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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l 25. 2024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이와이 슌지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중에서


1. 릴리 슈슈와 에테르     


2005년 한국에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 개봉되었을 때 이 영화 속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 속에 묘사된 현실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원조교제와 강간, 갈취와 절도, 자살과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역설적이지만 이 영화 혹은 원작 소설은 그 어느 작품보다도 순수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그 순수한 세계를 향한 주인공들의 고통스럽고 처절한 몸부림 그 자체다.     


순수함에 대한 동경은 부분적으로는 ‘릴리 슈슈’라는 이름을 가진 신비로운 여자 뮤지션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릴리 슈슈는 자신의 음악 작업이 에테르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중 한 사람인 하스미는 자신 역시 에테르에 이끌려 릴리 슈슈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하스미는 에테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에테르란 처음에 호이겐스가 빛의 전파를 매개하는 매질로 가정하고, 이후 일반적으로 전자장의 매질이 된 물질을 말하며, 상대성이론에 의해 부정되었다.      


릴리가 말하는 에테르는 물리학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의 숨과 같은 것으로서, 물질계와 정신계를 융합한 시공간이다. 또는 얼얼함, 따끔거림 혹은, 부드러움, 상냥함처럼 릴리가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에너지의 정체. 이것을 에테르라고 부른다.    


답답한 세상에 질려버렸을 때, 사람들은 한숨만 내쉬지만 릴리는 에테르를 노래하고 그것이 릴리의 재능이며 에테르는 나의 고통을 치유한다.      


이 릴리 슈슈라는 가수에게는 독특한 마력이 있는지 그녀에게 매료된 팬이 자살하거나 그녀와 사귄 남자들이 미쳐버리거나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연상시키는 이 여가수에게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음악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라이브 공연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팬의 자살 사건 등에 대해 언급하자 릴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애초에 살아 있다는 것은 슬픈 사건이잖아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존재니까.”     


릴리의 팬이 자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속 등장인물인 츠다도 릴리 슈슈의 음악을 들으면서 수십 미터 높이의 송전탑에서 뛰어내린다. 츠다는 송전탑에 올라가기 전에 연을 날리는데 연은 릴리 슈슈의 노래 ‘Glide’에 맞추어 부드럽게 흔들리며 끝없이 광활하고 투명한 하늘 위로 올라간다. Glide라는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I wanna be (나는 되고 싶네)
I wanna be (나는 되고 싶네)
I wanna be just like a melody (멜로디가 되고 싶네)
just like a simple sound (하모니를 이루는)
like in harmony (단순하고도 단순한 하나의 소리가 되고 싶네)     

I wanna be (나는 되고 싶네)
I wanna be (나는 되고 싶네)
I wanna be just like the sky (하늘이 되고 싶네)
just fly so far away (멀리 날아가)
to another place (다른 곳으로)     
To be away from all (모두로부터 벗어나)

to be one (모든 것의)
of everything (일부가 되기 위하여)     

I wanna be (나는 되고 싶네)
I wanna be (나는 되고 싶네)
I wanna be just like the wind (바람이 되고 싶네)
just flowing in the air (허공을 가로지르며)
through an open space (그저 공기중을 떠다니는)    

I wanna be (나는 되고 싶네)
I wanna be (나는 되고 싶네)
I wanna be just like the sea (바다가 되고 싶네)
just swaying in the water (그저 평화롭게)
so to be at ease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To be away from all (모두로부터 벗어나)
to be one (모든 것의)
of everything (일부가 되기 위해)     


이 영화의 OST에서 릴리 슈슈가 부른 것으로 되어 있는 곡들은 실제로는 ‘사류(サリュ)’라는 여성 뮤지션이 부른 곡들이다. 사류가 부르는 ‘Glide’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애절하고 독특한 목소리와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도 음악 속의 정서에 지나치게 매료되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 영화 속의 츠다도 감동을 받은 나머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송전탑 아래로 몸을 던진다. 더러운 현실과 괴리되는 순수한 세계로 훌쩍 건너가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바로 이런 점이 ‘릴리 홀릭’이라는 릴리 슈슈 팬클럽 게시판에서 한 유저가 말한대로, 릴리 음악의 ‘허무함에서 오는 위태로운’ 측면인지도 모른다. 가사에서처럼 진정한 ‘모든 것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속물적인 이 세상의 ‘모두로부터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릴리 홀릭이라는 팬페이지는 츠다의 같은 반 친구인 하스미가 운영하고 있다. 게시판 유저들은 실명이 아니라 닉네임을 사용하는 익명의 존재들이다. 하스미는 현재 학교에서 호시노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돈을 갈취당하고 얻어맞고 성적인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릴리 슈슈의 음악뿐이다. 게시판에서 하스미의 닉네임은 ‘사티’다. 릴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 사람이 에릭 사티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드뷔시다. 릴리의 앨범 ’호흡‘의 첫 번째 트랙 제목은 ’아라베스크‘인데 ’아라베스크‘는 드뷔시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릴리에 의하면 드뷔시는 ’에테르를 처음으로 음악으로 만든 사람‘이다.     


사티라는 닉네임을 쓰는 하스미는 ’Glide’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감상평을 남긴다.     


릴리를 이야기할 때 ’날다‘라는 이미지는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해. 하늘도 날개도 나오지 않는 그녀의 노래의 모든 곳에 이 이미지가 숨겨져 있어.        
인간에게 날개는 없지만 언제든지 날 수 있어. 에테르가 있는 한 날 수 있어. 릴리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어.     


또 다른 유저는 이렇게 말한다.     


쓸쓸하거나, 괴로울 때.
인간은 넓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
이토록 아름다운 색이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그 속에서 작고 하얀 글라이더를 발견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높은 곳까지 날 수 있는 걸까. 그럴 때 솟아오르는 용기야말로, 진짜 용기. 살아가는 용기. 상처 입는 것에 지지 않는 용기. 릴리는 우리에게 그 용기를 준 거야.     


츠다가 송전탑 위에서 뛰어내린 것도 ‘Glide’를 듣고 더 이상 타협하지 않겠다는 용기가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츠다에게는 죽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호시노 패거리에게 약점이 잡혀 원조교제를 강요당하고 있었고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의 절반을 다시 호시노 패거리에게 갖다 바쳐야만 했다. 죽음을 통해 그녀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상처’라는 릴리의 답변도 삶에 대한 강한 부정을 내포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진정 존재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삶의 거추장스러움을 벗고 전체와 합일을 이룬 상태를 소망한다. 조화로운 멜로디를 이루는 소리 하나, 평화로운 바닷속의 물결 하나, 허공을 떠도는 바람 한 점처럼 지극히 단순한 상태로 해체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영화와는 다르게 원작 소설은 절반가량 게시판 유저들이 올리는 게시물로 채워져 있다. 이 게시판을 통해 유저들의 성향과 이들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엿볼 수 있다. 게시판에서 뜨거운 주제는 릴리 슈슈의 라이브 공연에서 벌어진 일명 ‘시부야 캐틀 살인 사건’이다. 릴리의 라이브 콘서트 도중에 관객이 칼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몇 달이 지난 뒤, 그때 현장에 있었다는 ‘파스칼’이라는 유저가 게시판에 등장한다. 그때부터 게시판 이용자들 사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추리 게임이 벌어진다. 마지막에 가서야 살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데 소설의 후반부와 영화는 바로 이 시부야 캐틀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과정만을 설명하고 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파스칼이 밝혀낸 범인은 게시판 운영자인 사티, 즉 하스미 유이치였다. 유저들 중에 유일하게 합리적이고 신뢰할 만한 존재로 보였던 사티가 범인이었던 것이다. 그가 죽인 사람은 게시판의 또 다른 유저 ‘아오네코’, 호시노 슈스케였다. 온라인으로만 알고 지낸 두 사람이 사실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던 셈이다.   


        

2. 호시노 슈스케     


호시노 슈스케와 그 패거리들은 하스미를 주기적으로 갈취하고 폭행하고 겁박했다. 츠다의 약점을 잡아 원조교제를 시키고 돈을 뜯은 것도 호시노였다. 호시노는 중학교 입학 당시 학년 대표로 답사를 읽을 만큼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다. 하스미의 표현에 따르면 ‘성적도 1위, 성격진단 테스트에서도 1위, 사람 사귀는 것도 뛰어나고 유머도 뛰어나고 나무랄 데 없는 남자, 미스터 퍼펙트’다. 하스미는 호시노와 같이 육상부에서 활동하면서 친구가 된다(영화에서는 육상부 대신 검도부로 바뀌었다). 호시노는 육상부에서도 1등을 차지하는 근성을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완벽함 때문에 호시노는 몇 차례 왕따를 당할 뻔한 위기에 놓이게 된다. 두 사람이 다니는 중학교의 구성원들은 F초등학교 출신이거나, 남F초등학교 출신이거나, K초등학교 출신들이다. 그런데 왜 F초 출신인 호시노만 대표로 답사를 읽느냐, 다른 학교 차별 아니냐 등 별 쓸데없는 일로 꼬투리를 잡힌다. 육상부에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남자 선배가 호시노와 하스미에게 귀찮으니 여자 후배들을 좀 떼내 달라고 부탁하자 호시노는 여학생들에게 선배의 말을 솔직하게 전한다. 문제의 여학생들은 ‘네가 그렇게 잘났냐’, ‘답사 읽었으며 사람 무시해도 되는 거냐’, ‘재수 없다’, ‘게이 아니냐’는 등 모욕적인 말들을 퍼부어댄다. 즉, 너무 잘나도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미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호시노는 초등학교 때도 심한 왕따를 견디다 못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적이 있었다.     


육상부 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호시노와 하스미는 다른 두 명의 친구와 4인조가 되어 거의 날마다 붙어다니게 된다. 여름방학이 되자 네 사람은 오키나와에 있는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섬에서 호시노는 두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기게 된다. 처음 죽을 뻔했던 것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했을 때였다. 물에 빠져 반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아이들은 혼자 여행을 온 도쿄대생과 합류하게 된다. 그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돌기도 하고 해변에서 바다거북을 관찰하기도 한다. 바다거북을 관찰하고 돌아오던 밤, 호시노는 두 번째로 죽을 뻔했다. 갑자기 길고 가는 물고기가 날아와 호시노의 팔에 칼자국 같은 상처를 남겼다. 입이 뾰족하고 칼날 같은 그 물고기는 동갈치라는 물고기였는데 밤에 손전등 같은 불빛을 보면 날아와서 공격하는 습성이 있었다. 섬의 낚시꾼들도 밤에 낚시를 하다가 자주 그 물고기의 공격을 받는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동갈치가 도쿄대생의 심장을 관통해 즉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스미는 그때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물고기가 심장을 관통해서 죽는다.
세상에는 이런 기이한 죽음도 존재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번 일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람의 죽음이었다.     


호시노는 이 일을 계기로 죽음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훗날 ‘릴리피리아’라는 릴리 슈슈 팬클럽 게시판에서(릴리피리아는 릴리 홀릭의 전신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매트릭스     


이 말은 인간이 스스로 사유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가 아니라기 프로그래밍된 유기체에 가깝다는 뜻이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물고기에 심장을 관통당해 죽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호시노는 생의 의미를 잃고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뒤로 하스미는 릴리의 노래 ‘아라베스크’를 들을 때마다 남쪽의 먼 섬에서 보냈던 나날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노래의 가사는 그 뒤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린 호시노의 정신적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언덕 위로
하얀 꽃이 필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어
그 꽃의 이름이
그녀에게 주어졌지  

이른 봄, 항구에 
붉은 배가 들어왔을 때
아이는 고향을 버렸지
낯선 냄새를 따라서
그녀는 이끌리듯 가버렸지  
   
갈매기와 남쪽 바람이
이국의 냄새를 실어 와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고 있어   
 
튀는 물보라를 향해
과거를 던져버리고
그녀는 아주 살짝 눈물 짓네   
  
재생의 의식으로
과거를 토해버리자
낡은 껍데기를 벗어버리자  
  
갈매기와 남쪽 바람이
이국의 냄새를 실어 와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고 있어     

머리를 풀어헤치면 
바람에 휩싸이는 과거의 냄새에
그녀는 아주 살짝 눈물짓네   

갈매기와 남쪽 바람이
이국의 냄새를 실어 와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고 있어   
 
이제 돌아가지 않을 거니까
뒤돌아보지 않을 거니까
아라베스크의 리본은
하얀 궤적을 따라
과거로 돌아가     


방학이 지나 키가 훌쩍 자란 호시노는 때릴지언정 맞지는 않는 사람은 되기로 결심한 듯하다. 같은 반 남자아이들과 시비가 붙었을 때, 상대방이 기절할 때까지 두드려 팬 다음 기절한 녀석의 머리카락을 커터칼로 잘라서 뿌린다. 도망치는 다른 녀석에게는 커터칼을 집어던진다. 커터칼이 칠판에 박힌 채 파르르 떨린다.   

  

여기에 호시노의 결기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아무래도 호시노는 세상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빨리 깨달은 듯하다. 호시노와 하스미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세타라는 체육 교사가 있었다. 세타는 마음에 안 드는 학생에게 린치를 가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린치를 당한 학생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지곤 했다. 그의 비밀은 전기충격기였다. 이 무기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은 모두 세타의 눈치만 보며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호시노는 자기 아버지가 운영하는 택시 회사 창고에서 배터리를 가져와 하스미와 함께 세타의 차에 연결했다. 세타는 차문을 열자마자 감전되어 기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로서는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학생들 중에 숨어 있는 범인의 그림자에 겁이 질려버린 것이다. 그런 세타의 얼굴에 비치는 희미한 공포심을 우리들은 놓치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았다.         
학생을 혼내는 세타의 목소리는 경박한 톤으로 변해있었다. 나중에는 비굴해졌다. 학생들에게 아양을 떨게 되었고, 결국 완전한 끝이었다.     


카리스마를 상실한 인간은 그것으로 끝이다. 인간은 타인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을 보면 본능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개개인은 힘이 없을지라도 여럿이 모여 군중을 이루는 순간, 그리고 그 군중 속에 들어가 익명성을 획득하는 순간, 약한 존재를 조롱하고 짓밟으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다. 세타가 정녕 두려워하는 것도 범인이 익명의 그늘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음습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란 도대체 어떤 곳인가. 호시노가 몸소 체득한 원칙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욕을 먹더라도 강한 사람이 되는 게 백번 낫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려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그만한 담력과 배짱,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밟히기 전에 먼저 밟아야 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그런데 이런 호시노조차 릴리 슈슈의 음악에 푹 빠져 있다. 원작 소설에는 호시노가 릴리를 좋아하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이 없지만 영화에서는 초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학생이 전학을 가는 호시노에게 릴리 슈슈의 씨디를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그 여학생은 현재 하스미, 호시노와 같은 반에 재학 중인 쿠노 요코다. 호시노와 쿠노는 초등학교 때 그렇게 헤어진 뒤 중학교에서 다시 마주치지만 서로 아는 체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쿠노를 남몰래 사모하고 있는 것은 하스미다. 하스미는 쿠노가 음악실에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연주하는 것을 몰래 엿듣는다. 때로 그 연주는 드뷔시의 아라베스크에서 릴리 슈슈의 아라베스크로 바뀌기도 한다. 쿠노 역시 릴리 슈슈의 팬이다.          



3. 쿠노 요코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호시노는 초등학교 때 쿠노를 짝사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호시노는 자기 패거리에게 쿠노를 강간하라고 명령한다. 이 일이 있기 전에도 쿠노는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 끔찍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결국 더는 견딜 수가 없어진 쿠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영화에서는 쿠노 대신 츠다가 자살하는 것으로 결말이 뒤바뀐다). 쿠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호시노는 길거리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면서 처절하게 괴로워한다. 그렇게 괴로워할 거라면 애초에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 일반적인 해석은 상대에 대한 폭력이라는 왜곡된 방식을 통해서만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섬에 갇힌 것 같은 고립된 개인들의 소통 불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시노의 이런 면모는 한때 이상을 추구하던 사람이 그 이상에 좌절한 나머지 이상향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그런 비틀린 감정에 가까운 듯하다.     


릴리 홀릭 게시판에는 ‘네불라71’이라는 악성 유저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동시에 여러 개의 계정으로 접속하여 여론몰이를 주도한다. 여론몰이란 주로 왕따를 주도하는 것이다. 게다가 걸핏하면 다른 유저들에게 인신공격을 일삼는다. 네불라71은 현실에서는 꽤 잘 나가는 프로그래머다. 게시판 유저들의 이메일을 해킹해서 사생활을 폭로할 만큼 능력자이기도 하다. 반면에 사회성은 전혀 없는지 남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니메이션 속의 세계관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는다거나 ‘현실에서는 여자와 손을 잡아보기는커녕 대화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네불라71이 좋아하는 것은 현실의 여자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속의 여자주인공이다.      


(실제로) 사귄다는 것은 어차피 상처 입히거나, 상처 입거나 할 뿐이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통의 가능성, 사랑의 가능성을 믿기에는 이미 너무도 지쳐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불신만이 가득하다. 직접 마주치는 것은 고사하고 비즈니스상의 전화 통화조차 겁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등장한다. 


릴리의 발표곡 중 하나인 ‘공명(공허한 돌)’은 호시노의 이런 비틀린 마음을 묘사하는 것 같은 곡이다.     


기나긴 길은 돌아서 날 향해 다가와
끝없이 펼쳐진 시간만이 조용하게 새겨졌어   
  
어른이 되려던 찰나에 관둬버렸어
마음 한 구석에서 몇 겹의 거울을 찾아냈어     

그대를 만난 기쁨
그대를 만난 슬픔보다도 괴로운 것은
아직 내 마음속에
공허한 돌이 숨어 있으니까 

그저 살아 있기 위해서 태어났어
달리 의미가 있어?
그게 뭘까, 혹시 사랑이라는 것일까     

길모퉁이에서 찢어진 포스터에
적힌 문구에 시선이 멈춰
사랑은 여기에 신은 그대의 안에
여기서부터 찢겨 있어     

우주의 끝, 영혼의 끝자락에서     

이 육체 속에서 태어난 울림이 
그대에게 도달해서     

공명하는 말의 의미를 넘어 퍼져가네     

그대를 만난 기쁨
그대를 만난 슬픔보다도 괴로운 것은
아직 내 마음속에
공허한 돌이 숨어 있으니까     


마음속에 공허한 돌이 숨어 있는 그는 타인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실은 에테르니 뭐니 하는 그런 순수하고 관념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호시노 슈스케 자신도 이 더러운 현실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행위는 이런 더러운 현실과는 공존할 수 없다. 사랑은 상대방과 나를 동등한 위치에 놓는 것인데 현실의 인간관계에서는 대체로 승자 아니면 패자, 따는 사람 아니면 잃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쿠노는 F초등학교도, 남F초등학교도, K초등학교 출신도 아니다. 호시노가 전학 가기 전에 다녔던 다른 초등학교 출신이다. 따라서 쿠노는 과거에 호시노가 왕따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호시노에게 쿠노는 그의 흑역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껄끄러운 인물일 수밖에 없다. 쿠노가 입을 열면 호시노도 세타처럼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호시노 역시 사랑보다는 자기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인 것이다.      


호시노가 쿠노를 망가뜨리기로 결심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반에서 가장 불량한 여학생 칸자이 스미카가 쿠노를 망가뜨리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 여학생은 호시노 패거리 중 한 명과 꽤 친한 사이여서 쿠노를 강간해버리라고 부탁한다. 호시노가 패거리를 거느리면서 순조롭게 군림하려면 자기 패거리와 적당히 잘 지낼 필요가 있다. 호시노는 언제나 자기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는 행위(사랑)를 할 수 없다.         



3. 이지메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     


이와이 슌지가 소설의 전반부를 굳이 게시판 형태로 작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슌지는 직접 ‘릴리피리아’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하기까지 했다. Y2K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은 이 아이디어를 통해 네티즌들이 실제로 팬페이지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 소설은 독자 참여형 소설이 되었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좀 더 리얼하게 만들고 싶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 아닐는지.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것은 ‘호시노는 왜 갑자기 성격이 180도 변해버렸는가’일 것이다. 이와이 슌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는 이 모든 혼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호시노 슈스케는 지독한 악인이지만 꽤 복잡한 인물이기는 하다. 무엇보다 호시노 역시 릴리의 팬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양아치 특유의 가볍고 단순한 취향을 가진 인물은 아닌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정말로 가볍고 피상적인 것은 언제나 익명의 그늘 속에 숨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인물들이다. 가령 쿠노를 왕따시키는 같은 반 여자아이들. 이들 대부분은 특정 인물이라기보다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군중 속에 숨어 있다. 호시노 역시 이런 군중심리에 의해 몇 번이고 짓밟힌 경험이 있다. 인터넷 게시판이야말로 그런 익명의 군중이 활개 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이 무서운 익명성을 보여주기에는 안성맞춤인 소재다. 소설 속에서 대부분의 문제들은 릴리 슈슈의 깊고 근원적인 세계와는 대척점에 있는 듯한 인간 특유의 피상성으로부터 발생한다.      


릴리 홀릭에서조차 익명의 그늘에 숨어 남을 괴롭히는 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일본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처음에는 매우 온화하고 완곡한 말투를 구사한다. 거칠고 욕설이 난무하는 한국 웹사이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가 타겟이 되는 일이 발생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돌변한다. 흡사 어린아이가 곤충의 다리를 차례차례 뜯으면서 즐거워하는 것처럼 가학적인 쾌락이 난무한다. 괴롭히는 이유조차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누구 하나 걸려라’ 하고 있다가 약간 만만해 보인다 싶으면 기 센 사람이 슬슬 건드려보기 시작한다. 글의 전체 맥락을 보는 게 아니라 문자 하나, 단어 하나에 집착하는 조악한 이해력을 보이며 꼬투리를 잡아 공격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 없는 사람이 공격성을 보일 때 다른 구성원들이 충분히 성숙한 사람들이라면 이해력이 낮은 그 사람이 격추되기 마련이지만 세상은 언제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이 조리돌림에 숟가락이나 얹고 욕이나 하면서 스트레스나 푸는 게 더 쉽고 간단하기도 하고. 이때쯤 되면 이성과 합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그나마 운영자인 사티, 하스미 유이치만은 상식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악성 네티즌들에게 제재를 가하면서도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는 등 이른바 ‘완장질’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저들은 살인 사건의 범인이 운영자 사티라는 사실에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조리돌림은 오프라인에서는 학폭이나 집단따돌림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하스미 자신조차 희생자가 되기 전에는 방조자로 지냈었다. 그가 괴롭힘을 당하기 전인 1학년 때, 쿠리오네라는 별명을 가진 남학생이 있었다. 쿠리오네는 무각거북고둥이라는 생물체를 말하는 일본어 단어다. 그의 생김새 어딘가에 무각거북고둥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어서 그는 본명 대신 쿠리오네로 불리게 된다. 쿠리오네는 얻어맞고 발가벗겨진다. 가해자들은 화장실 칸 너머에서 쿠리오네에게 똥물을 퍼붓고 얼굴을 변기에 처박기도 한다. 나중에 하스미 역시 호시노 패거리에게 거의 비슷한 일들을 당하게 된다.     


하스미는 이 관계를 토끼와 사자의 관계라고 말한다. 토끼는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지만 토끼는 토끼고 사자는 사자일 뿐이다.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세상에서 토끼는 언제까지나 당할 수밖에 없다. 법이 있고 규정이 있다 한들 허울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여교사 오사나이는 쿠리오네를 학대하는 데 가담하기까지 한다. 쿠리오네가 등굣길에 다른 학생들의 가방 여러 개를 대신 들고 가고 있으면 자기 가방까지 들고 오라고 하는 식이다. 이 오사나이는 부임하자마자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뒤 지금은 약한 학생을 부려먹으면서 강한 학생들의 비위를 맞추는 중이다.     


쿠노 요코를 괴롭히는 여학생들의 동기는 명확하다. 쿠노가 피아노를 잘 쳐서 주목받게 되자 질투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합창 콩쿠르 시즌이 되자 쿠노가 반 대표로 피아노 반주를 하게 되었다. 쿠노만큼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가 반주자는 이자와 노리코라는 여학생으로 대체되었다. 이자와 노리코는 쿠노보다 훨씬 서투를 뿐만 아니라 너무 긴장해서인지 간단한 반주조차 계속해서 틀린다. 이자와를 강제로 반주자로 만든 것은 반에서 가장 불량한 여학생인 칸자이 스미카 무리다. 쿠노는 이자와를 격려해주고 옆에 붙어서 연습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자와는 이 일로 너무 부담을 느낀 나머지 결국 몸져 누워 장기결석을 하게 된다.     


이자와가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자 반장은 다시 쿠노에게 반주를 맡긴다. 어쩔 수 없이 쿠노가 반주를 시작하자마자 칸자키 스미카를 필두로 여학생들 반 이상이 교실에서 나가버렸다. 여학생들이 쿠노를 보이콧한 것이다. 이제는 피아노 반주 없이 합창 대회에 나가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학생들은 이 어리석은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뒤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쿠노는 나름대로 이 상황을 극복해보기 위해 반주 없이도 훌륭한 곡이 되도록 곡을 새롭게 편곡해서 반장에게 건넨다. 결국 합창 대회에는 무반주로 나가게 되었고 하스미네 반 학생들은 전교생에게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칸자이와 그 동료들은 이게 다 네가 편곡을 이상하게 했기 때문이라며 쿠노를 꾸짖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무반주로 편곡한 합창곡이 너무도 예술성이 뛰어나다면서 칭찬을 늘어놓는다. 하스미네 반은 갑자기 2등으로 입상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쿠노 요코의 공이었다. 칭찬을 받은 쿠노는 또다시 미움을 받을까봐 두려워진 나머지 다음날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한다. 하스미는 츠다 시오리의 원조교제 매춘이 시작된 뒤 츠다를 집에 바래다주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임무를 맡게 된 덕분에 그는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된다. 츠다가 더 잔혹하게 짓밟히는 대가로 하스미가 조금 편해진 셈이다. 하스미는 이 일을 계기로 ‘사람이 밑바닥까지 떨어지면 이런 일에도 기쁨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하스미가 호시노를 죽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에테르가 가장 충만한 장소인 릴리의 공연장에서 자살할 마음을 먹은 하스미는 과도를 들고 간다. 그날 릴리 홀릭의 몇몇 회원들이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물건을 들고 나오기로 했는데 아오네코는 푸른 사과를 들고 오기로 했었다. 하스미는 릴리 홀릭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다독여주었던 그 다정한 아오네코가 푸른 사과를 든 호시노 슈스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죽음보다 훨씬 끔찍한 현실이었다. 그의 유일한 도피처였던 릴리 슈슈와 에테르 전부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하스미는 호시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하스미는 너무도 무기력해서 츠다도, 쿠노도 지켜주지 못했고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방어하지 못했었다. 괴로울 때면 릴리의 음악 속으로 숨기 급급했다. 그런데 공연장에 인파가 너무 몰려서 ‘익명의 군중들(인터넷 게시판에서처럼)’ 속에 숨을 수 있게 되자 그제서야 호시노를 칼로 찌른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쿠노 대신 츠다가 죽는 것으로 결말이 바뀌었다. 쿠노는 집단강간을 당하고도 머리를 삭발하고 당당하게 등교한다. 이번에는 짓밟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쿠노가 릴리 슈슈를 들었기 때문일까? 아무리 현실이 잔혹해도 쿠노, 츠다, 하스미, 호시노는 릴리 슈슈를 듣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계속해서 릴리 슈슈를 들을 것이다. 릴리 슈슈의 음악은 우리를 괴롭히는 피상적인 현실의 대척점, 깊고 깊은 세계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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