빛처럼 쿨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고, 톰과 나를 받아들였으며, 단지 접대하거나 접대 받는 입장에서의 상냥하고 예의 바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곧 저녁식사는 끝날 것이고, 또한 잠시 후면 밤이 지나고, 그들은 무심하게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줄곧 기대와 어긋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순전히 그 순간 자체의 초조한 두려움으로, 저녁시간이 단계 단계마다 그 끝을 향해 서두르는 서부와는 확연히 달랐다.


소설 전반에 걸쳐 데이지가 신경증에 걸려 있는 듯한 묘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이 달콤하고 즐거운 목소리는 정확히 우울증과 무기력증의 대척점에 있는 듯하다. 우울증 환자가 삶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면 데이지에게 세상은 재미난 곳, 만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줄 사람, 일들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거나 성과를 기대해볼 만한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가지게 된다. 놀랍게도 데이지의 이런 특징은 개츠비의 성격적인 특징과는 정반대되는 것들이다. 여기 개츠비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들이 있다. 어느 날 개츠비가 닉을 찾아와 두 사람은 함께 자동차를 타고 뉴욕으로 가게 된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개츠비는) 결코 가만있는 법이 없었다. 항상 발로 어딘가를 차거나 성마르게 손을 여닫았다. 


이 초조함은 개츠비의 내적인 심약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개츠비의 파티에 참여한 손님 중 하나는 개츠비에 대한 일화 하나를 들려준다. 


“여기 마지막으로 왔을 때 내 가운이 의자에 걸려 찢어졌고, 그 사람이 내 이름과 주소를 물었어요 – 일주일이 안 돼서 크로이리의 의상실로부터 새 이브닝 가운이 들어 있는 소포 하나를 받았어요.”


그 가운은 265달러나 하는 것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손님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평을 덧붙인다.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자는 뭔가 수상한 게 있는 거야.” 다른 여자가 간절히 말했다. “그는 누구하고도 어떤 문제도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는 거지.”


닉 역시 개츠비와 대화를 나눈 뒤 다음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는 이해한다는 – 이해한다는 그 이상을 담아 웃어 보였다. 그것은 인생에서 네댓 번 접할 수 있을까 말까 할 영원히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의 보기 드문 미소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한동안 외부 세계 전체를 향해 있다가 – 또는 향해 있는 듯하다가 – 그런 다음 ‘당신 편’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편견으로 상대에게 집중하는 미소였다. 그것은 단지 당신이 이해받고 싶어하는 만큼만 당신을 이해했고, 당신이 스스로를 믿고 싶어 하는 만큼 당신을 믿었으며, 다시 당신이 최선을 다해 상대에게 전달하기를 희망했던, 당신의 그 인상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것을 당신에게 보증해 주는 그런 미소였다. 


(...)


나는 그가 자신을 소개하기 얼마 전에 주의해서 그의 말을 고르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또한 개츠비의 표현은 친밀했지만 ‘그 친밀한 표현도 안심시키려 내 어깨를 쓸어내리는 그 손길 이상 친밀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위에 묘사된 특징에서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는 사실은 개츠비가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소심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는 지나치게 남에게 잘 보이려 한다. 아무리 성공했어도 개츠비의 내면은 가련한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매사에 쉽게 놀라고, 자신감이 없고, 항상 주눅 들어 있다. 앞서 살펴본 데이지의 경우, 원래부터 부유했던 상류층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닉은 데이지가 속한 동부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저녁시간이 단계 단계마다 그 끝을 향해 서두르는 서부와는 확연히 달랐다’고 적고 있다. 동부에서는 인생이 편안하고 충만하므로 조바심을 낼 이유가 적어진다. 설령 갑작스럽게 부침이 생기더라도 그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제 곧 저녁식사는 끝날 것이고, 또한 잠시 후면 밤이 지나고, 그들은 무심하게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그 부침이 사라지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듯한, 생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비롯하여) 남의 사랑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자명해 보인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개츠비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감 결여가 그를 자꾸 지나치게 예의 바른 사람으로 만든다. 이 예의 바른 태도는 그가 상류층이 되어 거만하게 행동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뒤에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내적으로는 그는 아직 겁먹은 채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는 이제 갓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그의 내면은 아직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만성적인 초조함과 불안으로부터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심리적 위축과 공포야말로 그를 역사의 승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끝끝내 파멸로 이끌고 마는 굴레가 되고 만다. 우리는 성공의 관건이 그 무엇보다 기세등등함과 강한 멘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 뻔뻔하고 더 이기적이고 더 자기중심적이어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그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후발주자 –흙수저 출신 개천 용- 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대대로 부자였던 사람들, 예컨대 데이지나 톰 같은 사람들이 누리는 마음의 평화와 자신감을 갖추기가 몇 배는 힘들게 마련이다. 이 내적인 심약함은 그가 마침내 선발 주자, 모두가 탐내던 그 여자, 그 자리, 그 계급, 그 초록 불빛에 깃발을 꽂지 않는 이상 절대로 충족되기 힘든 그 무엇과도 같다.


개츠비가 웨스트 에그로 이사온 뒤, 데이지와 개츠비는 이따금 만나서 옛 추억을 곱씹는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톰을 떠나 자기에게 오라고 하고 데이지는 마침내 결심을 굳힌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톰은 떠도는 풍문으로 개츠비가 뭔가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자기 아내와 개츠비가 연인 사이임을 알게 된 톰은 데이지와 닉, 조던 베이커 앞에서 개츠비의 치부를 까발리기 시작한다. 개츠비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지만 데이지는 ‘어떤 말에도 그녀는 점점 더 그녀 자신 안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개츠비는 


포기한 채, 오후가 흘러가는 동안 죽어버린 꿈과 계속해서 싸웠다. 이젠 더 이상 명백하지 않은 것을 만지려고 애쓰면서, 불행하게 분투하면서, 절망하지 않고, 그 방을 가로질러 잃어버린 그 목소리를 향해 갔다.


데이지는 개츠비의 현재 상황이 불안정함을 깨닫고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리듯 남편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이런 절망적인 파경의 과정 끝에 일행은 닉, 조던, 톰 대 개츠비, 데이지로 나뉘어서 롱아일랜드로 돌아온다. 톰은 데이지가 개츠비와 이어질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 일부러 자신 있게 두 사람더러 자신의 노란 스포츠카에 타라고 배짱을 부린 것이다. 톰의 이런 발언을 들은 데이지는 갑자기 남편에게서 내쳐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기까지 한다. 그 무렵 아내 머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정비소 주인 윌슨은 아내를 위층에 감금해두고 정비소를 팔고 다른 지역으로 옮길 계획을 세운다. 불행히도 윌슨은 머틀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누구하고 바람을 피웠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정보는 노란색 스포츠카를 탄 남자가 불륜 상대라는 게 전부다. 개츠비/데이지가 톰의 노란색 스포츠카를 타고 윌슨의 가게 앞을 지나갈 때, 머틀은 톰이 온 줄 알고 위층에서 뛰어나왔다. 노란색 스포츠카는 그 자리에서 머틀을 치어버리고 뺑소니를 쳤다. 머틀은 즉사했다. 윌슨은 정신이 나가 버렸다.


닉이 혼자 개츠비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가 짐작했던 대로, 개츠비는 차를 몬 사람이 데이지였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개츠비는 차를 돌려 되돌아가려 했지만 데이지는 겁에 질린 나머지 무작정 도망치고 말았다. 붙잡히게 되더라도 개츠비는 데이지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오늘 일로 톰이 데이지를 힘들게 할까 봐 데이지의 집 쪽을 바라보며 밤새 보초를 서기까지 한다. 이날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개츠비는 처음으로 닉에게 자신에 대한 진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개츠비는 장교들과 어울려 다닐 때 데이지를 알게 되었다.


이전에도 그처럼 아름다운 집에 가본 적이 없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숨 막힐 듯 강렬한 분위기는, 거기 데이지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집은 그에게 있어 부대 안의 막사처럼 그녀에게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그곳에는 그에 관한 농익은 신비가 있었다. 이층 침실은 다른 층의 침실보다 더 아름답고 시원했고, 그곳의 복도에서는 흥겹고 빛나는 활동들이 벌어지고 잇었다. 그것은 라벤더 향기 속에 이미 놓여 있던 진부한 것이 아니라 빛나는 최신형 자동차의 신선하고 생생하고 향기로운 로맨스였다. 또한 그것은 시들지 않는 꽃들의 춤이 있을 거라는 걸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이 이미 데이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그의 눈에 비친 그녀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그는 그 집 곳곳에서 그것들의 존재를 느꼈고, 여전히 두근거리는 감정의 그림자와 메아리가 공기 중에 퍼져 있음을 느꼈다.


이 묘사를 보면 개츠비가 진정 사랑한 것이 데이지인지 그녀의 부유함과 그로 인한 자유와 행복함인지 아리송해진다. 흙수저인 개츠비가 결코 붙잡을 수 없었던 초록 불빛,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결코 가닿을 수 없었던 이스트 에그의 초록 불빛. 이 불빛처럼 그와 그녀 사이에는 아무리 미친 듯이 노력해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계급 차이가 존재한다.


닉은 개츠비와 좀 더 함께 있어 주고 싶었지만 출근을 해야 했다. 출근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떼던 중 닉은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개츠비에게 소리 친다.


“그들은 형편없는 자들이야.” 나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소리쳤다. “자넨 그 모든 빌어먹을 작자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 훨씬 가치 있네.”
나는 그렇게 말했던 것을 항상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준 유일한 경의였다. 처음에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고 나서 그의 얼굴은 이해한다는 듯한 찬란한 미소로 밝아졌다. 마치 우리가 내내 그 사실을 황홀하게 공모라도 해왔던 것처럼.


윌슨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노란 자동차를 수소문하여 개츠비의 집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개츠비를 총으로 쏘아죽인 뒤 윌슨 자신도 그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비보를 접한 닉은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하인은 그녀와 톰이 그날 오후 함께 짐을 챙겨 일찌감치 떠났다고 전해준다. 그들은 행선지도 밝히지 않고 언제 돌아온다는 말조차도 없이 그냥 그대로 떠나버렸다. 데이지는 뺑소니를 쳐서 사람을 죽게 만들었고 톰은 불륜을 저질러서 엉뚱한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은 모든 죄를 완벽하게 개츠비에게 덮어씌운 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듯이 그대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런 무책임함 때문에 저들이 언제나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파티에 드나들었건만 개츠비의 장례식에 오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그와 가장 가까운 인물인 울프샤임조차, 신변상의 위험을 이유로 엮이고 싶지 않다면서 개츠비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닉은 한때 개츠비의 집에서 그의 호의로 공짜로 먹고 살았던 클립스프링어라는 작자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클립스프링어는 오늘 피크닉을 가야 하기 때문에(정황상 이미 다른 숙주에게 빌붙은 듯하다) 못 간다고 대답한다. 잠시 뒤, 클립스프링어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닉은 당연히 그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줄 알았다. 놀랍게도 클립스프링어가 전화를 걸어온 이유는 개츠비의 집에 남겨놓고 온 운동화를 보내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결국 개츠비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닉과 몇 명 안 남은 하인들, 그리고 시골 촌구석 어딘가에서 올라온 개츠비의 아버지였다. 개츠비의 아버지는 개츠비의 으리으리한 집과 멋진 물건들을 보면서 자기 아들에 대한 참아주기 힘들 만큼 경박하고 속물적인 자부심을 속속 드러낸다. 닉은 그런 개츠비의 아버지를 보면서 개츠비가 얼마나 고독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개츠비의 아버지는 닉에게 아들이 소년 시절에 메모해둔 흔적이 남아 있는 책 한 권을 보여준다. 그 메모는 다음과 같았다.


기상
오전 6:00
아령 들기와 벽 타기 오전 6:15~6:30
전기학 및 기타 공부 오전 7:15~8:15
일 오전 8:30~4:30
야구와 스포츠 오후 4:30~5:00
웅변 연습, 자세 습득 훈련 오후 5:00~6:00
발명에 필요한 공부 오후 7:00~9:00


결심
섀프터스나 또는 xxx(해독이 불가능함)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궐련과 씹는 담배를 삼갈 것
이틀에 한 번씩 목욕할 것
매주 유익한 책이나 잡지를 한 권씩 읽을 것
매주 5달러 3달러씩 저축할 것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을 것 


개츠비의 죽음 이후 동부에 정이 떨어진 닉은 고향이 있는 중서부로 돌아간다. 겉으로는 여유롭고 매너 있어 보였던 동부 사람들의 본성은 저토록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중서부에서 훗날 닉은 톰과 마주치게 되었다. 닉은 톰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데이지가 머틀을 친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톰에게 털어놓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톰은 아직도 개츠비가 머틀을 치고 달아난 줄 알고 있었다. 닉은 이들이 절대 바뀌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아이에게 고차원적인 도덕관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은 허망함을 느끼면서 닉은 톰과 악수를 나누고는 자리를 뜬다. 이 의사소통의 부재는 어디서 오는가.


이 동부 사람들은 개츠비 같은 부류와는 사고체계가 좀 다르게 돌아간다. 만약 당신이 우물에 살고 있는 개구리라면 잘못 던진 돌멩이 하나에도 맞아죽을 수 있기 때문에 삶의 무게나 책임 같은 것들에 훨씬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개구리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훨씬 더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한 행동의 무게나 책임 같은 것들에 대해 개구리만큼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무엇이 이들을 이런 괴물로 만들었을까. 어쩌면 대대손손 부가 이어지면서, 소위 말하는 고인물로 편하게 살아오면서 각성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에 양심이라는 기관이 퇴화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모든 게 고착되버렸던 것이다. 데이지와 톰이 특별히 악한 인물인가? 어쩌면 이들은 단순히 개츠비와 같은 밑바닥 인생의 사정에 대해 그저 무지한 것 아닌가?


닉은 소설의 마지막을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렇게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소설 속에서 개츠비는 초인적인 의지로(그것이 범죄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초록 불빛을 붙잡아보고자. 그러나 그가 탄 보트는 망망대해 위에서 끝도 없이 과거로 밀쳐진다. 트랙 바깥에 있는 사람이 새롭게 진입해 들어오려는 시도를, 트랙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고깝게 받아들일 것인가. 기존 동부 부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토로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기꺼이 파이를 양보할 이유가 있을까.


닉은 개츠비에 비하면 자신은 정말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개츠비만큼 부유하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고… 하지만, 정말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약자인가. 닉은 개츠비보다 훨씬 유서 깊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굴곡 없는 인생을 살고 있으며 요절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평범하게 오래도록 쭉 잘 산다는 게 사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진리를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 같은 사람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선출직이라 임기가 끝나면 물러나야 하고 심지어 반대 세력에 의해 꼬투리가 잡히면 감옥에 가거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오히려 눈에 드러나지 않는 고위 관료 계층, 기업, 지역 유지들이 내가 보기엔 훨씬 강자다. 이들은 선출직도 아니고 사람들 입에는 덜 회자되면서 최소 정년이 보장되거나 죽을 때까지 권리를 누리며 그 부와 권력이 자손에게까지 대대손손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한순간 불나방 같은 삶을 산 개츠비가 과연 닉보다 강자였을까. 


앞서 트랙 바깥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트랙을 도는 달리기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기 때문이다. 트랙 바깥에 선 사람이 트랙 안쪽에 선 사람과 같은 거리에서 출발한다면 바깥에 선 사람 쪽이 훨씬 많은 거리를 달려야 한다. 트랙 바깥에 있는 사람 –후발주자들- 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게임이다. 트랙 바깥에 있는 사람이 간혹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일시적으로 앞서나가게 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런 다음에는 번아웃이 와서 결국 빠르게 몰락하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트랙 ‘바깥’이라는 건 ‘아웃’사이더라는 뜻이다. 아웃사이더가 일시적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고 해도 선발주자들이라고 가만히 넋 놓고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라는 건 결국 한정되어 있게 마련이다. 즉. 애초부터 개츠비는 몰락하기 쉬운 불안정한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노력으로 그 간극을 메워보고자 한 개츠비의 순진성, 그의 초인적인 성실성, 그 애처로움과 희망이 닉이 앞서 개츠비에 대해 언급한 ‘낭만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그런 낭만성 때문에 개츠비가 위대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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