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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l 30. 2023

출소

구속된 사람이 출소하는 곳은 구치소인 경우도 있고 교도소인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 구치소는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용자들이 있는 곳이고, 교도소는 형이 확정된 기결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구치소에는 구속재판을 받는 미결수용자도 있지만 징역형을 받았으나 남은 형기가 단기라서 교도소로 이동하지 않고 구치소에서 지내다가 만기출소하는 기결수용자도 있다.


따라서 구치소에서는 다양한 출소 요인이 있다. 만기출소, 구속재판을 받다가 집행유예나 보석으로 석방되는 경우, 특별사면이나 가석방.


출소의 요인이 만기출소인 경우 형기종료일 0시에 내보내는 것이 원칙이나, 출소 시간이나 주로 도심 외곽에 있는 구치소 또는 교도소의 위치상 집으로 돌아가는 대중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데다 야심한 시각에 음주 등으로 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새벽 버스를 탈 수 있는 시간대에 출소시킨다. 예를 들어 7월 30일이 형기종료일이면 7월 29일 밤 12시가 지나면 출소할 수 있지만 7월 30일 새벽 5시에 내보내는 식이다.


구속상태에서 재판받다가 선고날 집행유예를 받게 되면 법원의 석방명령과 동시에 바로 나갈 수 있지만, 수용자복을 입고 나갈 수는 없기 때문에 재판 출정 버스를 타고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고 나간다. 집행유예를 받아서 나가는 수용자의 물건은 재수가 있다고 하여 다른 수용자가 받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구속 재판 중 보석으로 나가는 경우는 보석결정이 나면 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석방지휘하는 문서를 팩스로 보내고, 구치소에서는 이 문서를 받은 다음 내보내게 되므로 일률적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음으로 가석방, 특별사면(특사) 등은 오전 10시쯤에 석방한다.


변호인의 구치소 접견은 9시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나의 피고인들을 9시나 9시 30분에 접견을 하려고 구치소에 들어가면 이 10시 석방예정 수용자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9시 30분 접견을 위해  구치소로 갔다. 구치소 앞에는 출소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 또는 지인들이 있었다. 차를 대놓고 있는 사람도 있고 구치소 정문 앞에서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인파가 유난히 많았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처럼 두부를 들고 있는 사람은 없다. 구속수감되면 부실한 식단에 단백질이 부족하여 기력이 떨어진다고 출소하자마자 두부를 먹었다는 설도 있고, 새하얗고 네모 반듯한 두부처럼 바르게 살아서 다시 들어오지 않게 한다는 의미로 먹는다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구치소에서도 고기반찬을 주고 식단이 좋아졌다. 따라서 출소하는 지인을 기다릴 때 마트에서 찌개용 두부를 사야 하는지 부침용 두부를 사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구치소 내부로 들어가는 철문을 지나면 수용동 마당이 있는데, 그곳에서 일정한 대열로 사복 입고 서서 교도관의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소위 '출소가방', '법무부 가방'이라고 하는 가방과 짐이 있었다.


내가 본 출소가방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진한 녹청색 가방에 투명비닐이 일부 덧대어져 있는 가방, 하나는 전면이 투명비닐로 되어 있고 테두리가 천으로 덧대어져 있는 가방이었다. 보통 출소가방을 집에 들고 가서 사용하면 또 들어갈 수 있다는 설이 있어서 재수 없는 가방으로 여기고 일상에서 재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구치소에 수용되어 있는 어떤 피고인들은 접견할 때 징역살이를 하루도 더 견디기 어렵다며 괴로움을 호소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검사가 징역형을 구형하자 피고인은 나 징역 하루도 못 사니까 차라리 사형을 시켜달라고 울며 조른 경우도 있었다(피고인의 죄가 사형시킬만한 것도 아닐뿐더러 그 죄의 법정형에 아예 사형이 없다).


피고인이 계속 응석 부리듯이 사형타령을 하며 울자 교도관이 나의 피고인을 토닥거리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괴로운 징역살이라서  출소하면  행복할까. 출소하는 사람들은 오늘부로 신체의 자유를 얻었으니 행복할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예전에 내가 나의 피고인에게 형기가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자 그가 절망한 얼굴로 말했다. "나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라고 했다.


몸보다 마음이 출소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건이나 여러 가지 사정상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몸만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얼마 전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에 있는 열두 수사님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새벽 4시 50분부터 저녁까지 하루 7번의 기도를 올리고 평생을 수도원에서 수행한다고 한다. 기도와 미사시간 이외에는 텃밭을 가꾸거나 노동을 하며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그분들의 생활과 모습에 성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와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 하는.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며 고독한 수행생활을 하고 이른 새벽부터 예불을 드리는 스님이나 3년간 문이 잠긴 무문관에서 폐관수행을 하며 마음공부를 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접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시민 작가의 '문과남자의 과학 공부'라는 책에 '뛰어난 인문학자는 물질의 증거 없이도 옳은 인식에 다가선다. 때로는 과학자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라는 내용이 있다.


수도원에 계시는 그 수사님들이나 진정한 수행자로서의 삶을 실천하는 스님들은 분명 마음이나 정신세계에서 본질적인 어떤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을 발견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징역살이 힘들다고, 나가면 마더테레사처럼 봉사하고 살 것이라 했던 사람이 다시 재범하거나 나가서 예전의 습관들을 버리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술 마시고 행패 부리거나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째서 평생 한 수도원에서 수행을 하는 수사님들이나 마음을 닦고자 고독한 삶을 선택하여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은 어떤 면에서는 징역살이보다 더 고달프고 엄격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도 평온과 환희심을 느끼는가. 나는 무엇이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어제는 낮잠을 잤다.

냉장고에는 아이 방학을 맞아서 나도 엄마노릇을 좀 해볼 거라고 잔뜩 사놓은 채소들이 시들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방울토마토는 박스채로 주문했는데 그 박스가 곧 사망할 방울토마토의 관이 될 참이었다.


나는 이 채소들 중에서 뭐라도 건져서 요리하겠다고 인터넷을 뒤져 여러 레시피를 검색하다가 낮잠을 잤다. 자면서도 레시피의 잔상이 남아서 방울토마토로 마리네이드를 하는 생각을 하며 방울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삶아서 껍질을 벗기려고 주방집게로 건져내는 꿈을 꿨다.


그런데 뜨거운 냄비에 담긴 방울토마토를 집게로 꺼내다가 내 발등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 뜨거운 것을..


남편이 아직도 자냐고 물었고 어렴풋이 선잠에서 방울토마토에 발등이 데어 소스라치게 놀라는 느낌을 받다가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방울토마토도, 주방집게도, 뜨거운 냄비도 없었다.


꿈에서는 실재했고, 분명히 꿈에서는 뜨거웠고 놀랐지만 꿈을 깨니 아까 느꼈던 놀라움과 통증이 사라졌다.


나와 가족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피고인들도.

마음과 영혼에 어떤 괴로움이나 어려움이 느껴질 때, 꿈에서 깨어나듯 한순간에 떨쳐버리고 늘 평온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혼의 구치소에서

석방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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