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가볍고 작은 배낭을 훑어보다가 ‘소지품들이 다 안 들어가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에 좀 더 큰 용량의 배낭을 찾아본다. 그러다가 ‘이왕 사는 김에 모자란 것보단 넉넉한 게 낫겠지?’라는 생각에 다다르고 결국 대용량 배낭을 주문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배낭 안에 넣을 소지품들의 개수와 부피도 커지기 시작한다. 빈 공간이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배낭이 작으면 오히려 짐을 덜어내야 한다. 용량이 빡빡하면 ‘혹시나 해서 챙기는 여분’을 모두 제외하게 된다. 짐이 가벼워진다. 그러면 몸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우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집도 마찬가지다. 가구나 짐이 별로 없는데 넓은 집으로 이사하면 휑한 느낌이 든다. 자연스레 집 안을 채울 무언가들을 찾기 시작한다. 일 년에 단 한 번 쓸 일 없는 잡동사니들도 함께 따라다닌다. 추억이 담긴 물건이야 그렇다 쳐도 ‘혹시나 해서’ 버리지 않은 물건들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버려도 괜찮을 것을, 공간이 남으니 일단 쟁여두고 만다.
그렇게 물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녹슬지 않도록, 썩지 않도록, 변색하지 않도록 관리할 방법을 생각하고 틈틈이 청소도 해야 한다. 수납공간도 곧 부족해지고 또 다른 수납가구를 들여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물건이 쌓이기 시작하면 더 작은 공간으로의 이동은 점점 불가능해진다.
언젠가부터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는 ‘미니멀리즘’이나 ‘심플라이프’란 용어가 어지간히 많이 보인다. 단순하고 느린 삶을 살고 싶다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헛웃음이 날 때가 많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면서 작고 가벼운 (대신에 값비싼) 물건들을 ‘잔뜩’ 구매해서 배낭을 꽉꽉 채운다. 심플라이프를 추구한다면서 심플한 디자인의 가구와 전자제품들을 ‘가득’ 집어넣는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 머리 아프도록 복잡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 심플라이프’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최대한 간명하게’ 사는 일이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더욱이 오지랖 넓은 이 사회에서 간명해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어떤 것들은 필요가 없음에도 남들이 다 갖추고 있기에 별생각 없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소유물이 늘어나면 그만큼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그중엔 내 삶의 행복과 전혀 관계없는 것들도 다수 포진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인지는 잘 헤아리지 못한다.
남들과 다른 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은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변화가 없으면 지금보다 더 가벼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