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쉬쉬’하는 분위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조직을 유지하려는 습성은 그런 분위기를 조장한다. 혹시라도 분란의 씨앗이 될까 봐 별것 아닌 일을 비밀스럽게 처리하곤 한다.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방법일 수도 있으나, 결국 뒷담화로 떠도는 그 ‘쉬쉬했던 말’들은 지독한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다.
동료를 흠집 내기 위한 뒷담화도 무수하다. 정규직 회사원으로 일할 때는 늘 파벌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예를 들어 전무 라인과 상무 라인이 있으면, 양측에서 날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인다. 한쪽에선 커피나 한잔 하자며 다른 편을 헐뜯는 얘기를 시작한다. 그 상대편은 밥이나 같이 먹자며 엇비슷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난 어느 쪽에도 발을 담그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의 경계대상이 된다.
종종 ‘일은 하고 싶지만, 회사는 다니기 싫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직이 잦았던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늘 일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이른바 ‘사내 정치’의 악취 때문에 회의감을 느꼈다.
파벌이 아니더라도 동료에 대한 험담은 어디서나 존재했다. 한 회사 동료는 조용히 얘기 좀 하자고 나를 부르더니, 대놓고 다른 사람을 헐뜯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일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인 것 같아서’ 그런 뒷얘기를 말해주는 거라고 했다. 두어 달 후에 알았다. 거의 모든 팀원이 그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모두 다 그의 험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의 역겨운 행태에 대한 뒷담화 또한 생겨나기 시작했다. 험담이 험담을 재생산했다. 그러고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점심을 같이 먹기도 한다.
난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열심히 편 가르고 시기하면서 부귀영화들 누리세요’라는 조롱을 남겼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물론 프리랜서로 활동하더라도 프로젝트 조직 내에 크고 작은 알력이 존재했지만, 정규직일 때보다는 부담이 덜했다.
서로를 헐뜯는 그 사람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서로를 닮았다. 당연한 귀결이다.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2/3 가량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 닮아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옷 한 벌과 액세서리 하나로 자신만의 개성을 어필하려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그들은 개성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군집’으로 존재한다.
똑같이 출퇴근하고, 똑같은 책상을 사용하고, 똑같은 밥을 먹고, 집에서조차 똑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는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꿈을 베낀 듯이 욕망하는 지점도 유사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구조와 환경은 관계 맺음을 통해 동일한 속성을 개개인에게 물들인다.
한 조직에서 장기간 일하다 보면 그들의 관심사가 내게 스며들기도 한다.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다며 시작한 잡담은 평소에 전혀 관심 없었던 최고급 아파트 시세 정보로 이어진다. 기름값과 주차비를 걱정하던 얘기는 어느새 수억 원대 슈퍼카 리뷰로 바뀐다. 주식으로 수천만 원을 벌었다가 날린 무용담도 오가고, 갭투기로 건물주가 되는 방법도 공유한다. 그러면서 다들 ‘돈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순간엔 동질감을 느껴버린다.
인간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기 자신을 확인한다.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며 모방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동일한 관계와 구조가 오래 지속할수록 영향력은 점점 거세지고, 나도 모르게 그들의 욕망을 모방하게 된다. 어느샌가 고급주택과 프리미엄 수입차 정보를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군집에서 빠져나오면 그 욕망은 금세 다시 사라진다. 애초부터 나의 욕망이 아니라 남의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헐뜯으면서도 군집에서 떨어져 나오기 싫다는 두려움 또한 같다. 그 두려움이 서로를 비방하고 끌어내리도록 만든다. 한 회사는 정규직과 프리랜서를 가르지 않고 전체회식을 진행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프리랜서들을 배제했다고 한다. 경영진의 의사가 아니라 정규직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회식비와 같은 복지 혜택까지 같으면 정규직의 메리트가 없지 않느냐’는 불만이 접수되었다는 것. 내가 먹을 것도 아닌데, 남이 먹는 파이 한 조각을 순순히 놔두지 않는다. 언젠가 자신의 몫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렇게 낙오되지 않은 개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끌어내림으로써 군집의 형태는 유지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런 군집의 신규 개체가 되기 위하여 기를 쓰며 경쟁하고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개체들의 꿈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