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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Nov 23. 2023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큰아버지는 나의 친정아버지 장례식 내내 상주석에서 나와 함께 있었다.

큰아버지는 슬퍼하는 나를 위로하려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큰아버지가 젊었을 때 죽으려고 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죽지 못했다고 했다.

남녀상열지사를 위해 으슥한 숲으로 들어온 연인들이 큰아버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려고 한다고 쉽게 죽어지지도 않고
오래 살려고 해도 살아지지 않으니,
너거 아버지는 명이 다해서 가신 것이라 생각해라.”


 

큰아버지의 진솔한 얘기가 뭔가 슬프고도 조금 웃기기도 했다. 구출하신 분들이 남녀상열지사를 위해 산에 들어오신 분들이라니. 위로가 되면서도 장례식이라는 엄숙한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것도 같고.


큰아버지는 친정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더 젊어 보이셨고 정정하셨다.


큰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의 건강비결은 ‘느릅나무껍질’('유근피'라고도 한다)을 가시오갈피, 대추와 함께 끓여서 생수 대신 먹은 것이라고 하셨다.


 “느릅나무 달인 물을 먹으면 위가 뚜껍해져서 소화가 잘되고
온갖 염증이 잡힌데이. 알았제.”  

   

이 말씀을 무한 반복하셨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말씀을 하셔서 장례식 내내 옆에서

 ‘느릅나무’, ‘느릅나무’, ‘느릅나무’를 듣다 보니 이명이 생기는 것 같았고 큰아버지가 없는 순간에도 귀에서 ‘느릅나무’라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큰아버지는 장례식 후에도 나에게 전화해서 느릅나무껍질 달인 물을 마시라고 독려하셨다.


이후 우리 가족은 불교신자이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절에서 아버지 49재를 지냈고, 막재가 있는 날 무교이신 큰아버지도 참석하셨다. 49재를 마치고 스님께서 우리 가족들에게 차를 내어주셨다.      


스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셨는데,

큰아버지께서 스님께 긴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 자세를 고쳐 앉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스님, 느릅나무 껍질하고 가시오갈피에 대추를 넣어서 한 시간 끓이고...”

큰아버지는 스님께 계속 느릅나무 얘기를 하셨다. 요지는 롸잇 나우 스님께 필요한 것은 느릅나무 물이라는 것이다.

(((스님 진저리..)))


얼마 뒤 우리 집에는 큰아버지가 보내신 택배가 왔다. 그 안에는 느릅나무껍질이 있었다.


삐뚤삐뚤하고 틀린 맞춤법으로 쓰신 큰아버지의 글씨를 보니 친정아버지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의 첫 기제사가 있었다. 큰아버지는 부산에 계시는데, 동생의 제사에 참석한다고 멀리서 올라오셨다.     


제사와 식사를 마치고 큰아버지께 작은 소반에 과일을 차려드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큰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니 이리 와 앉아봐라.     


내가 자리에 앉으니 큰아버지께서 한참 뜸을 들이시더니,


“00야, 니는 사람한테 젤로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노.”     

나는 좀 생각하다가

저는 ‘마음의 평온’이요. 사람은 마음이 편한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가 마음이라고 말하자 우리 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큰아버지는 흠칫 당황하셨다.


마치

‘마음 그딴 게 뭐가 중요하노.’


이런 눈빛이셨다.     


그러면서 큰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사람한테 제일로 중요한 건 첫째로 몸이 건강한 거다. 건강.”이라고 하셨다.


 나와 가족들은 아~~ 그러면서 그 말씀도 옳다고 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자 큰아버지께서 무언가 작심하신 듯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느릅나무를 먹으면..”     


나는 정말 또 느릅나무 얘기하시려고 하는 줄 몰랐기 때문에 무방비상태였다.

순간 허탈하고 웃겨서 허리를 뒤로 꺾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큰아버지는 나를 '돌았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느릅나무를 먹으면 위가 뚜껍!해지고..”     


큰아버지는 느릅나무를 드셔서 몸이 건강해지시고

나는 큰아버지로부터 느릅나무 얘기를 들어서 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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