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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07. 2023

겸손은 속옷과 같다.

(속옷은 꼭 입고 다녀요.)

이런 격언이 있다.

겸손은 속옷과도 같다. 입기는 입되 남에게 보이게는 입지 말라.


겸손이라는 속옷은 일단 입기는 입어야 하지만 겉옷 밖에 입거나 훤히 드러나도록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격언이다.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어서 칭찬하는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거나 겸손한 척 오만하거나 안하무인이라면 겸손이라는 속옷을 제대로 입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속옷을 안 입었으면서 겉옷마저 안 입고 돌아다니면 '공연음란죄'로 형사처벌감인 것처럼, 아예 속옷(겸손)이 없는 것을 대놓고 드러낸다면 누구도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한때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던 피고인을 구치소에서 접견했다. 그는 명문대를 나왔고 일찍 사업에 성공하여 이미 20대 후반에 부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카지노에 빠져 모든 돈을 잃었다. 그는 내가 맡은 사건 외 다른 사건으로 이미 사기로 징역형을 받은 상태였고, 수감 중 처의 요구로 이혼까지 했다.


그는 나에게 인생의 삼대 재앙이 1. 소년급제, 2. 중년상처, 3. 노년무전인데, 자신은 소년급제를 하였기 때문에 너무 일찍 재앙이 왔다는 말을 했다.


그는 나와 상담 중 자신이 명문대를 나왔고, 자기가 하던 사업체가 얼마나 번성했었는지에 대해서 말하며 거만한 태도로 나에게 얼마 버냐고 물었다. 매달 버는 월급과도 같은 돈은 일이백씩 더 들어온다고 부자 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이며.


그는 나에게 변호사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고, 국선변호인을 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식으로 조언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한때  알려진 사업가였기 때문에 그의 태도가 인상 깊고 흥미로웠다. 그는 형이 확정된 기결수들이 입는 파란 수용복을 입고 있었는데, 문득 그가 겸손이라는 속옷을 입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급제를 해도 잘 사는 사람 많다. 그는 소년급제 문제가 아니라, 돈과 노동 그 외 다른 소소하고 기본적인 일들의 가치를 우습게 알고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접견을 마치고 접견실을 나와서 그를 보니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영치금이 없으면 구치소 내에서 파는 운동화를 살 수 없기 때문에 관급 고무신을 신어야 한다.


그는 다시 수용동을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는 '종료실'로 들어가고 나는 구치소 밖으로 나가는 첫 번째 문 앞으로 걸어가면서 잠깐 목례를 나누었는데 그때 우리가 처한 처지가 극명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구치소나 교도소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돈을 떠나서 비슷한 처지에서 생활한다. 모두가 힘든 처지에 있고 예민해져 있는 그 속에서는 겸손하지 못하면 생활이 괴로워질 수 있다. 한때 성공한 사업가라고 하여 참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내가 최단시간에 사임을 결정한 피고인에 대한 소식을 얼마 전 들었다. 그도 명문대를 나온 사업가였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태도를 보여서 나는 그와 상담 10분 만에  이 사건을 담당할 수 없겠다는 말을 했다. 


후문에 의하면 그는 또 다른 사건으로 재판받게 되어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었는데, 그 사건의 담당 국선 변호사님은 전화통화를 했다가 바로 사임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일전에 올린 '태도'라는 글에 등장하시는 바로 이분이다. 이분도 안 입으셨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다른 사람의 새로운 능력을 보거나 그가 자신의 일상을 꾸준히 해내는 와중에 주머니에 있는 송곳이 바지를 뚫고 나오듯 보이는 능력과 매력, 그가 가진 것을 알게 된 경우가 많았다.


나도 겸손을 바르게 입었는지, 안 입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게 입은 것은 아닌지, 변태처럼 입거나 바지 밖에 입은 것은 아닌지 잘 살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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