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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임신할 수가 있어?!

대표 변호사 격노설

by 몬스테라

요즘 [서초동]이라는 드라마가 핫하다. 그 드라마에는 서초동 '어쏘 변호사'들이 나온다. '어쏘 변호사'란 법무법인이나 법률사무소에 소속된 변호사를 말한다. 월급을 받는 변호사라고 보면 된다.


나도 서초동 어쏘 변호사 시절이 있었다. [서초동]이라는 드라마에 류혜영 배우분이 임신 사실을 알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을 보자 나의 서초동 어쏘 생활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근무했던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님은 전관 변호사님이셨다. 나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상태로 그 법무법인에 입사했었다.

1년쯤 근무했을까. 나는 임신을 했다.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대형로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어쏘 변호사들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임신과 출산을 존중받지 못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표 변호사님께 임신 사실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표 변호사님이 황당해하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0 변호사, 어떻게
임신을 할 수가 있어요?!

나는 소가 된 느낌이었다.

화면 캡처 2025-07-16 060858.png

대표 변호사님은 사무실에 이렇게 일이 많은데 임신을 하면 어떡하느냐는 취지로 휘몰아쳤다.

나는 마치 변호사 자격증도 없이 위장취업한 사람처럼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앉아 있었다.


내가 출산 두 달 전에 그만두겠다고 말하니 대표 변호사님은 흡족해했다.


대표 변호사님의 재앙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퇴사를 앞두고 후임자를 구인하는 공고를 냈다. 인수인계까지 마치고 퇴사해야 해서 서둘렀다.


이력서가 많이 들어왔는데 대표 변호사님께 들고 가니 보란 듯이 여자 변호사들을 걸렀다. 앞으로는 남자 변호사들 이력서만 들고 오라고 했다.


나는 많은 이력서 중 여자 변호사는 거르고 남자 변호사들의 이력서만 추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상한 이력서가 들어왔다.


보통 이력서 증명사진란에 단정한 사진을 붙여서 내는데, 이 변호사는 사진관에서 엔틱 의자에 앉아 전신을 촬영한 사진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이력서를 현장접수까지 했는데, 그 엔틱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 무슨 회장님처럼 있는 사진을 A4용지 크기로 인화해서 이력서와 함께 제출했다.

느낌이 쎄했다. 뭔가 촉이 왔다.


대표 변호사님은 여러 이력서 중 그의 이력서를 보고는 스펙이 좋고 단정하게 생겼다며 만족해하셨다. 그 문제의 '엔틱의자에 다리 꼬고 앉은 전신사진'에 대하여는 나와 다르게 해석하였다.


그가 많은 이력서 중 눈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를 비롯하여 세명 정도를 면접 대상자로 추렸다.


면접 날 나는 그의 실물을 보게 되었다.

여자의 육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가 '멋쟁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영화 [밀양]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교회 집사인 송강호가 주차 봉사를 하던 중 잘못 주차한 차를 보고 말한다.

야, 나 참 이 아저씨 진짜 멋진 아저씨네.
멋쟁이 아저씨네, 이거.
얼굴 한번 봐야겠네, 이거.

그는 결국 채용되었다. 나는 인수인계 과정에서 그가 '멋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으나 이미 콩깍지가 씐 대표 변호사님의 눈에는 모든 것이 적극적이고 신선한 것으로 보였는지 그를 채용한 것에 대해서 무척 만족했다.


나는 출산 후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출산 1달 보름도 되지 않아서 대표 변호사님께 연락이 왔다.

0 변호사, 빨리 좀 와줄 수 없겠어?
다시 근무한다면 최대한 빨리 언제부터 할 수 있어?

나는 사실 근무하는 동안 대표 변호사님께 실망도 하고 업무량도 너무 많아서 다시 그 사무실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다. 거절하는 말을 할 때 기분이 상큼했다.


어느 날 전 직장 여직원과 사무장님께도 연락이 왔었는데 나의 후임 변호사님이 너무 멋진 일을 많이 하셔서 대표 변호사님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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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과 사무장님 말씀에 의하면 그는 '사회성과 눈치, 업무에 대한 관심'이 없는 3無 였다고 한다. 사무실에 그래픽 카드와 여러 개의 추가 모니터 설치를 요구하고 컴퓨터 사양을 높여 업무시간 중 주로 게임을 했고, 깜빡하여 재판 노쇼도 여러 번 있었고 특이한 응대로 의뢰인의 항의가 많았다고 한다.


나는 출산 후 다른 사무실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대표 변호사님이 여러 번 전화가 와서 내가 이왕 하던 사건들이니 계속해주면 안 되냐고 부탁했다.


나는 이미 멋쟁이 토마토가 나의 서운함은 대신 복수를 해주었다고 생각했고, 일할 만한 곳이 쉽게 구해지지 않아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예전 직장으로 돌아온 것을 금세 후회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생태계에 스트레스 없는 환경은 없다.'는 마음으로 견뎠다.


그곳을 탈출하기까지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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